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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Mar 16. 2021

가고 또 가고 또 가서

결국 내가 닿을 곳은

 하나님만이 가진 고유한 속성 중 하나는 편재성이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존재하고 그의 섭리는 어느 곳에나 깃들어졌다는 말이다.


 한 스승이 제자들에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비둘기를 죽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제자는 저마다 비밀스러운 장소를 찾아 비둘기를 죽이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으나 한 제자는 살아있는 비둘기와 함께 돌아왔다. 이유를 물으니 어디를 가도 하나님이 보고 계셔서 결국 비둘기를 죽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유명한 일화를 통해 무소부재의 하나님의 특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인 우리는 그와 달라서 공간적 제약을 받는다. 한 번에 한 장소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이 속성은 우리를 한 평생 이동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느껴진 기묘함은 과연 나만 곱씹어봤던 느낌일까.


 사촌들과 몇 날 며칠을 집에서 즐겁게 보내고 다음 방학 때 또 만나! 작별 인사를 하고 나면 그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이상해. 분명 여기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사라졌어. 그때부터 인간의 공간적 한계를 체감했다. 여러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도, 한 장소에 영원히 존재할 수도 없네. 우리는 공간을 이길 수 없구나. 당연한 이치가 뜬금없이 새롭게 깨달아지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 후로는 순간을 충실히 누리고 기억하려 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눈 크게 뜨고 주의 깊게 살펴본다. 지금은 좋은 시간.. 여긴 행복한 곳.. 되뇌며 말이다. 하지만 주르륵 흘러내리는 물을 손가락 사이로 꽉 쥐어 잡으려는 시도 마냥 허무하다. 이 공간은 곧 사라지고 또 다른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는 게 나는 아직도 낯설고 신기하다.


 폴댄스를 끝내고 왁자지껄한 밤거리를 걷다가 문득 이 요상한 기분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지금은 거리의 휘영 찬란한 불빛을 눈이 시릴 만큼 바라보고, 삼삼오오 모여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걸걸한 목소리로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이내 나는 이 곳을 지나치겠지. 익숙한 레퍼토리에 질릴 때쯤 새로운 인사이트를 만난다. 맞아. 걷고 또 걸으며 수 백번, 수 만 번 장소를 이동하고 나서 결국 내가 닿을 곳은 하나님 앞일 거야. 아싸, 하나님 금방 볼 수 있다!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는 묘한 설렘이었다.


 인생을 살며 걷고 또 뛰다가 굴 같이 어두운 곳을 지날지도 모르고, 화려한 궁전 같은 팬트 하우스에서 지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이 땅에서 영원히 머물 장소는 없다. 우리의 숨이 멎는 날에는 더 이상 다음 목적지도 필요 없다. 이제 끝! 최종 결승선에 서서 얼마큼 왔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여긴 어딘지 확인할 시간이다.


부디 모두의 마지막 이동 끝에 그분이 마중하시길 바란다. 숨 막히는 여정 후에는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시기를. 잘 왔다, 고생했다 내 아들 내 딸아. 두 팔 벌려 우리를 덥석 안아주실 하나님을 보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하나님을 향해 가련다.

못 가고 더디고 엎어지고 또 자빠져 울어도

여기 지나면 저기, 저기 빠져나오면 거기.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 보이리라 믿고.

인생 빨리 감은 듯 순식간에 그분 품에 안길 생각에 설레 하면서.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지.


벌써 침대에 누웠다.

벌써 천국인 이 도적같이 이르고야 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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