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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Sep 20. 2021

청첩장 모임, 커피값은 센스 아니야?

응, 아니야_내가 할 도리에 관한 고찰

 결혼식을 향해 가는 길은 마치 높디높은 산 하나를 등반하는 일처럼 험난하게만 느껴졌다. 어디서 출발해 어느 지점을 들르며 가야 할지 몰라 산 입구에 투박하게 놓여있는 지도를 보고 일단 사진이라도 찍어놓듯이, 오빠와 나는 갓피플 웨딩 업체를 찾아 간사님께 결혼 진행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는 끝없는 선택의 날들이었다. 스튜디오 샘플 앨범, 메이크업 헤어샵, 그리고 드레스 업체를 빠른 시간 내에 골라냈고 이후로는 틈틈이 간사님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남은 사항을 체크하고 결정하기를 반복했다.


 스튜디오 촬영까지 시간은 더디게만 갔다. 아무리 많은 날을 자고 일어나도 웨딩 디데이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것 같으니. 언제 결혼해서 같이 사나, 오빠랑 나는 느리게 가는 시간이 답답해 타령을 하듯 찡얼거리곤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웨딩 촬영이 끝나자마자 시간에 가속도가 붙어버렸다. 예복을 맞추는 일, 예물을 보러 가는 일도 어쩐 일인지 여유롭게 진행되더라. 얼른 결혼했으면 좋겠다, 오빠랑 같이 입을 모아 합창을 하다가도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결혼 준비 기간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간다는 게 아쉬워졌다. 언제 이렇게 큰돈을 쓰며 새것을 장만하고 좋은 것으로 자신을 대접해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며 말이다.


 몽글몽글한 마음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딴딴해져 버린 것은 청첩장 모임 이후였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며 청첩장을 나누어주었다. 식사하며 그동안의 연애 히스토리와 결혼 준비에 관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조잘댔다.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 난 후 나는 재빠르게 카드를 챙겨 계산했다. 밖을 나오니 선선해진 저녁 날씨만큼이나 시원해진 마음에 기분이 참 좋았다. 내가 결혼 턱을 내는 날이 기어코 오고야 말았구나, 허허 웃으며.


애매한 시간이었기에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을 하기로 결정하고 동네를 슬슬 걸었다. 여자 셋이 모였으니 여태 접시를 깨도 여러 개를 깨뜨렸는데 카페 카운터 앞에 도달하자 숨이 막힐 정도로 조용해졌다.


아링이 먹고 싶은 것으로 골라 먹어!


커피는 낸다는 얘긴가? 커피값은 당연히 친구들이 내겠지, 라는 나만의 기대감은 오늘의 선선한 날씨에 난데없이 끼어든 먹구름 같은 불편함과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주문을 마칠 때까지 친구들은 커피는 우리가 낼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몇 년 전이긴 했지만 지난번 청첩 모임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애들이 이럴 애들이 아닌데 왜 가만히 있지? 내가 밥을 샀으면 커피 내는 건 센스 아닌가?


기브 앤 테이크의 법칙을 어긴 내 친구들이 처음으로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앞으로 남은 모든 청첩장 모임의 비용을 어찌 감당해야 하나, 만날 사람은 많고, 식사와 더불어 커피값 까지도 마음껏 계산할 자신은 없고. 모임에 갈 때마다 이들은 커피값을 낼까? 하는 소리 없는 눈치싸움에 골머리 앓기도 싫은데.


청첩장 모임뿐이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원어민 동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는 일에 그들은 과연 한국의 축의금 문화를 알까? 하는 노파심에, 어쩌면 받지 못하고 쓰기만 해야 할 6명의 식사값을 나도 모르게 계산하고 있더라. 숫자랑은 담쌓은 전형적인 문과 출신이 이런 상황에서는 대체 왜 덧셈 뺄셈에 그리도 훤한지.


