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혼란 속에서
매일 아침, 병원에 출근하는 길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일에 대한 흥미도, 열정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치과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선택한 전공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단순했다.
앞으로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예상 못한 거 아니면서도. 어려도 알거 다 안다. 진지하지 않았던거다.
그리고 떠밀리듯 졸업 전 바로 치과에 취업해 쉴 틈 없이 일한 지 3년째 되던 스물 넷이었다.
아. 이건 아닌데… 싶었다.
일단 손목이 자주 아팠다. 쉬는 날이면 병원에 다녔다. 이 일을 어떻게 앞으로도 계속 하지?
정신없이 배우고 혼나는 사회초년생시기가 끝나니,
주변 상황이 제대로 보이고 구체적인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가장 멋진 커리어와 연봉을 받는 선임자는?
우리 회사, 그러니까 치과에서는 물론 실장님이었다.
오래 일한 다고 해서 치과의사가, 그러니까 오너가 되는게 불가능 하잖아.
치과일을 배웠는데, 치과는 차릴 수 없다.
돈을 대고 치과의사를 고용할 수는 있겠지만, 자본이 없다.
파티시에로 10년 실컷 일해도 내 이름으로 빵집 하나 못 여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업무 분리가 어려운 게 의료라고 해도, 치과는 정말 위임이 심한데.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되었구나.
그렇다고 실장이 되면 행복할까? 부자인가?
내가 보아온 사람들 중에는 없는 것 같았다.
오너와 하루종일 숨 닿을 거리에서 일하는데,
내 숨소리까지 지적하는데, 이 정신적 고통에 따른 적합한 보수가 주어지나?
아니...?
전문성을 기른 10년 후 30대의 나는, 치과의사 밑에서 일하는 것에 만족할까?
아니, 이 직업은 시작부터 끝까지 오너의 그늘 아래 있을 거야.
종사자의 90%가 개인병원에서 일하는 직업이다.
지금도 젊은 저연차만 찾는 치과에서, 그나마도 보수와 대우가 눈에 선하다. 내려치겠지.
10년간 일하기만 하면 전문성이 알아서 생길까?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꾸준히 학업 혹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을 때, 충분한 돈과 명예가 따라올까?
아니...
몇 번의 자문자답 끝에 이렇게는 'No'라는 결론을 내렸다.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든 탈출하겠다.
1년 안에 전공 무관 월급과 안정성이 보장된 직업을 갖자고.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토요일마다 6시간씩 6개월 동안 영어 기초반을 다녔다. 토익이 있어야 회사에 들어가는데 영어를 배운 지 너무 오래라. I am부터 다시 배웠다.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승무원이 되기로 결정했으니까. 이보이고 웃어야 하잖아?
나이와 키, 밝은 인상이 내 장점이니 지극히 현실적으로 대기업에 들어갈 방법은 이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할 수 있을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