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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Sep 26. 2024

할머니가 되고 싶은 엄마, 엄마가 되고 싶은 딸

모두를 위한 기다림과 기도

 내 딸 결혼 안 해도 된다고 백번 말하라고!


엄마에게 소리친 적이 있다. 30살이 된 나에게 결혼, 결혼, 결혼을 외치던 엄마에게 반항하는 의미로 했던 말이었다. 감사와 은혜로 30살의 나는 남편을 만나 5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고, 그 후로 엄마는 어여쁜 사위에게 장모님만의 사랑을 넘치도록 흘려보냈다.


예상되겠지만 이번에는 엄마의 관심사가 온통 아이로 바뀌었다. 임신, 임신, 임신!


일은 다시 하면 되니 임신을 위해 직장을 관두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흑염소 진액을 한 박스 사서 보내주시더니 이번에는 가게 손님에게 들었다며 마리아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해 보라고 하신다.


아이를 왜 낳아야 해? 왜 있어야 해? 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물었던 게 아니었다. 그 어떠한 설명과 설득 없이 아이만을 외치는 엄마를 보면 묘하게, 자기 방어적인 태도가 튀어나와서 받아친 말들이었다. 사실 아이를 원하는 사람은 엄마보다는 나일 텐데, 게다가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사람도 나일테고.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잔소리 듣는다고 아이가 바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낳으라니까 당장 준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을 자꾸 하라고 하시니 나도 모르게 왜?라는 말로 나를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 기도해 기도.


답답해서 기도를 더 해달라고 했더니 갑갑함을 느낀 엄마는 단박에 소리치며 당연히 기도하지! 하셨다. 하나님이 뭐라시냐 물었더니 답은 없으시다며 크게 웃었다. 요즘은 엄마 주변 권사님들이 슬슬 엄마 눈치를 본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시집, 장가간 부부들이 아이를 낳는데 우리 부부만 아이가 없다고. 엄마에게 슬며시 시험관을 이야기하는 권사님도 계셨다. 아이가 그리 안 생기면 병원을 가보라고.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먼저 넌지시 물었다. 그런 얘기 듣고 주변에 다들 손주 보신다 그러면 엄마 기분은 어떠시냐고.


나도 할머니 되고 싶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말을 어린아이처럼 툭 꺼내두셨다. 그동안 딸에게 임신하라고 닦달하듯 말했던 마음 뒤에 꽁꽁 숨겨두었던 그 말을. 실온에 꺼내둔 얼음이 이제 다 녹은 듯 느껴졌다.


그랬구나. 엄마도 남들처럼 예쁜 손주 안아보고 싶어서 여태 나한테 임신하라고 그런 거구나.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마음이었을 텐데 나는 잘 몰랐다. ~ 해야 된다 라는 엄마의 조급함과 단호함에 내가 왜! 만을 외쳐서 그랬을까.


어쩌면 엄마도 내 마음을 모를 수도 있겠다. 하라고 하고 싫다고만 하는 대화에서 서로의 진짜 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겠지.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 싶은 것처럼, 딸인 나도 이제는 엄마가 되고 싶다. 사실 우리는 같은 것을 원하고 바라는 상황인데, 왜 서로가 서로를 답답해하는 걸까. 말없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시점에 문득, 지금 이 기다림은 나와 남편만을 위한 시간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이가 없어 막연하게 지내는 지금이라는 시간은, 기도하는 우리 부부와 시부모님 그리고 우리 친정 엄마아빠 모두에게 허락된 기다림의 시간이다.


당연하게 생기는 자식인 마냥, 자연스레 얻게 되는 손주 손녀인 것처럼 여기던 우리 모두에게 걸린 브레이크 같은 시간.


진실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면 우리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답답함이 아닌 간절함으로, 조급함은 평안함으로, 당연함은 풍성한 감사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게 될 것이며 우리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일을 깨닫게 되겠지.


우리 부부에게 허락될 아이가, 우리의 난임을 걱정하던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보게 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정말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일하시는구나.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보는 시야가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하심만을 찬양하는 시간이 되기를.



하나님,

할머니가 되고 싶은 저희 엄마를 기억해 주시고

엄마가 되고 싶은 이 딸을 돌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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