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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Mar 12. 2021

하나님, 나 옷 좀 사줘요!

맏딸도 딸이고 막내딸도 딸이야

 내일 입고 출근할 옷이 없다. You look gorgeous 하다는 직장동료의 말만 없었어도 대충 걸칠 옷은 많을 텐데. 봄맞이 기념으로 산뜻한 재킷과 깔끔한 바지를 사야겠다 했는데 문득 이번  예산이 바닥난  깨달았다. 적금에 들어갈 돈에 손대거나 쇼핑할 계획에서 손을 떼거나   하나는 택해야겠지. 어쩌지  동동 구르다 털썩 앉아 한숨을 털어놓고 외쳤다.


하나님 나 옷 사줘요!


 묘한 기분이었다. 못할 말을 한 건가 움찔하면서도 차오르는 말을 뱉었을 때 느껴지는 시원함에 개운하기도 했다. 유치하고 이기적인 태도인가 싶지만, 옷 한 벌 사달라고 말 못 할 건 또 뭐람.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시고 나는 그의 딸이라면 갖고 싶은 거 사달라고 떼 한번 쓰고 징징대는 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어딘가 편하지 않아 잠자코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았다.


  엄마는 알뜰살뜰 현명하게 돈 쓰는 주부였지만 적당한 가격선의 예쁜 옷이 있으면 주저앉고 입어보라 하셨다. 금전적 부담이 없는 보세 옷들이었으니 큰 고민 없이 몇 벌 사주실 수 있었던 것 같다. 꼭 필요한 옷이었으니 사주는 거야, 하지 않았다. 그냥 사주셨다. 딸내미 예쁜 옷 사서 입히는 게 당연하고 즐거운 일이니 그러셨을 거다. 새 옷을 입고 아빠 앞에서 이 옷 어때? 하면 응 예쁘네~해주고 엄마랑 나는 싸게 잘 건졌다며 좋아했다.


 어미곰처럼 무던한 우리 엄마도 아무 이유 없이 옷 사주기를 즐거워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이 기쁨을 마다할 이유가 있으랴.


한동안은 성령만을 구했다. 복음이 삶의 모든 본질의 답인걸 깨닫고 성령을 밤이나 낮이나 기다렸다. 구하면 주겠다는 그 약속을 꼭 붙들고 말이다.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_누가복음 11:11-13


 복음이 머리로 깨달아지면 삶이 잘 살아진다. 뼛속 깊은 결핍이 채워지고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이미 넘치게 받은 자로 살게 된다. 내 거야! 움켜쥔 손을 펴네 거야! 후히 나누고 사랑하는 일이 진정한 기쁨인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옳다고 믿지만 동시에 나는 얼마든지 틀린 사람임을 인정할 수 있고 나를 노려보는 상대를 굳이 이겨먹지 않아도 자유하다. 심지어 틀린 말을 하는 그를 위해 기꺼이 항복을 선언할 수 있다. 이 사랑은 내게 예수가 실제가 되었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내어주셨음이 진정 머리에서 가슴으로 뜨겁게 전해지니 그렇게 살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


 인생의 새로운 기준이 설정된 후에는 행동이 엇나갈 때마다 내게 복음이 희미해졌음을 깨닫고 성령을 위해 울며 기도했다. 예수가 아닌 모든 것은 허상일 뿐이며 잠시 잠깐의 영광일 뿐이라 고백하며. 복음을 깨닫는 은혜로 다시 주를 위해 이웃을 위한 사랑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헌데 하나님과 어쩐지 불편하게 되었다. 참 감사한 기도 제목임에도 그 루트가 아니면, 다시 말해 정해진 정답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틀린 기도를 하는 건가 싶었다.


 무릎을 꿇지 않아도 하나님을 느끼고 싶었다. 성경 앞에서만이 아니라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있어도 하나님과 가깝기를 원했다. 그분의 임재 앞에서 나란 존재는 고꾸라 쓰러져 고개를 수구려도 모자란 죄인인 것은 알지만, 그분은 자신을 아바 아버지라고 소개하지 않았는가. 진지한 삶의 본질만을 상의하는 사이가 아니라 이 세상 살아가며 필요한 나의 의식주를 마음 터놓고 재잘 댈 수 있는 친밀함이 그리웠다. 성숙한 믿음을 증명해야만 잘했다 해주시는 게 아닌 아이같이 찡얼대고 보채도 그래그래 하나 사 줄게, 인자하게 웃어줄 따스한 사랑이 보고팠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나 옷 좀 사줘요 흐느끼며 엉엉 울고 말았다. 


성령은 나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내가 무엇을 구하는지 나는 잘 몰라도 그분은 정확히 알아들으실 수 있다는 말씀을 붙잡을 순간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_

로마서‬ ‭8:26‬


새 옷이 필요한 건 맞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건 나를 세심히 돌보시는 그의 손길이다. 봄이 오면 얼룩 하나 지지 않은 흰색의 일자바지를 사서 입어야겠지만 이 밤에 먼저 입어야 할 것은 나를 직접, 손수 챙기시는 예수님의 사랑이다.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구하련다. 성숙한 맏딸 노릇은 이제 멈추고 때로는 철없는 막내딸같이 하나님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련다. 둘 다 그가 사랑하는 딸임은 변함없으니 말이다.


낮에 아는 동생이 보내준 좋은 글로 오늘의 결심에 땅땅땅 봉을 내려치고 힘을 보탠다.


... 조숙하면 조로합니다. 조숙의 토대 위에 성숙을 급조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겁니다. 미숙의 토대 위에 성숙을 올려야 반석 위의 집이 됩니다.

 내남이 알다시피 영성은 속도전으로 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아서 안타깝단 말은 적어도 10년을 잘 먹인 다음, 그것도 조심스레 꺼냄이 옳습니다. 반복합니다. 성숙은 끔찍할 정도로 답답한 미숙의 단계를 갈지다로 휘청휘청 통과할 때에만 얻어지는 덕목입니다.

 그러니 충분히 미숙하십시오. 네 아이의 아비인 제게도 더 많은 미숙의 날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저보다 미숙할 시간이 적었던 인생과 신앙의 후배님이야 어떻겠습니까. 부디 넉넉히 미숙하십시오. 미안해하지도 말고 눈치 보지도 말고 당당히 미숙하십시오.  by 박총

#사진출처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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