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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Feb 04. 2021

빨가면 사과 사과는 용서?

내 마음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6세 아이를 교실에 모아놓고 지도하다 보면

어른 사회 축소판 브이로그가 재생될 때가 있다.


저 하나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 꾸준히 입력하는 명령어에 가까운 대사는 친구 생각 좀 하자. 풀 죽은 모습으로 Okay, teacher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면 냠냠 맛있게도 까먹는 어린이가 주인공이고 올바른 말 시전으로 낯이 뜨거워져 시선을 바닥으로 낮게 깔아버리는 30살 어른이 제작 및 편집을 맡고 있다.


트러블이 있는 곳엔 늘 가 중심에 있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문제가 되게끔 이바지하거나 굳이 찾아내 문제로 삼거나.


다툰 이유를 물어보면 백이면 백 내가 하자는 대로 쟤가 안 했단다. 오늘도 역시 쟤는 내 말을 안 듣는다.


Zack은 John의 반찬 뚜껑을 열어주겠다고 호기롭게 손을 뻗었고 John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 둘이 만나면 가림막은 가뿐히 뛰어넘고 손가락을 화려하게 휘둘러 볼을 꼬집는 일이 발생한다.


I just tried to help him!


도와주려던 마음은 멋지지만 상대방의 거절을 수용하는 마음도 배워야 한다. 분풀이로 친구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것도 물론. 앞으로는 도와주겠다고 얘기하되 친구의 의견을 잘 들어주기로 약속하고 사과 하기로 했다.


I’m sorry, John.


Zack의 행동을 설명하며 Are you okay? 묻는 내게 John은 소리치며 대답했다.


Nokay!!
Nokay, I’m not okay!

노케이? 오케이 아니고 노케이?


사과하면 용서해주는 게 응당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었나. John의 요지부동 노케이에 순간 어지럽고 아찔하다. 삐용삐용 구급차처럼 지혜가 날 살려주었으면.


때마침 복도에 선임 선생님이 지나가신다. 오, 걸어다니는 지혜의 여신님. 아이들을 부탁드리고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들어보니 친구가 모르고 실수로 그랬으니 한 번은 용서해주자고 설득하시는 듯했다.


미안해 사과하면 괜찮아 용서하는 건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하는 공식과도 같았다. Okay는 있어도 Nokay는 존재하지 않는 말인데 우리 John은 어찌 이 말을 배운 거지.


얼굴에 상처만큼 마음에도 꽤나 깊은 자국이 남아서 그런 걸까. 절대 괜찮지 않다는 John은 Zack의 사과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겠지. 제멋대로 찾아와 부득불 아프게 만들었던 그가 밉고 싫었을 거고, 뒷북 같은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괜찮아져야 하는 이 상황이 어딘가 불편했을 거다. 용서를 거절하면 나만 쩨쩨하고 못난 사람이 되는 듯한 남들의 눈초리는 불난 마음에 기름을 쏟아붓는 꼴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픈 아이에게 용서를 알려준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상처가 회복되어 괜찮아지는 날이 오거든 상대의 진심을 받아들여 용서해주는건 어떠냐고.


잘못을 뉘우치며 미안하다 고백하는 아이에게는 강요로 용서를 받아낼 수 없음을 가르친다. 다만 너는 성의를 다해 사과하는 마음을 전달할 뿐,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용서는 오롯이 상대가 결정할 몫이라는 것을.


세일러문이 외치는 정의를 걸지 않아도 된다.

내 마음의 이름으로 그를 용서하지 말라. 마음껏 아파하고 미워해도 괜찮다. 억지로 나를 때려가며 용서를 쥐어짜지는 말자.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꿈꾸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분 앞에 모두 비워내고 털어내 다시 기력이 생기거든 용서할 수 있는 부드러운 새 살이 돋아나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신 데에는 그의 용서하심이 전제되어있다. 그가 나를 먼저 용서하셨음에 마음이 녹는 날에는 죽을 만큼 미운 그가 결국은 측은해지는 날이 도적같이 오고야 만다.


사과는 용서를 낳는가? 낳으면 좋고.


예수님께 달려가는 용서가 진정한 용서를 만든다.

억지로 강요되지 않은, 참으로 행복할 수 있는 용서.



J의 노케이가 잊히지 않아 찾아온 브런치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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