 괴로웠다. 돈 몇만 원에 자꾸 이렇게 쪼잔해지는 게 싫었다. 그냥 내면 될 것을 어떻게 해서든 안 내려고, 그저 베풀면 될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손안에 움켜쥐려고. 쿨하지 못해 정말 미안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상황이 이해가 안 되니 어떠한 구실을 찾아서라도 내가 돈을 쓰는 게 정당하게 느껴졌으면 했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 준 키워드는 어처구니없게도 다시 “나”였다. 


 청첩장 모임을 하지 않으면 결혼식날 신부 측에 서서 함께 사진을 찍어줄 친구들이 굉장히 소수일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초라해 보일까 싶더라. 와 줄 친구가 몇 없다는 게 남들 보기에 우스워 보일까 봐 당장 청첩장 모임을 몇 개 더 잡기 시작했다. 그래. 내 결혼식 와줄 수 있으면 그까짓 돈 내가 쓰면 되는 거지! 소비의 목적을 찾으니 토끼의 간을 먹은 용황처럼 힘이 불끈 솟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뻔한 전래동화의 반전처럼, 내가 고민해 겨우겨우 찾아낸 그 목적은 알고 보니 토끼똥에 지나지 않는 효험 없는 가짜에 불과했다.


 나를 꾸미기 위해 남을 이용할 지혜밖에는 내지 않는 내가 무서웠다. 겉보기에는 남들을 대접한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날 축하해야 한다는 강한 조건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꼴을 목격하니 오 주여, 단박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또 이렇게까지 나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고 있었구나.


그리고 내가 꿈꾸고 기도했던, 한 때 결심했던 내용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공주가 되어 주인공 행세를 하는 결혼식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고 빛내고 배려하는 결혼식을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이 섬광처럼 번뜩이며 생각났다. 그 자리에 참석해준 고마운 분들에게 의미 있는 결혼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로서는 품을 수 없고 실행할 수 없는 그 마음.


 정신 차려라, 날 흔들어주신 성령님 덕분에 동료 원어민들에게 바라는 마음 없이 청첩장을 줄 수 있었고 주변 지인들에게는 음식을 대접하며 크게 꽁한 마음 없이 커피까지 살 수 있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커피값과 축의금은 그동안 내가 하객의 입장으로 내왔던 나만의 당연함이었다.


 어릴 때 처음으로 청첩장 모임에 초대되었을 때는 네가 밥을 샀으니 커피는 우리가 낼게 라는 게 나와 함께 그 자리에 대동했던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방식이었고,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는 내가 먹은 밥값이라도 챙겨주어야 실례가 안된다는 전제로 결혼식을 다니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자라났다.


좋은 일 앞에 나를 대접해주는 손길에 당신의 행복에 나 또한 기쁘다 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가 커피값 또는 축의금이라는 그 중요한 생각을 먼저 배운 게 아니라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기준을 먼저 자연스레 형성하고 그저 성실히 따랐던 것이다. 그러니 나와는 다르게 행하는 상대를 보고는 난 이렇게 했는데 왜 너는 그렇게 안 하냐는 마음이 들 수밖에.


좋은 일에 감사로 상대에게 마음껏 베푸는 일. 또한 상대의 소식에 내 일처럼 기뻐하며 그 행복에 동참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라는 기준은 어느새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더는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센스가 있네 없네를 따질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내가 하객이었을 때는 커피값과 축의금을 내면서 축복하는 것이 나의 할 도리였고, 내가 신부가 되어 사람들을 초대할 때는 커피값과 축의금을 기대 않고 그저 베푸는 것이 나의 할 도리임을 깨달았다.


충분히 억울한 일이다. 특히나 보상심리가 발동한 이후로는 절대 괜찮아질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하더라도, 나 중심적인 삶에서 어떠한 대안과 방법을 찾든지 간에 그것은 한낱 토끼의 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벗어나는 일.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이 나에게 토끼의 간과도 같은 명약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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