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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May 08. 2021

올해는 조금 더 가벼운 꽃을 드렸다

그래도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

보송이는 노란색 꽃술 주위로 동그랗게 벌어진 베이지색 꽃잎이 달린 머리끈.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 머리끈 외에도 조그마한 핀 같은 것들이 삼각형 모양 포장지에 함께 들어있었다. 생일을 맞은 어느 날 아빠가 선물이라며 주었던, 어린이 시절에 아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포장된 선물.


 우리 아빠는 자식을 낳아주고 키워주는 데 열심을 다한 아버지다. 대학교까지는 부모의 책임이라며 몇 천만 원이 되는 학비를 몇 년에 걸쳐 스스로 감당해주셨고 졸업 후 떠난 캐나다행에 드는 이천만 원도 군말 없이 지원해주셨으니까. 부모님 덕분에 취업 후 월급으로 받은 돈이 오롯이 적금으로만 들어갈 수 있어 감사했다.


이만큼 넉넉히 받았으니 더 바래서는 안 될 텐데, 나는 사실 부모님께 더 받고 싶었다. 해바라기 꽃 모양의 머리끈 같은, 예쁘게 포장되어 이게 뭐야? 하고 함께 설레며 풀어볼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선물을, 해리포터의 친척 두들리처럼은 아니더라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받아보고 싶었다. 정확한 검사는 안 받아봤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내가 사랑을 느낄 때는 선물을 받을 때인 것 같다.


 선물이라는 물질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준비했을 마음이 선물과 작은 편지로 확 와 닿는 편이다. 우리 아이들이 내게 종이를 꾸깃꾸깃 접어 낙서 같은 편지를 써주어도 나는 행복하고, 선물이라며 건네준 쓰다 만 지우개와 껌 몇 개에도 아이의 정성에 나의 하루는 더욱 반짝인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전형적인 뭘 그런 걸 챙겨 주의셨다. 생일이면 다 같이 거실에 모여 케이크를 먹고 TV를 보며 평일과 다름없는 날인 듯 지나가는. 먼저 따로 챙겨주지 않으시니 내게 바라시는 것도 크게 없어 부담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좋은 게 부모님에게 좋을 거라 생각할 때가 많다.


가격이 부담되어  편히 가보지 패밀리 레스토랑에 부모님을 모시고 스테이크를 맛보게  드리는 것이 뿌듯했고, 1 적금이 만기 하면 부모님께  40 원의 용돈을 드리는 것도 행복했다.  뷰와 개별 테라스 그리고 스파가 있는 펜션을 새벽까지 검색해서 찾아내 예약하고 함께 1 2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았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할 수밖에 없는 선물 같은 이벤트를 되도록이면 우리 부모님이 자주 경험하시길 바랐다.


 내게 좋은 게 당신께도 최고일 거라 생각한 탓일까. 아빠의 시큰둥한 반응은 번번이 내게 상처로 돌아왔다. 뷔페에서 먹는 것보다 한 끼 든든히 먹는 게 낫겠다는 아빠의 말과 펜션 좋은지를 너무 많이 물어보는 딸의 태도가 불편했다는 아빠의 말에 내가 무엇을 위해 이리 했나 싶었다.


나는 그저 좋은 걸 해드리고 싶었고 이렇게 좋은 걸 딸 덕분에 누려서 기쁘고 행복하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이다. 선물의 기쁨이라는 게 있고 섬김의 행복이라는 게 있다는 걸 나는 우리 부모님이 나를 통해 느끼고 깨달았으면 했다.


 그렇게 되면 딱딱하기만 우리 사이가 보드라워질 것 같았다. 가족이라는 당연한 사이니까 말도 무던하게, 표현도 대충 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라는 소중한 사이니까 말 한마디도 세심하게, 표현도 때로는 열 손가락 다 오그라들게 해 주는.


어버이날은 다가오는데 아빠를 향한 미움과 원망은 커져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만 속이 뒤집히는 건 도저히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하소연해봤자 네 아빠 그런 거 안 바뀐다 고만 얘기했다.


글로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런 아빠의 태도에 자꾸 상처를 받는거지.다정한 아빠를 원하기보다 그로부터 상처를 덜 받는 무던함을 키우는 것만이 정답일까. 부모님을 전적으로 섬겨드리자 했지만 기대와는 다른 반응에 속상한 건 결국 진정한 섬김이 아니라 소리 없는 강요는 아니었나.


최근에서야 결론이 난 건 나는 나의 할 도리를 다 한다는 거였다. 때로 부모님이 밉고, 그들이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을 하지 못했음에 서러울지라도. 나는 여전히 부모님께 잘해드리고 사랑하겠다 라는, 부모를 공경하겠다 라는 마음가짐.


자녀를 노엽게 말라는 우리 아빠의 사명이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자식 된 나의 사명이다. 왜 나를 노엽게 하느냐고, 왜 기록된 말씀처럼 날 사랑해주지 못하냐고 엉엉 울기전에, 부모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그들을 공경하겠노라 순종하는 거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김기석 목사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성경에서 “부모”라는 말에는 어떠한 조건이 없었다.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는 부모에게 공경하라, 자기의 잘못을 알고 반성하는 부모에게 공경하라 가 아니라 네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라는 것이다.


 나 또한 나의 잘못과 부족함에도 여전히 무조건적인 사랑에 목말라 있으니 부모의 입장이라고 크게 다를까 싶었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길 원하는 자식이 있듯이 완벽할 수 없는 부모임에도 존중받기를 원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나.


 그렇게 나는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꽃을 주문했고, 때마침 들어온 월급을 근처 ATM 기계를 이용해 현금을 인출했다. 만 원짜리 지폐를 돌돌 말아 꽃을 둘러싸고 중앙에 리본을 붙였다. 진심을 담은 편지도 간략히 쓰고, 동봉된 가방에 꽃을 넣어 기차를 타고 본가에 왔다.


집 앞에서 잠깐 기도 했다.


나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고. 그러니 내 안에 부모님을 향한 원망과 미움 그리고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눈을 뜨고 나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기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터벅터벅 걸어 올라왔다.


부모님께 내가 가진 것을 드리는 것으로 나의 할 일을 다 했음을 기억할 것. 내가 드린 것을 받아들이는 부모님의 반응과 태도를 존중할 것. 잘난 척이나 생색내지 말 것.


딸 왔어~하며 들어서자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반가워하셨다. 가방에서 꺼낸 꽃을 보고는 좋아하셨고 밥은 우리가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뭘 먹을까 고민하셨다. 밥도 내가 사겠다고 했지만 어떻게 밥까지 사게 하냐며, 이걸로 됐다고 하시더라.


나 잘했지? 이거 좋지? 아빠 대답 좀 해봐! 답이 정해진 질문을 빼고, 받았으면 그만큼 좋은 부모가 되라는 무언의 압박 또한 모두 거두었다. 담백한 사랑과 존중의 태도만을 꽃에 포장해 드리니 오늘 드리는 선물은 작년보다 더 가벼운 느낌이다.


무엇보다 아빠가 좋아하시니 나도 그걸로 충분하다.


어버이날. 오늘만큼은 부모와 자식 누구에게도 무겁지 않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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