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배운 것들
내가 길 위를 걷기 시작한 건 2021년 7월,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시작은 호기심이었고, 끝에는 ‘완주’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살고 있는 지역에서부터 길을 열었던 선택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멀리 떠나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고, 익숙한 동네가 새로운 길로 바뀌는 경험은 자연스럽게 나를 길 위로 끌어냈다.
새벽 일찍 일어나 한 구간을 다 걷겠다는 다짐.
추위에 몸을 움츠리면서도 플로깅까지 하겠다는 욕심.
처음엔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앞섰지만, 정해둔 할당량을 채운 날에는 분명한 감정이 남았다. 뿌듯함, 만족감, 그리고 묘한 자존감의 상승.
그저 걷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환경을 지킨다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선한 영향력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는 성향 역시 내가 걷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다.
미친 척 혼자 나섰다면 끝까지 하지 못했을 일들을, 함께 걷는 친구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 길 위에서의 동행은 의지였고, 안전이었고, 웃음이었다.
어느 날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최대 걸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발과 다리가 버거울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물집이나 심한 근육통은 없었다. 부산갈맷길을 걸으며 내가 몰랐던 동네를 걷고, ‘이런 곳이 있었나’ 하고 멈춰 서서 바라보고, 사람들 사이에 숨은 식당과 장소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따라왔다. 모든 경험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쌓여갔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은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었다. 걷다 마주친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인사를 건넸고, 짧은 응원 한마디가 서로의 걸음을 가볍게 했다.
같은 부산이지만, 바다는 매번 달랐고 산은 늘 새로웠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동네의 문화와 분위기를 걷는 속도로 알아갈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젊은 사람들 중에 ‘걷는 길’을 선택하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 요즘의 대세는 등산이나 러닝이다. 걷기나 트레킹은 콘텐츠가 되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니까.
나에게 걷기는 소확행이었다.
길을 걷다 배가 고프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시원한 국밥이나 해장국을 먹고, 가끔은 막걸리 한 잔을 곁들였다. 그렇게 다시 걷고, 또 걷고, 술 한 잔의 여운을 안고 길을 이어가는 재미. 그 사소함이 좋았다.
갈맷길의 여정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해 뜨기 전부터 걷기 시작해 해 질 때까지 걸었던 날도 있었고, 정신없이 산을 오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길로 접어들어 또다시 걷기도 했다. 바다를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부산 한 바퀴를 그리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걷는 동안 수백 번 물었다.
그때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길 위를 걷는 이유를.
완주이야기에서 계속 이어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