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비우기 프로젝트
어릴 적 나는 우리 아파트 통로에서 인형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외동딸이기도 했거니와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엄마의 눈을 피해
늘 아빠와 할머니를 꼬셔 의기양양하게 인형을 사가지고 들어와 엄마를 열받게 하는 편이었다.
인형과 장난감이 넘쳐나서 큰 대야에 가득 채워놓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 집에는 놀러 오는 경은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애는 삼 남매 중 둘째였었고 야무진 아이였던 걸로 기억을 한다.
그 아이의 인형 세트는 내가 가진 것에 비하면 소박하고 작았다.
작은 바구니 안에 미미인형 하나, 그리고 얼마 없는 소품들,
그런데 그 애는 그것을 가지고도 누가 봐도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다.
욕심도 샘도 많았던 나는
너 우리 집에서 놀았으니, 그것을 놓고 가라 보관해 주겠다!(내가 생각해도 웃긴 애다…인정.)
라고하고 경은이가 집에 간 사이 그것을 몰래 가지고 노는 스릴을 느끼며 가지고 놀곤 했는데
그냥 오늘의 글을 쓰려는데 문득 이 기억이 떠올랐다.
참, 이제 와서 경은이에게는 미안하단 뻔뻔한 말을 살짝 남긴다.
(경은아 내가 좀 그랬어, 심지어 우리 집에 놀러 온 이모는 옷까지 벗어놓고 가라 했다더라...)
자, 어쨌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얼마 전 휴가가 생겼다. 이 귀중한 시간을 어찌 보낼까 하다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집 비우기를 해보자, 생각했다.
예전 우리 집은 오늘의 집 갬성의 집이었다.
(어느 팩폭러가 와..! 이 집은 정말 실용성은 1도 없는 집이네요!라고도 한 적이 있음. 가만 안 둔다...)
한마디로 이뻤다. 디자이너의 집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의 애정과 노력이 깃든 인테리어여서 비우기가 고민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집 비우기를 하기로 한 이유는 명확했다.
밖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공간이 아닌
퇴근 후의 공간으로 간결하고 소박하고 만들고 싶었다.
안까지 밖의 번잡스러움을 끌고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
비워보자. 나를 위해
첫째_ 쓸모없는 물건들 비우기 (중고로 팔기)
둘째_ 안 입는 옷 버리기
셋째_ 냉장고 비우기
넷째_ 사진첩 + 메모장 정리
며칠간의 정리를 하며 드는 생각은
"인형을 대야에 꽉 채웠던 일곱 살의 나처럼 열심히도 사 모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과거의 나를 탓하고 싶진 않다. 그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비우기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비워진 공간을 보니 숨통이 탁 트였다.
결론적으로 집 비우기는 대만족이었다. (그리하여 이 과정을 남기며 기록하고 있음)
휑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공간이 넓어 보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에게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비워진 이 공간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비웠더니 오히려 더 채워지더라
내가 집을 비우며 얻은 것은
첫째_ 넓어진 공간
둘째_ 이 물건만으로 충분하구나라는 만족감
셋째_ 물건을 살 때 신중히 구매하자는 마인드
넷째_ 이 공간을 더욱이 사랑하는 애정
다섯째_ 사집첩 정리로 과거 나에 대한 애정
여섯째_ 메모장 생각의 갈래 정리
보너스_ 중고로 물건을 판매하며 얻은 용돈(!!)
어느 곳에 선가 읽은 구절이 있다. 그 집의 상태는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라고
내 마음이 허하면 물건으로 무언가를 채우려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정말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집을 비우니 그 생각이 더욱 확실해졌다.
소비의 즐거움을 모르지 않는다. 아끼면 똥 된다는 말처럼 적절한 곳의 소비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물건을 버리며 든 생각은 쉽게 고른 물건으로 내 공간을 채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이 공간에 애정을 가지고 신중하게 고른 물건을 넣을 생각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의 시작,
정갈하고 소박한 쉼의 공간에 나를 두기
이게 미니멀라이프의 시작이 아닐까?
마음이 어지러울 때, 한번 집을 비워보시라.
무언가 알 수 없는 개운함과 함께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