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낮은 곳이 은혜입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
거울을 보며 볼을 톡톡 핑크로 물들이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
그 친구 임신 했을까?
지난번 모임에서 친구는 6월쯤 임신을 시도해 본다고 했었다. 집안 유전으로 임신 시도 한 방이면 될 것 같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하던 모습에 그렇구나, 했었는데. 이미 8월인데 어떻게 됐을까. 임신을 정말 했을 수도 있겠다.
내 첫 마음은 무덤덤. 왠지 그 친구의 인생대로라면 순조롭게 임산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자연스러운 예감이 들었기에. 친구는 항상 무난하게 인생을 사는 아이였다. 가족 관계, 남녀 관계, 대학 진학, 취업, 결혼, 그리고 임신까지도. 얼굴도 예쁘장하고 성격도 사랑스러운. 속 끓이는 소심함 없고, 선 넘는 무례함 없는. 친구의 속 사정은 모르지만 주변에서는 그의 무난한 인생을 참 많이도 부러워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저 정도만 살면 좋겠노라고. 유명인들처럼 대단한 인생은 아니지만 매번 무탈한 인생이라고 할까.
감정적으로 예민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어찌 보면 참 부러운 삶이다. 나에게 인생은 롤러코스터처럼 끊임없는 업 앤 다운, 어려움을 잇는 또 다른 어려움의 연속이었는데. 친구처럼 큰 고난이 없는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
아니나 다를까 단 한 번의 시도에 임신이 되었다는 말이 들려왔고, 미리 해둔 추측 때문인지 그 사실이 헉!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축하할 뿐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임신 준비하는 건 정말 힘들고, 막연하게 계속 시도하며 기다리는 것도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어깨를 두드려주며 정말 잘된 일이라고 축하하고, 축복한다고.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다른 친구는 기뻐하며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자기가 제일 늦게 아이를 가질 테니 아링아 걱정하지 마!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챙겨주었다. 에이 됐어, 너도 생각 있으면 미루지 마! 여유 있게 대답하는 나의 새로운 모습에 감사했다.
몇 달 전 부부 모임에서 날 챙겨주던 또 다른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부부의 슬픔을 함께 기도하며 감당해 준 친구는 다른 부부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속으로 내 걱정을 했다고 했다. 어떡하면 좋으냐고, 내 마음이 상할까봐 그것이 더 신경 쓰였다고. 그날은 그 친구의 걱정이 맞았다. 괜찮은 줄 알았다만 저녁에 집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하필 그날은 교회에서 베이비 블레싱, 출산을 앞둔 사람,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을 눈앞에서 마주쳐서 마음을 다독이던 중이었다. 한 번 버티고, 두 번째는 견디고, 세 번째엔 마음을 단디 먹었는데 마지막 네 번째에서 터져버린 것이었다. 숨을 오랫동안 참았다가 푸우하고 터지듯이.
도대체 왜를 찾으며 울부짖었던 밤. 남편과 함께 부둥켜안고 서로 나 때문이라고, 미안하다고 다독이던.
그날 밤에 비하면 나는 참 담대해졌다. 애써 노력하고 마음을 다잡지 않아도 정말 괜찮았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복할 수 있었다. 한편에 친구를 위한 조그마한 아쉬움이 들었을 뿐이다.
고난 없는 인생. 맘먹은 대로 풀리는 인생.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다음 날은 주일이었다. 찬양하기에 앞서 대표 기도 할 차례가 되어 은근 긴장되는 아침이었다. 기도문은 없어도 되었지만, 기도의 제목은 정리해서 하나님 앞에 귀한 기도가 되기를 원했다. 사람들 앞에 화려한 기도보다 하나님께 어떠한 고백을 해야 할까.
무조건 감사와 간구.
나를, 우리 찬양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자녀 삼아 주셔서 거룩한 주일에 발걸음을 인도하심에 감사.
주님의 임재 앞에서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실 것을 믿으며, 우리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찬양과 예배할 수 있기를.
타인의 시선을 워낙 신경 쓰는 나이기에 기도 후에도 괜스레 신경이 쓰였지만 지나간 시간은 잊으려 했다.
