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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Mar 29. 2021

예수님, 나도 발 닦아줘요!

모든 말씀에 존재하는 전제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 주간이다.


 첫날은 청년들을 위한 안수기도가 있으니 그날만큼은 꼭 참석해달라시는 목사님의 광고를 듣고도 선뜻 혼자 가기엔 무리다 싶었는데, 마침 친한 동생이 갈 수 있다길래 함께 가기로 했다.


 새벽기도를 갈 수 있는 내 교회라는 생각과 함께 할 수 있는 동생의 존재에 든든해지자, 잠들기 전 날부터 다음날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새벽기도인지.

엄마가 깨우면 곰이 그냥 지나가길 바라며 죽은 척하듯이 잠자코 자는 척을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제는 마냥 신나기만 하더라. 예수님 만날 생각과 종려주일 예배 때 마저 다 깨닫지 못한 새로운 은혜를 갈망하니 더 그랬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두 번째 찬양곡에 케케묵은 근심을 쓸어 보내고 내가 주님 안에 있음에 위로받는 찬양 시간을 보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이 열두 제자의 발을 씻겨주시는 장면이었는데, 희생과 섬김의 자리에 새 생명이 피어난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오늘 하루 있는 자리에서 어떠한 희생을 감수할지 고민해보자는.


 눈물 콧물 범벅으로 기도하고 난 후,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 일렬로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훌쩍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멍하니 앞을 응시하다가 진짜 기도 제목이 생각났다.


예수님, 제 발도 닦아주세요.


 길쭉하고 마른 편이라  어느  군데 지방으로 버거운 부위는 없는데, 유독 엉덩이는 어찌나 무거운  섬김에 있어서 누구보다 느린 속도를 자랑한다. 타인을 배려하여 벌떡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센스가 없는 나에게, 희생이란 도저히 스스로 감당할  있는 일이 못된다. 들은 말씀이 실제로  닿지 못한  이웃을 위한 희생과 섬김을 하면  나는 체하고 남은  등을 두드려 주는 꼴이 되고야 만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도 닦아 시길 기도했다. 지난번   사달라는  특유의 뻔뻔함도 잊지 않고  스푼 첨가해서.  그렇듯 어찌 응답하실지 전혀 감은  오지만 오늘도 기다려본다.


차례가 되어 기도제목이 적힌 종이를 목사님께 건네드렸다. 적힌 제목들을 그대로 읊어주시고 간절한 마음 담아주셔서 정성스레 기도해주심에 감사했다. 그리고 자리에 돌아가 다시 기도하는데 아찔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목사님들 모두가 내 기도 제목에 놀라 이 시대에 이런 청년이 다 있나 하고 떠들썩해지기를 마음이더라.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이용해 신앙심 깊은 청년이 되고자 하는, 아주 역겨운 종류의 인정 욕구였다. 기도회가 끝나고 돌아가는데 기도제목이 적힌 종이를 줄 수 있겠냐는 목사님의 말씀에 이름을 안 적었는데 괜찮냐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내 말은 이 더러운 마음을 더는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죄인인 줄 알면서도 모르겠는 나에게 그 순간은 하나님 앞에 엎드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이용밖에는 하려고 들지 않는 나의 존재의 한계를 마주하고 나서야 내 발을 닦아주시려 무릎을 굽혀 앉아 날 바라보시는 예수님을 뵐 수 있었다.


 예수님은 내가 얼마나 더러운 지 다 아시더라. 나는 잘 몰랐는데, 그는 내 존재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더러운 지를 잘 알고 계신다. 그런데도 발을 닦아주겠노라 낮은 자세로 내 곁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제야 나도 우리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 떠올랐다. 오늘 출근해서 우리 반 아가들의 발을 씻겨주고 싶다는 자발적인 섬김의 마음이 저 깊은 곳으로부터 샘솟았다. 예수님이 나를 밑에서 바라봐주셨듯이, 나 또한 우리 아기들보다 작아진 그 위치에서 자그마한 발을 닦아줘야지.


교회에서 전해지는 모든 메시지에는 전제가 존재한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용서하라, 가진 것 내놓는 희생과 섬김을 하라, 생명의 말로 사람을 살리라 등등. 눈물 콧물 쏟게 하는 뜨거운 불은 받았으니 실천은 해야겠는데 어딘가 막막하고 알 수 없게 답답한 그런 메시지들 앞에 놓인 분명한 괄호가 우리 눈에 보여야 한다.


(예수님이 당신에게 먼저 해 주셨다)라는 전제다.


그 전제가 우리에게 먼저 깨달아질 때에만 그 멍에는 쉽고 가벼워진다. 마치 뒤꽁무니에 부스터를 달아놓은 듯, 사람의 인기척에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처럼 그의 말씀을 실행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고 당연해진다.


 예수님은 오늘도 이렇게 나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주셨다. 좀 해 달라는 칭얼거림에 어떤 꾸중도 하지 않으시고 다시 묵묵히 보여주셨다. 기도와 응답이 쌓여 주님과의 신뢰가 형성된다. 덕분에 나의 작은 믿음은 오늘 3cm 정도 커진 것 같다.


 예수님, 제 발을 닦아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우리 아이들의 발, 오늘 가서 열심히 닦아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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