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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Apr 20. 2021

예수님, 그만 자고 일어나요!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짜증이 났다가 괜찮아졌다가, 어휴 오늘 말이 아니네요.


아이들을 보내고 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직장동료가 말했다. 무슨 일 있었냐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오늘 월요일이잖아요! 이렇게 당연한 이유를 굳이 말로 콕 집어 알려줘야겠냐는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다. 3초만 고민했어도 맞출 수 있는 문제였는데, 아쉽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맞네요, 오늘 월요일이지.


 월요병으로 감정의 몸살을 앓는 편은 아닌데 오늘따라 유독 퇴근길 발걸음이 축축 쳐졌다. 토요일에는 가족과 가평으로 일요일에는 친한 동생과 먹방 투어를 한 기억이 아직 진하게 남은 탓일까. 다시 “혼자”라는 생각에 칼퇴도 미루고 종종걸음도 관뒀다. 어기적 어기적 걸어와 저녁을 차려먹고 드라마를 보는데도 편하기는커녕 심심한 마음에 불이라도 난 듯이 인스타그램을 훑게 되더라. 음소거 웃음을 짜내는 몇 초짜리의 영상 수 십 편을 오른손으로 쥐고, 왼손 검지로는 아이패드 화면의 드라마를 재생하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양 볼 가득 음식을 털어 넣고 양 손 가득 영상으로 채워놓았는데도 허기지고 자꾸 배가 고파 만족감이 없었다. 그리고 터무니없게도, 어쩌면 이상할 것 없게도. 불현듯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00개가 넘는 게시물을 자랑하는 내 피드를 가만히 보다가, 게시된 동영상과 사진에 버젓이 웃고 있는 내가 더는 이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살고 싶지 않다, 죽었으면 좋겠다 차마 말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이 머릿속을 뱅뱅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멈춰준 것은 어제 아침에 들었던 주일 설교의 말씀이었다.


예수님이 계신 배에 같이 타고 있는데 죽게 되었다가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그래서 제자들을 꾸짖은 거예요. 예수님이 함께 계신 인생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니라_마태복음‬ ‭8:24-26


 늘 궁금했다. 아무리 예수님이 옆에 계신다지만 풍랑이 일어나 당장 배가 뒤집히게 생겼는데, 당연히 무서운 게 정상 아닌가. 다정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떠한 이유로 꾸짖으실까 항상 의문이었다. 목사님의 설교는 참 간단하고 명쾌했다. 배를 타기 전 오후에 예수님께 배운 말씀을 풍랑을 만난 이 밤에 실습해보라는 게 그의 의도라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다면서 말이다. 말씀과 설교로 가득 차 머리는 충분히 컸으니, 인생의 어려움이 왔을 때 두려워하며 아이고 나 죽네, 죽겠다! 징징대지 말고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워야 한단다. 두려울 수는 있지만 죽겠다고 하는 것은 크리스천의 언어가 아니라면서. 이 설교 내용이 떠오르더니 꾸지람을 들어도 할 말 없는 내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억울함보다는 그저 그게 다였다. 예수님이 지금 나를 보시며 어허, 이놈 하시겠구나 싶어서.     

  

사실 나는 진짜 죽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공허를 이기지 못한, 혼자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핑계였을 뿐이었다.


언제까지나 오늘처럼 혼자면 어쩌지.

아무리 기다리고 노력해도 결국 홀로 인생을 마치는 거면 어떡하지.

나이가 많아 늙은 아브라함에게도 여전히 하나님은 복을 주셨다는데,

내가 결혼하지 못한 마흔이나 쉰이 되어도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할 텐데.

.

평화롭기 짝이 없는 고요한 일상에서 난데없이 일어난 두려움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으니 나는 곁에서 주무시는 예수님께 달려가야 했다.


예수님, 그만 자고 일어나요 이제!


예수님을 깨우는 일은 다름 아닌 기도였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나는 이래서 무섭고 저래서 너무 걱정이 된다고 말씀드렸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눈물 줄줄 흘리며 기도하는 일상이면서도, 때마다 드는 “앞으로도 혼자일 거라는 상상”은 나를 겁에 질리게 한다고. 이 풍랑은 도저히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예수님.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혼자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리고 맡겨드렸다. 바다의 놀을 잠잠케 하시는 이는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니 나머지는 그의 몫이었다. 예수님께서 풍랑을 꾸짖으시고 잔잔케 하실 일을 기대한다. 예수님을 깨우고 상황을 보고 드렸으나 아직 드라마틱하게 바뀐 현실은 없다. 하지만 더는 죽고 싶지 않았음이 위로였고 어쨌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망할 일은 없다는 팩트를 새롭게 붙잡을 수 있으니 감사했다.

  

모두가 주목할 만한 훌륭한 목회를 해온 목사님도 인생의 파도가 칠 때면 예수님을 깨우기보다 자신의 노하우와 지식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고백하셨다.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시커먼 먹구름은 빽빽하게 몰려들 테고 출렁대는 파도는 거센 바람과 함께 이전의 높이를 갱신하겠지. 어느 때까지나 연약한 나는 그때마다 입술이 퍼레지고 땀이 삐질삐질 나며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게 될 거야. 예수님을 먼저 깨우기보다는 이리저리 허둥대며 어떻게든 파도를 막아보려 노력할 테고 하다 하다 안되니 나는 이제 죽었구나, 오늘처럼 주저앉을 날은 열 손가락을 접었다 펴가며 세어야 할 지 몰라.


그럼에도 나는 망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은혜 덕분이다.

여전히 더디게 주를 찾겠지만 그래도 그를 깨울 수 있음이, 달려가면 닿는 거리에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심이 감사다.


삶의 폭풍을 막을 수는 없어도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울 수는 있다.


예수님을 깨우는 훈련이 오늘부로 다시 시작되었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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