방금 기도한 대로 살기 위해 더욱 찬양에 집중했다. 감사로, 마음과 정성으로 예배자로 서기를.
찬양을 하며 더욱 감사가 흘러넘쳤다.
날 자녀 삼아 주셔서 예배할 수 있음에. 나의 모든 상황과 환경, 결과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음에. 그리고 새로운 마음이 들었다.
진정한 형통은 주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인생이 아무리 외롭고 괴로워도 주께서 날 붙드신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형통한 인생이 된다.
삶이 언제까지나 순탄하고 잘 풀린다 한들, 주님을 구주로 모시지 아니하면 헛된 인생이 되고 만다.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종으로 팔린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억울한 누명 쓰고 감옥에서 잊힌 요셉과 여전히 동행하신 하나님.
무난하고 편안한 삶이 아니라 주께 붙들려 그의 인도하심을 받는 인생이 진짜 형통, 잘 사는 삶인 것이다.
주님, 저 임신은 못했지만 주로 인해 제 인생 감사합니다!
지금 제 삶이 진정으로 형통한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어지고, 소득 없이 낭비되는 시간. 하지만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나의 인생은 결코 실패한 인생이 아님을 확신한다. 친구의 임신 소식에도 축하해 줄 수 있는 평온한 마음이 되기까지. 보이는 결과에 내 인생 판단하지 않고 주께서 책임지시는 인생에 감격하여 감사하는 믿음의 눈이 뜨이기까지. 주님은 나의 믿음의 지경을 넓히시고 또 넓히시고 계신다.
은혜에 자리에 놓여있다.
다음 주 성가곡의 가사, 이 낮은 곳이 은혜라. 유일한 소망, 오직 주만 보게 하시니..
지금 이 자리가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었을까. 목이 곧고 곧아 곧 부러져 마땅한 나의 자아. 단단한 돌 같이 말 안 듣는 고집쟁이가 고난과 결핍이 아니었다면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을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가기까지는 사실 열흘 정도면 가뿐히 들어갈 짧은 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완악함과 불순종으로 인해 가나안을 코 앞에 두고 광야에서 40년을 뱅뱅 돌게 되었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_신명기 8장 14절 -16절 말씀, 아멘
임신은 마치 열흘 되는 길같이 쉬운 일처럼 보인다. 배란 테스트기로 최적의 날을 찾고, 장어와 추어탕으로 몸을 활력 있게, 따뜻하게 하고, 다 안되면 인공 수정과 시험관이라는 의료 기술도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쉽고 빠른 길을 정확히 알고 계시고, 인도할 능력이 충분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그는 자녀 된 자를 결코 쉽고 빠른 길로만 가게 하지 않으신다. 아이의 욕구를 즉각 채우며 원하는 모든 것을 허락하는 부모가 가장 좋은 부모가 아니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과 뜻을 위해 일하시며 자녀를 깊이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빙그르르 돌고 도는 길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이 나의 상황을 모르셔서가 아니라. 그가 열흘길 짜리 가장 짧은 직선 코스를 실수로 놓치신 것이 아니라. 자녀 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낮추시고 주를 향한 믿음과 신뢰를 더욱 견고케 하시며 마침내 좋은 것 주시기 위하여 나를 그 광야로 인도해 주셨다.
교만하여 여호와를 잊지 않게 하는 나의 광야. 온전히 주님만 바라고 의지하는 감사한 땅.
바로 이곳에서 주의 자녀로 어두운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능력이 빚어진다.
고난을 감사로 보내는 능력.
모든 상황에 주님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능력.
어려움 가운데 잠잠히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능력.
친구를 위해 기도한다.
새 생명 잉태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복하며, 주께 더욱 간절히 간구한다.
세상이 주는 평안함보다 하나님 주시는 형통의 복을 누리는 그 친구와 그의 가정이 되도록.
이 땅에서 누리는 달콤함 보다 하나님 안에 있는 하늘의 보화를 깨닫고 누리는 삶이 되기를.
하나님께서 그 친구의 이름을 꼭 기억하셔서, 찾아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