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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Dec 19. 2021

여보, 나 똘끼가 생겼어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을 만나서

애들아 나는.. 어제 라면을 먹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이 무리에서 쓸모 있는 멤버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겨우 생각해 낸 말이었다. 나는 정인처럼 웃긴 사람도, 유민처럼 특색이 있지도, 은정처럼 뷰티에 관심이 많지도 않은 그냥 그런 열네 살 중학생이었다. 그저 그런 애가 어느 날 이 화려한 무리에 꼽사리처럼 들러붙었으니 이곳에서 나는 내 존재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꼽사리 이름표를 떼고 당연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생각과는 달리 할 수 있는 재주는 딱히 없었다.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이쯤에서 웃어도 되나 눈치 보며 낄낄대거나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정보를 슬며시 내밀거나, 예를 들면 저 위의 라면 얘기 같은, 뭐 그게 다였다. 어쩌다 시선이 내게 주목될 때에는 과한 리액션으로 갑분싸 되기 일수였으니 나는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나조차 나를 따분해했다.


 같이 있으면 꼭 웃겨야 해?


새로 알게 된 친구는 그런 내 발상에 반문했다. 같이 있는 게 즐거우면 됐지, 왜 꼭 웃겨야만 하는 거냐고. 나는 재미가 없었지만 이 친구는 나를 꽤나 자주 찾았다. 서로 많은 말을 하다 보니 웃음은 자연스레 뒤따라오더라. 그쯤 나는 착하면서도 밝은 아이가 되었다.



 여대생이 되서 했던 소개팅 자리에서야 알게 됐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는 어떤 말도 재미가 없어. 그때 나는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었네. 그 아이들과 잘 맞지 않았던 거야. 그렇다고 그들을 떠나 나에게 맞는 새로운 무리를 탐색하기에는 너무나 소심했어. 그럴 수 있어, 그땐 그게 최선이었네. 라는 말로 어린 날 겪었던 어려움을 달래고 넘어갔다. 물론 달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지만.


 일상의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것쯤은 거뜬해졌고 남들 타이밍 맞춰서 박장대소를 터뜨릴 눈치도 넘치게 있는데, 이번엔 똘끼가 충만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친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다 보면 종종 등장하는 상황극은 나로 인해 무너졌고, 야외에서 신나게 노는 시간에는 왠지 모르게 내 주위만 조용했다. 물싸움을 하면 나도 신나게 물줄기를 맞아봤으면 했고, 회식 자리에 가면 술을 마시진 않아도 가벼운 대화가 끊이지 않고 화기애애했으면 좋겠는데. 물줄기는 나를 피해 쟤를 향했고, 회식 테이블은 내 자리를 기준으로 두 부류로 나뉘었다.  분위기에 들뜬 팀 그리고 밥 먹으러 들른 팀. 후자 팀의 리더는 매번 나였다.


 약간의 똘끼만 있으면 더 신나게 어울려 놀 수 있을 텐데. 괜히 나 때문에 이쪽 분위기가 신나지 않는 거라는 부채감이 마음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중학생 때 느낀 부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게였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음에도 완전히 자유하지 않은 이 찝찝함은 난 재미는 어느 정도 있지만 즐거운 똘끼는 없는 사람, 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그리고 선포했다. 난 그런 표정은 잘 못해. 이럴 때 난 그런 상황극은 못해. 나는 그런 똘끼가 없어.


 그래서 의아했다. 남자 친구 앞에서 웃긴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세상 가장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며 웃는다는 친구의 말이 새삼 놀라웠다. 남자 친구 앞에서는 예뻐야 하는데. 남자 친구랑 그런 추한 장난은 어떻게 치지. 똘끼 충만함으로 그 앞에서 신나게 놀 수 있다고?


짧은 연애 몇 번 해본 게 다였던 나는 그 친구의 말을 공감할 수 없었다. 남자 친구 앞에서는 항상 예쁜 모습을 보여줘야 했고, 같이 이야기하며 낄낄 웃을 수는 있지만 과한 장난을 쳐본 적은 없었다. 아름다운 모습만이 아닌 나의 자연스러움을 내어 보여도 그 관계가 괜찮을 수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 자랑스레 내보일 똘끼는 없을지 몰라도, 나도 나만의 자연스러움은 있을 거잖아. 나와 잘 맞는 사람이랑 연애해야지.


 친구들에게서만 들어봤고, 브런치와 다른 책의 저자들로부터만 귀동냥했을 뿐이다. 책에서 배운 이론을 적용하려 했던 탓인가. 나의 조급함은 상대방을 뒷걸음치게 만들었을 뿐, 이 사람과도 저 사람과도 로맨틱한 케미스트리는 발현되지 않았다. 꿈같은 연애소설은 내게 정녕 판타지로만 남는구나.


