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를 둥둥, 발 디딜 수 없는 걸 모르고
꺼져가는 등불은 끄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이 불씨는 당장에 꺼뜨려주셨으면 좋았을 뻔했다. 아니지. 불을 끝내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이었지.
훅 지나가는 바람같이 들어온 그의 카톡에 내 마음의 불씨는 서로 엉겨 붙기 시작했다. 알맞게 쓰임 받는 불이 될지, 큰 사고의 화근이 될지는 두고 봐야 했다. 그도 어쨌든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크리스천과의 만남은 언제나 안전하리라 믿었으니.
그 후로는 이따금씩 카톡을 주고받았다. 한두 번의 격려 차원의 카톡은 어느 순간 대화로 넘어갔고, 알아가는 단계답게 직장과 각자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누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설레고 즐거웠다. 핸드폰은 손에서 내려갈 줄을 몰랐고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이미 마음이 부풀대로 부푼 나는 가끔 대화가 뚝 끊어지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고 그와 어떻게든 다시 연락하고 싶어 방도를 모색했다. 안동 여행에서는 시소를 탔다면, 그와 연락한 후로는 널뛰기를 열심히, 그것도 하늘 높이 하는 중이었다.
조용해진 카톡방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잡고 일기를 통해 짝사랑의 쓰라림을 적어보기도 하고, 정승환의 나였다면 을 무한반복으로 들으며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할 텐데 쓰라리게 한탄하기도 했다.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애타는 감정을 일기장에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쩌면 예수님도 나에게 이런 마음은 아니실까 생각했다. 가슴이 타들어가도록 누군가를 원한다는 게 이런 걸까. 예수님에게 나도 뒷모습만을 보여주는 건 아닌가.
그러니 노력은 정말 많이 했다. 하나님을 놓고 싶지 않았으니 여전히 찬양을 자주 들었고, 큐티를 했고 묵상을 기록하곤 했다. 일터에서는 최선으로 일하며 후회 없이 보냈다. 순간을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직장동료와의 트러블을 이겨내기도 했고, 아이를 정성스레 사랑으로 대했다. 이런 내가 기쁘셨는지 하나님은 한 아이의 미소를 통해 내게 찾아와 주시기도 했다. 지친 발걸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퇴근할 때면 내가 너 데리러 왔다, 찬양을 통해 마중도 나와주셨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감격은 꿈에 그리던 천국과도 같았다. 주 예수와 동행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진짜라니.
그래도 나는 나를 어쩔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금방 그가 나타났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면 대화 주제는 온통 그였다. 잘 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무의식적으로 아 어떻게 하면..이라고 혼자 중얼거려 친구가 한참을 놀려댔다. 뭘 어떻게 하냐며, 지금 걔랑 연락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거냐고. 단단히 빠졌네 기지배가. 이런 내가 웃겨 친구와 한참을 낄낄댔다.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답 없는 상사병 초기 증상이었다.
하나님과 그 사이에서 매일을 줄다리기처럼 왔다 갔다 했다. 결국은 내게 더 실질적인 그에게 마음을 기울였다. 그와 더 잦은 연락을 주고받았고, 본격적인 썸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을 때 나는 극도의 흥분상태였다.
연락을 나누던 중 그는 지나가던 길이라며 나를 데리러 와 줬다. 어느 날은 마트에 볼 일이 있어 나왔다며 마침 퇴근길이면 보러 가겠다는 전화도 왔다. 이미 집에 도착했다고 말한 내게 친구들은 야 이 바보야 집에서 반대방향으로 돌아가 어서! 조언하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고.
사랑에 눈이 멀었던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날 집 앞에 데려다준 그를 보내기 싫어 차 안에서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와 남동생은 새벽 한 시가 되도록 연락 없이 오지 않는 날 찾아 삼만리였다. 동생은 그날 날 말없이 한참을 쏘아봤는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는 게 맞는 상황이다, 판단되니 눈은 바닥에 붙여 깔아놓는 게 맞았다.
그 후로는 카페에 갔고, 밥을 먹으러 갔다. 어깨가 슬쩍 닿으며 걸었을 때 배시시 웃으면 퍼지는 묘한 기류도, 식당에서 만난 분이 그에게 여자 친구신가 봐요, 호호 웃으며 들어온 질문에 쑥스럽게 피식 웃어버린 핑크빛 어색함도 마냥 좋기만 했다. 교회에는 절대 공개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송년 음악회에 그와 둘이 들어갔다. 어깨를 피고 당당하게. 그 형 잘생겼다며 교회 동생들은 오~ 해줬는데 그게 그렇게도 좋았다. 송구 영신 예배 후 새벽까지 오가는 따뜻한 연락도 참 행복했다. 다 이룬 사람의 흐뭇함. 그와의 관계는 벌써 안정권이었다. 분명한 선을 긋는 일만 앞뒀다.
새해가 밝았고 그는 내게 할 말이 있다며 곧 만나자고 했다. 일출을 보며 생각이 정리됐으니 꼭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서울로 자취하러 떠나는 나를 데려다준다고 한걸음에 달려온 그는 초콜릿을 먼저 건네주었다. 놀라지 말고 들어 달라고, 청심환 같은 초콜릿이 필요한 상황일 거라고.
이 무렵부터는 기억에 하나님이 없다. 앞에는 흰색의 제네시스에서 내리는 번듯한 187cm의 그가 보일 뿐이었다. 진짜 천국을 누비던 나는 이제 붕 떠 있는 구름 위로 달릴 작정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완전히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