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둘 수 없는 그리움
6살 꼬물이들이 많이 컸다.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에 지칠 만 한데 놀라울 정도로 잘 버텨준다. 힘들면 그만하자는 엄마의 말에도 할 수 있다 씩씩하게 대답했다는 아이가 대견하다.
물론 여기저기 A/S가 필요한 시점인 건 분명하다.
3주 차에 들어서니 When is break time? Is it lunch time yet? Are we doing two pages? 아이들의 빗발치는 질문이 폭포수를 이루어 시원하게 쏟아진다. 빨리 끝내 달라는 바람 모르는 건 아니다만 에헴, 손 뒷짐 지고 묻는 질문에 답만 간결히 한다. 자 다음 페이지.
수업 중 뜬금없이 후다다닥 자리를 뜨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눈 뜨고 코 베인 사람답게 눈만 꿈뻑인다. 외계인 도민준만 순간 이동하는 게 아니다. 그새 어디로 간 걸까. 빼꼼 다시 비치는 얼굴이 사라질까 다급하게 소리친다. 잡았다 요놈, Stop disappearing!
화면으로만 만나는 게 아쉬워 6교시가 끝나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하트를 만들어 흔들고 뿌리고 날리던 시절이 있더랬다. 이제는 너무 쿨해서 아주 고맙다 그래. 나와 헤어짐에 미련 한 톨 남지 않은 아이들.
맞닦드린 현실에서 손과 발 힘차게 저어 둥둥 떠 있지만 이내 손끝 발끝 짜릿하게 저려온다.
많이 좋아진 세상, 화면 너머로 아이의 맑디 맑은 눈망울이 맺히고 헤드셋에는 까르르 웃음소리가 빙글빙글 귓가에 들려오지만 함께 살 부딪히며 지내던 것만 못하다.
바라만 보아도 예쁜 아이의 눈을 맞추고 방긋 웃어 보인 순간들. 나는 허리를 굽혀 아이는 고개를 들어 서로를 으스러지게 안아주던 때. 잠을 잘 자고 온 날에는 충천된 에너지가 닳지 않도록 있는 배에 힘을 실어 쩌렁쩌렁 하이톤의 목소리로 장단 맞춰주는 일은 나의 기쁨이었으며 유독 기운 없어 보이는 날에는 곁에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음을 알아주는 일 또한 내겐 소중했다.
존재의 사랑스러움을 쓰다듬어 주고 연약함을 보듬어 안아주는 사이에 자연스레 피어나던 온기. 살을 맞대며 사랑했던 따듯한 날들이 그립다.
알고 있고 믿고 있다.
보채지 않아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갓난쟁이 아이를 쏙 품에 넣어 안아도 불안하지 않고 보송한 볼에 뜨거운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도 코로나면 어쩌지 하는 찝찝함 없이 양심에 떳떳할 수 있는 세상은 다시 올 것이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물 위에 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앞뒤로 휘저을 힘도 남아있지 않은 양팔에 동그란 튜브를 끼워주고 피가 통하지 않는 발 끝에는 오리발을 씌어서라도 우리는 잘 버텨야 한다.
그러니까 사실은.
사랑하니까 보고 싶다는 뻔한 말을 쓰고 싶었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니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게 됐다.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법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안전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준법정신 투철한 시민이 되는 것뿐이다. 원망과 불평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보지 못하는 억울함은 도저히 안으로만 지켜두지 못하겠다.
사랑하는 마음을 직접 얼굴 보고 온 몸으로 티 내야 속이 좀 풀릴 응어리를 이렇게라도 어루만진다.
사랑하는 이를 만지고 느낄 수 없다는 현실이 문득 실감 나는 순간에는 가슴을 부여잡고 울음을 토해내는 밤을 보내고, 차오르는 그리움은 제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만남을 통해 덜어가며 하루속히 보게 되기를 기도하는 낮을 살아간다.
다시 보는 날이 있겠지 하고.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더 사랑하며 살아야지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