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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Jun 25. 2021

완전 많이 사랑해

눈치 보지 말고 불편해봐요

너무 징징대면 남자가 질려한다.
본색을 들키기 전에 6개월 안으로 결혼해!

 연애만 시작하면 엄마 아빠 심지어 이모까지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누누이 일러주었다. 괜한 생트집 잡지 말고 잔소리하지 말고,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딸이 염려되는 마음에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씩 건넨 잔소리는 어느새 마음의 딱지로 눌러앉았다. 겉으로 딱딱히 굳어 딱히 아프지는 않지만 이내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나야 할, 현재에 잔존하는 과거의 상처 같은.


 이 사람이 맞을까 재고 따지며 불안해하던 날이 지나고 경계 태세를 한껏 늦춘 채 마음 놓고 사랑만 하는 요즘이었다. 아침이나 밤 24시간 흘러넘치는 다정함과 나보다 더 나를 아껴주는 따뜻함. 내 깊은 고민에 스스로 미안해하며 노력해주는 배려심. 잊을만하면 불쑥 손을 뻗어 나의 필요를 챙겨주는 세심함.


 보고 싶다고 하기 전에 마중을 나오고, 언제 또 만나나 목 빼고 기다릴 필요 없이 그의 우선순위는 늘 나였다. 순간 의심이 들면 그는 내가 더 잘하겠다는 말을 해주었고 내가 행여 똥고집이라도 부리려는 차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어 백기를 들고 흔들어주었다.


그런데 사람은 간사하다. 부족함 없이 받은 사랑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 느껴지니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혼자 새벽에 브런치 감성을 즐길 시간도 없고, 때마침 닥친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하는 게 스트레스였다. 데이트 후에 틈을 내어 야금야금 해본들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아 답답했다. 폴댄스에 가서도 체력이 부족해 이전에 배운 쉬운 동작도 마치 처음 배우는 듯이 버거웠다. 어찌어찌 겨우 성공해도 기쁘지 않다니 이건 정말 말 다했지. 나 홀로 휴식이 간절했다. 어기적대며 퇴근해서 긴장을 풀고 나른하게 늘어져 뒹굴댈 수 있는 심적인 여유.


 한껏 예민해진 나는 모든 게 그 사람 탓인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그게 아닌 걸 아는데, 괜한 원망과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나의 문제로 그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 나 너무 짜증 나요. 진짜 너무 짜증이 나요.


칸막이 화장실에 들어가 중얼댔다. 가끔 이런다. 불같이 치솟는 짜증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 내놓을 수 있으면 두 번 실수할 것이 한 번으로 줄어드는 기적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는 열심히 구워주고 나는 성실히 투덜댔다. 이게 속상했고 저건 아닌 것 같고, 그때는 그래서 그런 거고 지금은 이래서 이렇게 됐다고.


그런데 눈치도 같이 불판에 올린 기분이었다. 구워진 고기만 먹으면 될 텐데 그의 눈치까지 먹느라 배가 부른 건지 고픈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잠자코 듣고 있는 그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닌지 궁금했다. 나는 리액션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가장 먼저 배운 사람인데 어쩐 일인지 반응이 없으니 눈치가 보일 수밖에. 내 불만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이지 않는 선을 내가 넘어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됐다.


징징대면 산타에게 선물을 못 받는 아이처럼. 본색을 드러내면 당장 바깥 거리로 내쫓길 거지 왕자처럼.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났다.

이모가 걱정하던 말투가 떠올랐다.

아빠가 당부하던 우스갯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불편함으로 그가 떠나면 안 되니까.

나의 속상함이 그의 서운함이 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만큼 그를 잃고 싶지 않다는, 이 관계가 언제까지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나를 그로부터 눈치 보게 했다.


 한편에는 상처 주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강박도 있었다. 상처 받고 상처 주는데 지칠 만큼 지친 서른 살이다. 그러니 적어도 주지는 말자. 얼마나 아픈지 알만큼 아는 사람이 그러면 안돼.


속상한 게 있으면 꼭 말해줘요.

듣고 아닌 게 있다 싶으면 그냥 넘기지 말아요.


몇 번의 부탁을 하고 그에게 들은 말은

눈치 보지 말아라는 말이었다. 불편한 건 없었지만 자기 눈치를 보는 나를 보는 게 속상했다고. 서로 맞춰갈 게 많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으니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해달라고. 억지로 자신에게 맞춰주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면서.


알겠어요, 대답하면서 사실 듣고 싶은 말은 단 하나였다. 이유는 몰라도 본능적으로 한 단어만 떠올랐다. 그가 먼저 그 말을 해주지 않으면 나는 다시 눈치 보면서라도 우물쭈물 내뱉을 작정이었다.


완전 많이 사랑해.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건 그가 잘하는 것 중 하나다. 눈치 보지 말라는 말, 편하게 대해줘 라는 부탁보다 나를 정말 사랑한다는 진심 한 번에 사방에서 들고 날뛰는 불안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앉아있는데 하나님이 생각났다.


하나님도 내게 이런 마음이실까.


신학대에 가지 않으면 하나님을 정말 주인으로 섬기는 게 아니야. 네가 그러고도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 너는 감정에 이끌려 그런 짓을 해놓고도 뻔뻔하게 기도가 나와? 하나님 사랑받았고 알만큼 알면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


하나님 앞에서 고갯짓 하며 눈치 보는 내가 떠오른다.


그는 이런 나를 어떻게 볼까, 이런 나라도 여전히 사랑할까. 그 앞에서 나는 정말 나대로여도 괜찮을까. 그가 베풀어 준 큰 사랑 갚지 못해도 되는 걸까.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숨이 턱턱 막혀오는 내게 들려온 그의 말이 왠지 모르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새벽이다.


내가 너를 완전 많이 사랑해.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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