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선과 명암 연습을 꼼꼼하게 배웠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초반의 열정은 어디 가고 슬슬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어요. 기초 연습 말고 내가 선택한 소재로 그려보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던 참이었거든요. 하지만 진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어요. 선생님은 기초가 중요하다고 항상 강조했기에 누구도 예외 없이 준비된 커리큘럼을 차근차근 이어나가야만 했습니다.
3개월째 드디어 초급 졸업작으로 자화상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자화상 그리기는 적합한 사진을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되지요. 초보가 자신을 보고 그리거나 상상해서 그리기는 어렵잖아요. 못 미더웠는지 선생님이 직접 사진을 찍어주었어요. 흑백으로 뽑은 사진을 받아 들고 보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잘 완성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서요. 그래도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죠.
기초수업에서 배운 대로 명암과 형태를 격자 나누기로 세분해서 그렸습니다. 그런데도 원하는 그림이 나오질 않았어요. 자연스럽지 못한 명암과 선, 거기다 비대칭 얼굴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세부적인 표현에 집중하다가 전체적인 균형이 깨지기도 했지요. 뭔가 부자연스러운 그림이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거기다 제일 못난 짓을 하고 있었어요. 비교의 늪에 빠진 거죠. 쓱쓱 잘 그려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재능이 부족한가 고민까지 했답니다. 3개월 배우면서 재능 운운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고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잖아요. 선생님의 따끔한 지도편달을 받으며 조금씩 그려가다 보니 어느새 괜찮은 그림이 딱 내 앞에 나타났어요. 처음 참여하면서 제출했던 자화상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완성도는 떨어져도 정성이 듬뿍 들어간 첫 자화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짝짝짝!!!
함께 그려왔던 동료들의 그림을 보니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그림들이었어요. 어떤 그림은 부드러운 감성이 느껴지고 어떤 그림은 성실한 성격이 엿보였습니다. 선긋기부터 함께 배운 사람들인데 그 선과 면의 표현방식은 모두가 달랐어요. 이 사람들의 10년, 20년 후 그림에 얼마나 개성이 넘칠까요. 표현 기법에서부터 주제에 따라 각양각색 멋진 작품들이 탄생하겠지요.
선배들의 그림도 함께 볼 기회가 있었는데 초보자가 보기에 그들은 확실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했어요. 그릇을 표현하기 위해 황토를 이용하기도 하고 신비로운 숲을 주제로 그리기도 하고 거리의 사람들을 멋들어지게 그리기도 했지요. 멋진 그림을 보면서 얼마나 부럽던지요. 나도 오래도록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꼭 모든 과정을 제대로 마쳤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그림풍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어요. 3개월 초보에게도 꿈이 생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