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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Aug 27. 2023

나는 좋은 친구인가요?

I See You

 수두룩하게 쌓인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한 주말. 침대에서 내 등판 하나 일으키는 게 이리 어려운 일이었다니. 철썩 달라붙게 하는 침대만의 중력이 따로 있는 게 분명하다.


 화창함을 넘어 여태 무더운 날씨에 만난 나의 소중한 신앙의 자매님과 함께  짭조름 맛있는 명란 오일파스타, 심심 건강한 맛인 트러플 버섯 리조또를 먹고 초록색 나무가 시원하게 드러나는 통유리의 카페를 다녀왔다.


 하루종일 서로의 삶에 대해서 나누다가 몇 번을 울컥하고 꺅꺅대며 웃어댄 오후가 참 소중하다 느껴졌다. 오랜만에 나들이에 기분이 좋아진 터라 동네에 돌아온 후에는 남편과 빙수를 먹으러 갔는데, 거기에서도 나의 수다는 끊길 줄 몰랐다. 이게 토요일의 맛이지!


 때마침 연락이 닿은 친구와는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는데, 그 친구 역시 삶이 곧 신앙인 친구였기에 통화하는 내내 즐거운 마음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힘들었던 이야기, 부모님과의 관계 가운데 느껴지는 어려운 부분들, 배우자를 만나게 된 히스토리, 삶 전반에 걸쳐있는 신앙의 간증들.


쾌활하게 웃고 아쉬운 마음에 전화를 끊었는데, 무언가 꺼림칙하고 공허했다. 하루종일 말을 쉴 새 없이 했는데도, 심지어 사랑둥이 남편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여전히 심심하고 외로운 것이다. 곧이어 오늘 하루 나의 말과 태도를 되돌아보는 현자타임이 찾아왔다.


아니 무슨 말을 그리도 많이 쏟아놨을까. 그 정도의 디테일까지 공유할 필요가 있었을까? 잘난척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왜 굳이 가르치는 듯이 말을 했던 거지? 나는 오늘 제대로 대화한 게 맞나? 내 존재감을 드러내고 확인받으려고 한 건 아닐까?


 옆에서 바라보던 남편은 내가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 내용을 남들에게 꼭 알려주려는 열정이 꽤나 큰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는데, 거기엔 남을 가르치려는 욕구가 어느 정도 묻어있는 듯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속이 조금 상하고 그들에게 많이 미안했지만 뭐 어떡해, 이게 난걸. 하나님, 저는 이런 저를 못고치지만하나님께 솔직히 나아갑니다. 저를 예수님의 보혈로 폭 덮어주세요. 샤워하고 머리를 감는 내내 기도 하는 마음이었으나 에잇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


여보, 오늘 이렇게나 많은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외로워. 나는 하나님 말고는 채워지지가 않는가 봐.


안방으로 들어가 털푸덕 누운 후 성경을 펴고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나의 친구되신 예수님의 핸드폰 번호를 누르고 전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렸다. 신기하게도 통화 연결음이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예수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우리는 뜨거운 사마리아에서 만났다.


예수님은 내게 남편 다섯이 있는 것을 아셨다. 진짜 남편, 직장이라는 남편, 친구라는 남편, 말이라는 남편, SNS라는 남편. 나를 채우려고 세워둔 남편이 이렇게나 많네요. 그런데도 여전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요. 저를 만나주세요. 저를 먹여주시고 채워주세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과 목마르지 않을 물 되어주심을 다시 깨닫게 해 주셨다.


그렇게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좋더라. 또 내 말만 쏟아놓는 지경이기는 했지만, 비로소 채워지는 오늘 나의 갈망. 이내 오늘 만났던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니 그저 감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을 위한 마음과 중보 기도는 오히려 나를 풍요롭게 하는 은혜가 있다.


눈을 떠 빌레몬서를 읽는데,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_빌레몬서 1장 7절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_빌레몬서 1장 20절


“나”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이 평안함을 얻는다는 것. 기쁨을 얻게 하고 위로를 받게 한다는 것.


 과연 오늘의 나는 그들에게 평안함을 가져다주고 기쁨과 위로를 전해주었을까? 대화와 소통이 아닌 나를 채우려고 맺는 관계는 어딘가 부담스럽고 거북함이 분명하다. 하루를 되돌아보니 내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던 대화가 곳곳에 훤히 드러났다. 부끄럽고 미안한데도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은, 나는 대화 다운 대화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오늘 알려주신 새로운 방법을 두고 기도해야겠구나. 나로 인해 그들이 평안함을, 기쁨을,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부담과 부대끼는 대화가 아니라 편안함과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결국 내가 아닌 너를 먼저 두어야 가능한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 사실 저 이거 진짜 못해요. 하게 해 주세요 하고 엉엉 울어도 저는 못할 거라는 걸 아는데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선한 것 하나 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게 익숙해진 요즘이라 기도가 더욱 정직해진다.


네가 아니라 나야.
예수인 내가 네게 평안함을 주고
예수인 나의 사랑으로
네가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는 거야.


그렇다. 예수님이 내게 먼저 진정한 우정의 본을 보여주셨구나. 나는 예수님으로 인해 평안을 누리고, 그분의 사랑으로 기쁨과 위로를 얻는 존재지. 하나님, 나는 할 수 없으나 그 사랑 본받기를 원해요. 제가 맺을 수 없으나 주님께 붙어있음으로 열매가 맺히기를 원해요.


여전히 말이 많은 나는 잠자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했다. 양심상 이제는 듣자, 싶더라. 하나님, 하나님은 제게 하고 싶은 말 없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시키고 싶은 것이나 아무것이나요.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_요한3서 1장 2절


네??

그게 다인가요?


솔직한 나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묻고 듣는 것이 두렵다. 내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시킬까 봐. 순순히 따를 리 없는 나를 알기에. 그런데 하나님은 그저 그게 다라고 하시더라.


사랑하는 아링아, 네가 나를 알고
네가 건강하게 지내기를,
내가 주는 평안을 네가 누리기를.
내가 너를 위하고 있단다.


평생 그를 제대로 알아가는 것.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실패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 한 분에게 나의 모든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일. 그것이 내게는 가장 중한 일이구나.


예수 좋은 내 친구!

그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 가며

남을 위한 진정한 우정을 쌓아갈 수 있기를.


I see you.


당신을 보는 하루.

참 감사한 하루.



사진출처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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