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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오늘은 Nov 03. 2020

사는 게 지겨운 사이코패스

스물셋

 성인이 되면 나를 둘러싼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일찍이 잘못되었음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나를 괴롭게 했던 가족의 굴레에서 이제는 충분히 도망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할 수 있었다. 술자리, 친구들과의 만남, 눈치 보지 않는 소비 따위의 것들이 내 숨통을 트이게 해 줬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전보다 많은 자유에도 달라진 것이라고는 없다는 듯, 숨이 턱턱 막혀왔다. 매일 밤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밤을 영문 모를 불안과 답답함으로 지새워야 했다. 툭하면 심장이 빠르게 뛰어댔다. 그런 밤에는 그냥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목구멍으로 김밥을 욱여넣듯이 보내는 하루들이 너무너무너무 지겨워서 그냥 죽었으면 했다. 우울증이었다. 마음이 병들며 늘어나는 것이라고는 자기 연민뿐이었다. 나 스스로가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너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야."

 그녀가 한 번 씩 내게 그런 말을 할 때면 화가 났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맞으니까. 가족의 아픔, 고통, 함께하던 반려묘들의 죽음조차도 내게는 감흥이 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모든 게 그저 지겹고 귀찮았으며 나를 옭아메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가족이라는 것으로부터 멀리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분명 가족에게 보다 남들에게 더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싫어 항상 애써 외면해왔다.

 최근에 나를 따르던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보통이라면 다들 슬퍼하는 상황이겠지. 하지만 나는 슬프지 않았다. 그저 내가 슬프지 않은 것에 환멸이 나서 한동안은 우울했다.

 이 날 나는 그녀가 내게 사이코패스냐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쩌면 나는 감정이 결여된 사람인 것은 아닌가, 타인의 감정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한참을 고민하기까지 했다. 고민 끝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 지를 차츰차츰 되돌이켜보았다.

 역시 중학교 1학년, 그때부터였을까? 그녀가 툭하면 죽겠다며 뭉텅이로 수면제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울고 빌고 화내고 달래고를 수십 번이고 반복해도 결국에는 고집대로 그 약을 털어먹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비워냈을 때? 그래. 그때부터다. 그때부터 나는 지겨웠던 것 같다. 결국 일어날 일이고 말려도 말려지지 않는다면 포기하자 싶어 순순히 약을 가져다줬던 그 날. 그날도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죽으려고 먹는 약임을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수십 번의 경험으로 사람은 수면제를 몽땅 털어 먹어본들 쉽게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그러면 안됐던 걸까.


 심각한 상황에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 날, 가져다 달라던 약을 순순히 가져다주고 따뜻한 물을 떠 오라는 말에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약기운이 돌아 그녀가 잠들면 119를 부르면 될 거라고 침착히 생각했다. 어쩌겠는가. 무슨 짓을 해도 결국에는 그렇게 된다면 이제는 더 이상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감정을 철저히 죽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물론 나도 그게 지금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게 예전만큼 집착하지도, 죽을 거라며 소동을 벌이지도 않았다.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있는 것은 아직도 그대로였으나 내가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다. 보증금 150만 원에 매달 들어가는 월세 37만 원. 그토록 바랐던 자유를 사는데 드는 돈이었다. 가까운데 살면서 왜 굳이 나와 사냐는 물음을 받을 때마다 이로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아 오르곤 했지만 그저 웃으며 그렇게만 말했다.

"자유를 찾아 나왔어요."

 나는 내가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기를 바랐다. 큰 굴곡 없이 커서 조금의 구김살도 없어 보이는, 밝고 조금은 철없는, 딱 그 정도로 보였으면 했다. 너무 일찍이 커버린 어른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픈 것을 티 내지 않았다. 아파도 웃으며 넘어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넘긴다기보다는 참는데 이골이 나서 뭐든 잘 참았다. 고통에 익숙한 편이었다.


 그런데 스물셋, 요즘 들어 밤은 고통의 시간이 되었다. 23년이 이렇게나 지겹고 힘이 든데 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이상에서야 어지간히 명을 이어갈 인생이, 앞으로 몇십 년이 남아있었다. 살아갈 길이 길어서 행복할 날이 많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지금까지 겪어온 고통들을 찬찬히 음미하며, 새로운 걱정거리를 끊임없이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갈 것을 떠올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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