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거, 별거 없네

부산갈맷길 278.8km 완주 기록

by 블리

부산갈맷길 278.8km 완주.

2021년 7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서울에서 공부하며 틈틈이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걸었던 길이다. 쉬러 내려온 부산에서 나는 쉬듯 걷고 있었다.


총 9개 코스를 돌며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몸으로 만났다. 걷는 동안 펼쳐지는 풍경은 힘듦을 잊게 했고, 바다와 산, 골목과 마을은 내가 알던 부산을 전혀 다른 얼굴로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두 다리로 직접 길을 밟으며, 이 길이 잘 유지되기까지의 수고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됐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길이 길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야, 젊을 때 많이 걸어야 돼.”

쓰레기를 줍고 있으면 “고마워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분들도 계셨다. 길 위에서는 나이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걷는 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공간은 평화롭고 따뜻했다.


이 시기의 내가 길을 걷던 이유를 돌아보면 솔직하다.

성취감과 특별함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길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다고 해도 산악인이나 동호회 정도일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청소년과 청년들은 거의 걷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주로 카페와 맛집을 찾아다닌다. 나는 카페를 좋아하지도 않고, 맛집을 일부러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그 지점이 나만의 차별성이었다.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도전’이라는 단어가 나와 잘 맞았기 때문에 길이 끌렸다. 무엇보다 끝까지 걸으면 증명할 수 있는 결과가 남는다. 인증서라는 명확한 결과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냈다는 감각과 그로 인한 성취감이 한 세트로 따라왔다.


길 위에서는 한계를 만난다. 다리가 버거운 순간도 있고, 지루함이 몰려올 때도 있다. 그때마다 모르는 이들의 응원과 짧은 인사가 힘이 됐다. 길을 걷는다는 건, 생각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생각 정리를 위해 걷는다’는 말에는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잡생각이 많은 편도 아니고, 깊게 고민하며 걷는 스타일도 아니다. 길 위에서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오직 하나, 오늘 할당량을 채우자. 그 단순함 덕분에 빠르게, 그리고 끝까지 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갈맷길 수첩을 들고 다니며 스탬프를 하나씩 찍었다. 요즘은 앱으로 QR을 찍어 도장을 대신할 수도 있다. 마지막 코스를 마치고 국제신문 건물에 있는 ‘걷고 싶은 부산’에서 완보 인증서와 배지, 메달을 받았다.
해냈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걷는 거, 별거 없네.
그런데 그래서 더 욕심이 생겼다. 부산갈맷길을 기점으로 더 많은 길을 걷고, 더 많은 도전을 해보고 싶어졌다.


어쨌든, 내가 다시 부산에 있다면 또 걸을 생각이다.
길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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