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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사탕 Nov 24. 2020

두 번째 휴직

입덧 지옥 시작

첫째 딸 키우기 정말 힘들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고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몰라 더 어려웠는데 주변에선 "아이가 아이를 낳았어" 라며 "이건 할 줄 알아?"라는 말로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둘째는 없어 라고 생각했었는데 첫째 아이가 5살이 되면서 하는 행동이 너무 예쁘고 지나가는 아이들만 보면 예쁘고 귀여워 미칠 것 같아 둘째를 낳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 지친 몸 끌고 집으로 돌아와 빈속에 맥주를 마셨고 운동도 하지 않았고 밥도 잘 안 챙겨 먹어서 그런 걸까? 아이가 1년 동안 생기지 않았다. 


주번에서  한가한지 나의 둘째 소식에 지니 친 관심을 보여주길래  "생겨야 낳죠"라고 말을 해 버렸다. 

난 이렇게 말하면 듣기 싫은 소리 더이상 듣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한가한 사람은 여전히 한가했다.

"실험관 해, 더 늦기 전에"

한숨이 푹푹 나왔다. 

이렇게 까지 걱정해 주니 진짜 미칠 것 같았고 1년이 지나도 생기지 않자 이젠 포기다 하는 마음으로 핑크 핑크공주 하나 잘 키우며 멋스럽게 살 자로 마음먹자마자 둘째가 생겼다. 


둘째가 생겼다는 걸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드라마를 매일 밤 챙겨보고 있었는데 점점 잠을 깊이 자는 날이 많아졌다는 걸 알고 미쳤나 봐 또 잤어할 정도로 잠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날이 늘자 아이와 함께 임테기를 사 확인하니 두줄이 선명했다.  둘째가 생겼다.


첫째 때는 생으로 고생했다. 그땐 입덧 약도 없었고 울렁거리는 속 부여잡고 병원과 집 회사 시체처럼 다녔던 나는 두 번째 임신도 똑같았다. 그래도 첫째는 중반부터는 기름진 음식 빼고는 다 먹을 수 있었는데(고기는 못 먹었다) 둘째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먹은 것도 없고 배는 불러오고 몸은 무겁고 더 이상 회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어 병가를 내고 집에서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둘째는 진통도 안 와요 

막달엔 동네를 한 시간 넘게 걸어도 안 나오고 

결국 유도분만 날짜를 잡고  첫째 딸과 눈물의 인사를 하고 둘째를 낳으러 병원으로 갔다. 

첫째 때는 생으로 고통을 다 몸으로 받고 미치겠다 싶을 정도 옷이 벗겨져 속살이 다 보이는지도 모르고 출산 했더라면 둘째는 무통주사 놔주는 곳으로 가 우아하게 조금은 편안하게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난 무통주사가 먹히지 않은 산모 중 하나여서 고통을 있는 그대로 다 느끼며 둘째를 만났다.


그래서 그런가?

첫째보다 둘째 낳고 몸이 많이 상했다.

붓기도 많이 붓고 혈액순환도 잘 되지 않아 저리고 비가 오거나 찬 바람이 불면 몸이 아파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조리원에서 남편과 신혼 같은 2주를 보내고 집을 돌아오니 육아 시작이었다.

신생아는 신생아니 울고 큰딸은 불안한 마음에 친구에게 집착하는 행동을 보여 내가 해 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주자라는 마음에 몸조리 중에 에버랜드도 가고, 아이 유치원 데려다주고 픽업도 하고 놀이터 가서 노는 것도 같이 나가 놀아주고 모든 걸 다 해줬지만 아이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고 난 점점 사람의 모습을 잃어 가고 있었다.


친정엄마는 딸 몸조리 해준다고 와 있지만 여기저기 아픈 몸 숨기고 병원 다는 모습에 또 화가나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필요이상의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겐 집으로 내려가라고 말했지만 엄만 도와줄 수 있을 때 더 도와준다고 말하며 울었다.  하지만 난 아파도 엄마이기에 괜찮다는 말로 들려 화가 났다. 


아프다고 딸한테 말하지 않는 엄마가 미웠고, 사위가 오면 본인이 가족과 있는 시간이 방해가 될까 한 시간씩 밖으로 나가 방황하는 모습에 화가 났고, 사위 오면 홀로 방에 들어가 핸드폰으로 티브이 보는 모습이 짠해서 화가 나는 하루하루였다. 


"엄마 괜찮아 나 할 수 있어 내려가"라고 말했지만 엄만 가고 싶어도 아빠가 딸 더 몸조리해주라고 해서 여기도 저기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난 뒤늦게 알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내가 너무 못돼서 화가 났다. 


엄마는 가는 날마저도 사위에게 

"많이 불편했지?"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사위 눈치 보느라 식탁에 앉아 밥 먹을 때도 식탁 끝 모서리에 앉아 먹는 모습을 보였던 엄마 

난 그다음부터 엄마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차라리 내 몸이 아프고 힘든 게 더 마음이 편하다

더 이상 엄마가 딸 눈치, 사위 눈치, 손녀 눈치 보는 게 싫다. 


그렇게 난 홀로 50일 되는 아이와 7살 아이를 나 홀로 키우기 시작했다.

(오해하지 말자 이혼 안 했다. 주말부부일 뿐이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온전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다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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