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긴 출퇴근 시간으로 여유가 없는 날들이었지만 새벽시간을 이용해서라도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림 그리기를 하다 보면 단순한 취미의 즐거움을 넘어서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몰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대상을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다 보면 그 특징이나 복잡함을 단순함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해력이 생기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오만가지 생각들은 수없이 반복되는 선긋기와 붓질로 점차 사라지고 오로지 그리는 행위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모든 감정들을 그림 속에 꾹꾹 밀어놓고는 다소 경쾌하고 가벼워진 나를 보게 되지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자 일상의 스트레스가 쌓여갈수록 그림 그리는 시간을 만들려고 더 노력했고 그 시간을 순수하게 즐기게 되었답니다. 특히 그 대상이 인물이라면 그리는 과정에서 그의 개성과 나의 감정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동시에 그런 과정을 즐기는 나 자신까지도 좋아졌어요.
그런데 연필화 마무리를 아버지 초상으로 정했다가 심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진 않았거든요. 힘들게 연필화를 끝내놓고 또다시 수채 인물화로 한 번 더 선택했어요. 풀지 못한 숙제를 다시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아버지라는 대상을 긍정적으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은 자신과의 지루한 싸움이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아버지의 고집스러움이 전혀 그림에 나타나지 않아 거짓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런 마음을 계속 품고 있는 어리석음도 싫어졌어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스러움과 나에 대한 실망으로 그림은 결국 중단되었습니다.
한참 후에 문제의 그림과 다시 마주했습니다. 오랜 시간 그저 그림을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찬찬히 보니 그림에 뭔가가 빠져있었어요. 인물화를 그릴 때는 대체로 배경을 그리지 않았는데 이번엔 뭔가 다른 걸 채워 넣고 싶었습니다. 왜 필요했던 걸까요. 그림과 내 마음이 전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 따뜻한 인상의 그림과 맞는 내 마음을 찾고 싶었어요. 현재의 불안한 감정이 아닌 따뜻했던 기억 속의 아버지를 말이지요. 그리고 어릴 적 겪었던 일을 끄집어내어 그림 속에 글로 옮겼습니다. 그림 양옆으로 삐뚤빼뚤 글씨를 새겨 넣으면서 그때서야 마법처럼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어요. 그 기억이 나를 살포시 안아주는 것 같았어요. 조금은 아버지를 이해할 것도 같고 아버지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미움을 비워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그리면서 거칠었던 내 마음이 조금씩 정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언제고 또다시 마음이 흔들리며 불안하게 둥둥 떠다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때가 오면 그냥 한번 안아주고 싶습니다. 또 나쁜 감정들이 떠올랐구나. 감정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계속 그 안에 나를 가두는 것은 좋지 않겠지요. 다른 곳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오고 싶어요. 그리고는 나에게 어여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