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괜찮니 물어봐요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_시편 103편 14절
아이들에게 이에 관련된 소식만한 핫이슈는 없다. 대차게 흔들리는 이, 쏙 빠져 얕게 패인 자국만 남은 잇몸, 옆집으로 바싹 붙어 이사 온 듯 한 덧니까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그런지 매번 티쳐에게 달려와 입 쩍 벌리고 히어 히어(Here, here!) 손가락 넣어 애타게 외친다.
드디어 정후의 차례였다.
아침에 등원하자마자 내게 입을 아 벌리며
입 안에 난 덧니를 보여준다. 아이에게 상태를 물어보니 치과에서도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일단 이가 빠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 모양이다.
어구, 아팠구나 다독여주고 하루를 시작했다.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던 중 점심시간에 정후의 치통이 시작된 듯했다. 조용히 앉아 식판을 받고 밥을 먹기 시작한 정후는 이가 난 부분이 아프다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웃으면서 장난치고 잘만 놀던 애가
갑자기 왜 아프다고 울고 그러는 거지, 벌컥 짜증이 치솟았다. 9명 아이들에게 정신없이 점식 배식하느라 진땀을 빼는 시점에 정후의 투정은 빨리 처리해야 할 또 하나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일단 배식을 멈추고 시선을 정후에게 두며 말했다.
There’s nothing I can do for you. He said that you just gotta wait until it comes out.
말 그대로였다.
치과 의사도 이가 빠질 때까지 그저 기다려야 한다했는데 내가 뭘 어쩔 수 있을까. 내 말을 들은 정후는서글픈 마음 감추느라 입을 오물거렸고, 나는 다른 쪽으로 음식을 먹으라는 말 한마디를 한 채 다시 배식에 집중했다.
식사를 끝낸 정후는 양치를 하러 갔고, 문득 나는 짜증이 과하게 난 상태를 깨닫고 하나님께 중얼중얼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나님, 지금 저 너무 짜증이 나요. 의사에게 받아온 약도 없는데 제가 뭘 해줄 수 있겠어요. 저도 지금 배식하느라 정신없고 힘들 단말이에요.
투덜투덜 하나님께 속 시원히 털어놓자 치솟기만 하던 짜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뜨거웠던 감정이 해소되자 울먹이던 정후의 얼굴을 다시 생각나게 하셨던 것은 분명 하나님의 싸인 이리라. 이제 다시 정후를 세심히 돌보라는 싸인.
겨우 정신을 되찾은 나는 정후가 오면 다시 차분히 일러주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보니 정후는 내게 아픈 부분을 치료해달라고 이야기한 게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나 여기가 아파요 하고 어리광 부리고 싶었던 걸 텐데 내가 너무 했나 싶어서 말이다.
양치를 끝낸 정후가 돌아왔고, 나는 그를 이리 오라 다정히 손짓했다. 아까와 확연히 온도차에 나 스스로도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진심이니까 용기 내어 정후를 안아준다.
아까 이가 많이 아팠느냐고, 얼마나 아팠냐고.
하지만 당장 선생님이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당분간 이가 나올 때까지 반대편으로 음식을 먹고,
씩씩하게 참아보자고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반성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한 번 살짝 눈 감아주는 걸까. 정후의 반응이 썩 나쁘지 않다.
진작 왜 이렇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느냐 원망하지 않는 정후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이게 정후가 듣고 싶었던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하나님이 일러주신 마음으로 아이에게 다가가면 가장 첫 번째로 평안을 누리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알고 보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 건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정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나의 말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듣기 시작했다.
Clean up 시간에 딴짓하지 않고 정리하기 시작했고 종이 울리자 바른 자세로 앉아서 Listen to Teacher! 하고 말썽쟁이 친구들 앞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군기를 잡기도 했다.
책상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곧게 펴 앉은 정훈의 눈에는 나를 향한 고마움과 충성심이 가득했다. 마치 내 아픔을 보듬어 주어 고맙습니다, 선량한 눈 빛으로 외치는 듯했다.
비록 나의 첫 마음은 짜증과 귀찮음이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상태를 받아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그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달래줄 수 있는 사랑을 허락하셨다.
아이의 아픔을 쓰다듬어 준 그 하나의 사랑으로
아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몇십 번의 잔소리보다, 몇 백번의 짜증보다
아이가 스스로 변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 라고 마음먹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이의 필요를 만져주는 사랑이었다.
각자의 필요는 모두 다 제 각각이다.
나는 다정한 반응과 우쭈주 해주는 자상함을 사랑이라 여기고 있고 정후는 자신의 아픔을 돌봐주고 진정으로 걱정해주며 다독이는 것을 사랑으로 느낀다.
저마다 다른 필요의 모양에 꼭 맞는 사랑으로 다가와주시는 하나님이 새삼 대단했다.
나를 아신다는 것의 의미가 이렇게나 큰 것인지를
이제야 진정으로 체감한다. 나의 필요를 아시고 원함을 꿰뚫어 보시며 한치의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그 사랑 넘치게 받고 누리며 나 또한 우리 아이들 각자에게 필요한 사랑을 베풀어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 후로 정후의 덧니는 더 이상의 괴로움을 남기지 않고 스르륵 빠졌다. 마치 자신의 본분을 다 한 것 마냥 소리 소문 없이 아주 고요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