좌절의 날들을 헤매다가 오빠를 만났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자연스러움으로 결혼까지 왔다. 처음에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해도 주제가 되는 대화가 이어졌고, 툭 던진 한 마디를 가지고 치열하게 이야기하다가 저 속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감정선을 터뜨리게 하는 밤도 점점 잦아들었다. 서로 웃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각자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우리를 보게 되었다. 오늘 만나서 뭐하지? 생각할 필요 없이 그를 만나는 것 자체가 데이트의 완성이었다. 내게 무장해제한 채 다가오는 그에게 나 또한 나의 전부를 보이며 그를 맞이했다.


100%.

이게 바로 친구가 말했던 그 자연스러움인가 보다.

나를 다 보여도 괜찮은 그런 사람이 내게 왔구나.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이리저리 툴툴댈 때도 온전히 듣고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 아직 서툰 요리지만 자기 입맛에 꼭 맞는다고 행복하다는 사람. 힘 조절 실패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새어버린 가스에도 어 방금 누가 날 불렀냐며 함박웃음으로 넘어가는 사람. 자고 일어나 산발이 된 머리와 한껏 부은 눈코입 위에 아낌없는 뽀뽀를 날려주며 예쁘다 속삭이는 사람. 조금이라도 훌쩍이면 저 멀리에서 듣고 헐레벌떡 쫓아와 왜 우냐고 꼭 물어보는 사람. 잠 못 자고 뒤척이는 날 다 알고 손으로 등을 도닥여주는 사람. 잘 놀다가도 갑자기 아픈 것 같다 하면 빨간색 약통에서 소화제를 꺼내 주고 매실액을 따뜻이 타주는 사람.


오빠랑 있으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 정답이 없었다.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도 없으니 그 기준에 나를 맞춰야 하는 부담이 없었다. 오빠는 그저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 매일 느끼게 해 줬고 나는 모난 사람이 아니구나 하루하루 다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발견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약간 맛 간 상태의 그 똘끼가.


술을 먹지 않았는데 약주 한 잔 걸친듯한 과한 텐션이 내게도 생기더라. 시도 때도 없이 상황극을 시도해도 민망할 것이 없었다. 결국 노잼일지라도 재밌었다. 오빠는 난데없는 나의 묘한 행동에 왜 이러는 거야 하하하 빵 터지곤 했다. 남을 보며 왜 저러는 거야 배꼽을 잡던 내가,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 짓을 배시시 웃으며 저지르고 있었다. 설거지 하는 오빠의 등 뒤로 매미처럼 매달리거나, 모든 말의 끝음절을 한 껏 올려서 아기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아, 혀가 반토막 난지는 꽤 오래되었지. 반만 남은 혀로 마치 평범한 말투는 어떤 건지 잊었다는 듯한 말씨를 내뱉는다.


 어제도 오빠 앞에서 똘기 충만하게 한참을 까불대다가 어 나 몸이 안 좋은 것 같아, 갑자기 표정을 바꾸었다. 체했나 하는 말 한마디에 오빠는 엄지와 검지 사이의 손을 꾹꾹 눌러준다. 아프다고 꺅꺅대는 나에게 급체 같다며 따뜻한 물에 매실액을 타 주고 등을 두두두두 안마기 틀어놓은 듯 일정한 속도로 두들겨주었다. 이제 좀 괜찮아? 급체가 맞나 보다, 나를 참 다정스레 쓰다듬어 주더라.


 나를 귀찮아하지 않음이 고마웠다. 잘 놀다가 왜 그래? 아프긴 어디가 아파 핀잔주지 않음이 정말 고마웠다. 내가 신이 날 땐 오빠도 흥이 오르고, 내가 아플 땐 오빠도 진지하다. 그 사실이 감격이 되어 화장실에서 감사기도를 드리며 조용히 울었다.


이제 나는 마음껏 똘끼 있게 살 수 있다.

어른인 척 안 하고 여기가 아파, 괜스레 유난을 떨고 엄살을 부려도 괜찮아.

나는 내 모습 자체로 반짝반짝 윤이 나고, 아무것도 안 해도 사랑스럽고 아무거나 해도 사랑스러워.


여중생 시절 내가 원했던 재미있는 친구가 되는 것과 성인이 되어 갈망하던 똘끼 있는 사람은 내가 남들을 웃기는 개그우먼이 되고 싶다거나, 타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돌아이가 되고 싶은 것과는 다른 종류의 바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

나의 날 것을 드러내도 누군가는 재밌다며 받아주는 정서적 교감.

나의 존재가 당신에게 맞닿아 우리를 형성하는 포근한 안정감.  


재미있는 친구가 되면 날 두 팔 벌려 받아줄 것 같았으니까. 똘끼 있는 잘 노는 사람이면 어딘가 부족한 행동에도 나는 여전히 사랑 받음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30년의 인생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째 이제야 진짜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든다.

꾸밈없는 나의 모습은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이전과 달라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이제야 나의 자리를 찾았다는 걸 적어본다.


코를 드릉드릉 골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자는 당신의 모습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는 나의 자리.

내게 이렇게 해줬으니 사랑해가 아니라 당신이기에 사랑한다 고백할 수 있는 나의 자리.

당신의 희생이 당연한 것 아님을 기억하고 감동하며 감사하는 나의 자리.


여보, 나 똘끼가 생겼어.  









 



 




 

 











 

사진출처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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