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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Oct 09. 2022

애쓰지 않아요 닮아갈 뿐이에요

결혼, 그 후

결혼 1주년을 앞두고 남편이 분주하다. 같이 살고 있으니 아무래도 완벽한 서프라이즈는 어렵지. 아침부터 케이크가 배송된다는 문자가 하필 내게 오다니. 그래도 케이크 위에 꽂을 토퍼는 자랑스레 내밀더라. 그건 정말 몰랐어 여보! 때마침 지난번 무슨 색이 좋냐 묻던 커플 맨투맨도 왔다. 성악 레슨이 끝나니 남편이 빼꼼 얼굴을 비춘다. 파스텔 분홍빛의 아름다운 꽃을 한 아름 내밀며.


벌써 1년. 결혼식을 치른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언제 열두달을 살아냈지. 앞으로 30년 40년을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자 우리는 웃으며 잠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뽀뽀를 멈추지 말자고 키득거리며.


결혼까지는 정말 어려웠는데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데 별도의 노력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식은 죽을 후루룩 들이키는 것과 다름없었다. 억지 노력의 사랑이 아닌 본능과도 같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굳이 후후 불어 죽을 식혀먹지 않아도 된 것이다.


나는 남편의 모든 점을 사랑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남편. ET처럼 불뚝 튀어나온 배가 귀엽고, 아기같이 생긴 발가락도 어찌나 앙증맞은지 모르겠다. 나만 보면 실실 웃는 천진난만한 미소와 어디라도 살이 닿아있었으면 좋겠다며 슬근슬근 다가오는 능글맞음은 나를 피식 웃게 한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남편의 두 볼을 붙잡고 얼굴을 비비며 아이구 이뻐 어쩜 이리 이쁠까 감탄한다.


남편을 완전 많이 사랑하지만 완벽하게 사랑하지는 못한다. 나도 남편의 타고난 배려심을 닮아 그의 필요를 살뜰히 챙기거나 그의 말에 경청해주고 싶다. 온몸으로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보여주고 싶은 거다. 하지만 나는 주기보다는 맘껏 받기를 즐기는 편. 해주지 못하는 내 성향이 못내 마음에 걸려 미안해, 괜찮아? 여러번 물어도 남편은 상관없단다. 나 같으면 나의 이야기에 집중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면 정말 기분이 나쁠 텐데. 하지만 남편은 그저 자기가 말할 수 있고 들어줄 상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내게 필수 불가결한 리액션이 그에게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그만인 부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대신 그는 나의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행복해하곤 했다. 경청이고 선물이고 필요 없고, 자신을 사랑스레 바라봐주는 눈빛과 아이 이쁘다 해주는 그 짧은 표현만으로도 충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보니 신혼 초에는 남편에게 왜 내게 이렇게 해주지 않느냐 혼자 툴툴거릴 때가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면 끝까지 나를 받아줘야 하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날 바라보는 눈빛과 쓰다듬는 손길에 꿀과 참기름을 듬뿍 발라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그 방식만이 유일하고 완전한 사랑인 줄 착각한 데서 오는 서운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사랑법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모두의 성향과 성격이 제각각이듯, 마음을 표현하는 법은 다양할 수 있다는 걸.


남편이 그랬다. 목사 아들로 나고 자라니 자연스레 남을 더 먼저 생각하고 챙길 수밖에 없었다고. 물론 워낙 순둥스러운 성향이 한몫 하기도 하지만. 평생 남을 챙겨주던 세심함으로 사랑하는 날 열심히 챙겨주는 것뿐이라 전혀 힘에 부치지 않는단다. 성실한 노력이라기보다는 몸에 배어있는 편한 방식의 사랑 표현법이라는 거다.


내겐 이랬다. 평생을 충분한 사랑에 목이 말랐던 지난날에 참 많은 상처를 받다가, 결국 나의 교만함을 벗어나니 누군가 내게 베푸는 친절과 배려는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닌 엄청난 감사의 제목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남편의 모든 행동에 항상 감동했고 감사했으며 그를 최고로 여겼다.


이제는 서로의 자연스러운 방식이 각자에게 최고로 잘 맞는 사랑임을 안다. 마음껏 챙겨주는 일과 온 맘 다해 감사와 기쁨을 표현하는 일이 서로를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도.


결혼 1년을 지내보니 그래도 우리 둘 참 많이 닮아있다. 남편도 날 닮아 꿀을 자주 흘려주고, 나도 남편을 닮아 맛있는 음식을 첫 입을 먼저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고

풍성한 사랑의 교제를 통해 서로에게 배워간다.


남편과 나는 종종 이야기한다. 요렇게 딱 맞는 베필을 주시려고 각각 36년 30년을 기다리게 하셨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신실하게 키워주신 덕분에 최고의 타이밍에 서로를 만나 겸손과 배려의 사랑을 하며 살 수 있는 것이 은혜라고.


바라기는 우리의 결혼 2주년은 더욱더 풍성하기를. 우리 가정에서만 행복을 누리는 것을 넘어 다른 이웃에게까지 흘러넘치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여보 사랑해요.

하나님 감사해요.


남편의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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