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습을 했다고 해도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못 그려도 Go! 무조건 그려나가는 거지요.
데이비드 베일즈, 테드 올랜드의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는 다시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읽게 되는 책입니다. 완성도를 위해 꼼꼼히 자세하게 그리기보다 빠르게 한 장이라도 마무리해 보려는 시도를 해보면서 그림을 이어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나온 에피소드는 이렇습니다. 도예수업 첫날 선생님은 학급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작업실의 왼쪽에 모인 조는 작품의 양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오른쪽 조는 작품의 질로 평가할 것이라고 미리 말했습니다. 그리고 평가시간이 되었을 때, 가장 훌륭한 작품들은 모두 양으로 평가받은 집단에서 나왔습니다. 양으로 평가받은 집단이 이런저런 작품들을 만들며 실수하고 다시 배우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작품의 질로 평가받은 집단은 만들기보다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지 궁리만 하게 된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 질로 평가받은 집단과 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근사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정작 그림 한 장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초보자이면서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사람과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며 좋은 점을 배우려는 자세는 좋았지만 흉내 내려하고 너무 완벽한 형태가 그려지길 바라는 욕구가 컸기 때문에 완성되는 그림 수는 적었습니다. 초보자일 때는 자신의 부족함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면서 쓱쓱 빠르게 그려나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무조건 양으로 밀고 나가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 하나 긋는데도 이게 맞는지 아닌지 갈등을 겪고 혹시나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중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버립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한정된 시간 안에 그림을 완성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1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생각한 한 장의 그림이 어떻게 나오든 한 시간 후에는 서명을 함으로써 끝을 맺었습니다. 한정된 시간을 두고 그리는 것은 오롯이 그림만에 몰입하기 좋은 방법입니다. 일명 모닝 드로잉으로 이름 붙인 이 그림 그리기는 일어나자마자 거침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내 안의 창의성과 예술적 감각을 일깨우고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모닝드로잉은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에서 소개된 모닝 페이지의 그림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모닝페이지는 아침에 기상 후 아무 주제 없이 오직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지면에 옮겨 적는 일로 이 단순한 작업이 창조성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혜택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나만의 모닝드로잉에는 특별한 규칙이 없답니다. 그저 일정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집중하고 어떤 것에도 제약받지 않으면서 마음대로 그려나가는 그림 그리기라고 할 수 있어요. 주제도 소재도 떠오르는 대로 그려나갑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꿈속 이미지, 어제 있었던 일들의 잔상들, 창문 밖의 나무들, 그리운 누군가의 얼굴, 잡지 속의 풍경 등 그날그날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려나가면 되는 거죠. 모닝드로잉은 누군가에게 보여줄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사물과 닮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틀린 선을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색을 칠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이 커서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완성도가 높지 않아 성에 차지 않다고 해도 더 이상 시간이 없다면 일단 거기에서 끝을 냅니다. 오늘 그렸던 모닝드로잉 그림을 내일도 이어서 그린다면 그것은 오늘 느꼈던 감정과 그림을 대하는 마음 상태를 그대로 전달해 줄 수 없겠지요. 그림을 다시 손보기보다는 같은 주제를 내일 다시 한번 그려보면 어떨까요. 다시 그림으로써 주제를 대하는 또 다른 형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속의 이야기처럼 양으로 승부해 보자고요. 그림의 장수가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그림의 완성도도 좋아질 것입니다. 오늘의 모닝드로잉이 내일의 그림에 영향을 주고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로 삶이 더 풍요로워짐을 느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