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온전히 내가 된 느낌
그림을 그리다 보면 처음의 복잡했던 생각들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오직 그림에만 몰두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가끔은 그림을 그리는 자신까지도 의식하지 못하고 연필 선을 그리고 붓질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몰입의 순간을 함께 한 그림은 마음에 쏙 들 때가 많았습니다.
미하일 칙센트미하이는 몰입(flow)을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의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행복과는 다른 충만감이라고 하더군요. 온전히 내가 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머릿속이 맑아진 느낌이 들면서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거기다 근사한 결과물도 있으니 성취감을 느끼면서 더욱 힘이 샘솟는 것 같았어요.
몰입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어야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이 시끄럽고 아우성치고 있을 때는 결코 몰입의 즐거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명상과 마찬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으면 집중하려고 해도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게 됩니다.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그려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단조로운 생활을 해보려고 시도해 보았습니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했던 인터넷 검색이나 부자연스러운 만남을 줄이면서 생활이 단순해졌습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조용한 새벽 시간은 몰입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어요. 처음엔 혹시 다른 사람들과 소원해지지 않을까 몸이 더 피곤하진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고 활기에 넘쳤습니다.
그림 그리기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림과 나 사이의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한 작업이지요. 홀로 그리기는 외로워할 새도 없이 오히려 혼자 있음으로 해서 더욱 깊이 있는 몰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림과 함께한다면 심심할 틈도 없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오래도록 즐거운 미술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