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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Jan 31. 2021

엄마, 결혼 안 해도 된다고 백번 말해!

엄마가 선 잡아오든지 엄마가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 골라(?)

평생 잔소리로 스트레스 준 적 없던 순둥이 우리 엄마가 2021년이 되자 돌변했다.


갱년기도 아니고 남의 집 자식들과의 비교 전쟁 때문도 아니다. 엄마의 지극히 정상적인 인생의 순리가 우리 집 자식들에게는 지지리도 순조롭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의 to do 리스트에는 첫째 딸은 진즉 시집가고 둘째 아들은 이미 취업을 했어야 하지만 새해를 맞아 나는 뭣도 없는 싱글벙글 서른을 맞이했고 동생은 자격증 1급 없는 취준인 상태를 유지했다.


결혼 왜 안 하려고 하냐고? 그 반대다. 결혼하기 위해 내가 벌인 별의별 짓 우리 엄마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에이플 받았던 미팅 참석률. 묻고 따지는 것 없이

Go 한 소개팅. 공동체에서 했던 눈물 콧물 쏙 뺀 두 번의 대환장 러브 스토리. 모든 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돌파구가 될 거라 믿었던 크리스천 데이팅 어플까지도.


그 결혼 아주 기꺼이 손발 벗고 나서 해보겠다는데 도저히 혼자로는 안 되는 걸. 차라리 상대 없는 결혼이면 어떻게든 했겠지만 이젠 별도리 없다. 스스로 할 수 없는 목록 백몇 번쯤에 결혼을 추가한다.


딸 생일 축하해준다고 서울로 올라온 엄마는 내게 또 남자 얘기를 꺼낸다.


그 어플 다시 깔아봐, 엄마가 직접 봐줄게.

아니 그 사모님이 얘기하신 그분은?

성실하고 키가 크다고?

6살 차이면 많은 것도 아니야!


어느 정도 장단 맞춰주니 엄마의 흥이 오른다.

나는 열이 오른다.


아니 엄마, 결혼 안 해도 된다고 백 번 말해! 내 딸 결혼 안 해도 된다, 따라 해!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안 해도 된다고 백 번 말하라고!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두 번 쓴 거, 진짜 두 번 똑같이 말해서 쓴 거다.

뭐야, 깜짝 놀랐다. 녹음 파일 반복 재생하듯 엄마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같은 말로 경쾌하게 되받아쳤다. 결혼 안 해도 된다 하면 진짜 내가 결혼 안 하고 살 것 같으니 저리 고장 난 라디오 마냥 굴었을 거다. 어휴, 이 와중에도 귀여운 우리 엄마.


엄마가 이러니까 내가 더 조급해서 좋은 남자를 놓치는 거라고, 엄마가 이런 말만 안 했어도 내가 조급할 일은 없었을 거라 쏴 붙였다. 급하지만 않았어도 그 남자 앞에서 횡설수설 대는 일은 없었을 거고 신랑감 찾는 일만 아니었어도 그 남자 있는 그대로 편하게 사랑해 줄 수 있었을 거라며.


궁지에 몰린 듯한 기분에 원인을 찾고 찾다가 내가 아직까지 혼자인 이유는 하자 있는 내가 아니라 문제 있는 엄마라고 결론지었을 때가 있었다.


사이좋은 두 부부를 닮아 나도 내 짝과 금실 좋은 부부가 되고 싶었다. 화목한 우리 가정에 잘 스며들 수 있는 사윗감을 하나 데려와 다섯이 행복하면 얼마나 좋을까. 날 닮아 외탁했을 떡두꺼비 같은 손주를 아빠에게 안겨주는 상상도 했다. 아빠가 내 손주 어화둥둥 예뻐하며 잘 놀아줄 것을 확신하며. 내 곁에 있는 남자를 보면 나보다 엄마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만하면 우리 엄마가 좋아할 사윗감이라는 생각에 낑낑대며 들고 다니던 짐짝같이 무거운 퀘스트를 드디어 풀어낸 것처럼 안심됐다. 번번이 그 짐짝 도로 닫아 머리 위로 들어야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다는 희망에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속이 개운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생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결혼을 원하는 두 번째 이유였고, 맏딸로서 엄마의 기대에 온 힘 다해 부응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엄마가 결혼이 의무라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으며 날 키웠다면 어땠을까.


결혼이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 날 보고 단지 인연을 못 만나서라는 말이 아니라, 결혼 못 해도 우리 딸 여전히 사랑스럽고 멋지고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결혼은 해야 된다는 엄마의 말과 누구라도 날 데려갔으면 좋겠다는 아빠의 말은 내게 결혼이 뭐길래 라는 의문만을 남길뿐이다. 결혼을 해야 완성되는 인생이라면 짝이 없는 나는 약 50%만 괜찮은 미완성의 존재인가 하는 찝찝함도 함께.


라고 쓰고 남 탓 또는 핑계라고 읽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바람에 하는 말인 거 다 안다. 엄마 아빠는 그저 그것이 내게 최고의 길이라 여기고 기도해주시는 것 잘 알고 있다. 나도 하자 있는 딸 아니고 엄마도 문제 있는 엄마 아니다. 생각처럼 쉽지 않은 현실에 속이 상해 결국 엄마 때문이라는 핑계를 지어냈을 뿐이다. 전형적인,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네가 잘못한 거야 형식의 남 탓 말이다.


단지 바라기는 차라리 내가 어서 좋은 사람 만나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럼 나도 해피 너도 해피 에브리바디 찐 해피. 그게 안된다면 나도 부모님도, 결혼을 아직 못해서 안달 나고 조급 해지는 날들이 아니라 오늘 하루 주변의 이웃을 사랑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으로 살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다면 좋겠다.


하나님은 내게 당장 결혼해야 된다고, 뭐 하고 있느냐고 등 떠민 적 없으시니까. 서른이 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하고 그와 함께 사는 것일 거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연애, 결혼, 진로, 취업, 돈, 건강.


세상의 문제가 비단 나만 이렇게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건 아니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해결되지 않는 고민으로
 얼굴이 상해간다면
그동안 노력한 만큼 안돼도 괜찮다고 말하자.

대신 하나님 사랑하자고
같이 백 번 외쳐보자.

하나님 오늘도 당신과 함께 함으로
지금의 당신은 충분히 괜찮다고,
백 날 천 날 얘기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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