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같은 대상이라도 어떤 감정을 싣는지로 낮과 밤을 가르듯 차원이 다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남자가 내 눈 앞에 나타났지 환희에 가득 찬 감격이 차디 차게 식어버리자 세상에 어쩌다 이 남자는 내 눈 밖에 나버린 걸까 미움과 불신에 휩싸였다. 신앙도, 외모도 성격도 어디 한 군데 모자람이 없는 백마 탄 왕자인 그가 알고 보니 왕자가 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개구리였다니.
그날도 우리는 어김없이 사랑이 빠진 전쟁을 치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면 벌금이라도 물을 기세로 서로를 억척스레 탓하고 깎아내렸다. 전쟁의 불을 지핀 건 자그마한 불씨 같은 사소한 속상함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서운해진 나는 끊임없는 이해와 공감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랐다. 상처로 곪은 마음은 날카로운 창이 되어 그의 여린 살갗을 파고들었으니 꽤나 아팠겠지. 자신을 지키려던 그는 창을 무디게 하다 못해 여러 조각으로 부러뜨리는 방패를 갑옷 삼아 맞섰다.
셀장일 때랑 지금의 너는 너무 다르잖아!
맨날 후회하고 회개하면 뭐해,
지금 이렇게 나한테 퍼붓기만 하는데.
정곡을 찌르는 그의 말에 내 창은 후드득 부서져 바닥으로 뒹굴었다. 몰랐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말씀의 빛이 비치었을 때 잘한 것 하나 없이 부끄러운 모습이라는 걸 누구보다 나는 잘 알았다. 생기 발랄하게 셀원을 살갑게 대하고, 이왕 맞을 거라면 먼저 매 맞는 게 낫겠다는 태도로 연약함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다시 잘 살아보겠노라 선포했지만 뒤돌아서면 180도 달라지는 본모습에 나조차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그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팩트 폭행에도 불구하고. 셀장인 나와 여자친구인 나의 모습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을 긋는 일을 그가 직접 해주다니, 이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지 않나.
그때는 그저 분했다. 누가 누굴 보고 나무라나 싶고. 나에게 똥이 묻었다면 그는 발을 헛디뎌 똥통에 빠진 격이었으니까. 하나님을 진짜 만난다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아는 척하는 그의 설교는 단 한순간도 내게 진리인 적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하나님을 정말 만났다면 그처럼 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고한 고집, 곧 하나님 사랑에 대한 순백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내가 그리던 완벽한 사랑. 순결하고 고귀한 사랑을 입은 자의 온전함.
삑 - 탈락입니다.
결국 그는 아웃되었다.이별 후 새벽 내내 울어 마카롱 두 개를 올려놓은 듯이 부은 눈이 가라앉자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내가 틀렸다는 외부의 소리가 멈추었다는 것이 내가 옳다는 명제를 입증해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최악의 모습만을 끌어냈던 그와의 만남 후에 남은 것은 가짜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뿐이었다. 나는 왜 셀장인 모습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품어줄 수 없었나.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싸가지없고 이기적인, 사나운 딸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 주일 예배에 가슴 벅차 울며 회개함에도 일상이 변하지 않는 답답함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수시로 몰려드는 공허함과 우울함은 어떤 핑계로 정당화 할 수 있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더라.
아이유의 자연스러운 삼단고음의 음 맺음처럼
문제의 원인은 어느 부분 하나 어색하지 않게 다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사랑이 없는 일상을 산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진짜 사랑을 찾아 푸른 하늘 아래 들판을 누비고 죽음이 도사리는 골짜기를 지나는 여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