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부산갈맷길 완주를 향한 첫 발을 내디뎠다. 스탬프북은 영도구청에서 친구가 두 권을 받아다 주었다. 그날 이후로 길을 나설 때마다 생긴 숙제가 하나 있다. 스탬프북 챙기기.
처음엔 어디부터 걸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마음이 가장 편한 선택을 했다. 영도. 내가 살던 동네, 가장 익숙한 길부터 가볍게 시작하기로 했다.
절영해안산책로 입구에서 만나 도장을 쾅 찍고 길을 나섰다. 해안길이라 자연스럽게 플로깅을 곁들였다. 한창 플로깅에 빠져 있던 시기라 종량제봉투와 집게는 필수였다. 쓰레기를 줍고, 사진을 찍고, 걷고. 걸음은 바빴지만 마음은 들떠 있었다. 터널을 지나 자갈밭을 걷고, 부산갈맷길 띠지를 따라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니 중리바닷가가 나타났다. 늘 다니던 동네 산책길인데, ‘갈맷길을 걷는다’는 마음으로 보니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스탬프 위치를 유심히 찾던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쓰레기를 줍다 보니 해가 저물었다. 중간 스탬프를 찍고 나니 봉투는 이미 가득 찼다. 버릴 곳이 없어 종점까지 양손 가득 들고 걸었다. 다행히 종점은 집 앞 공원. 이미 어두워졌지만, 동삼동을 한 바퀴 돌며 갈맷길에 흥미를 붙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운동도 하고, 좋은 일도 하고, 기록도 남겼다.
나쁜 게 하나도 없는 길 위의 기록 만들기. 첫 번째 성공.
종점에서 도장을 찍고 인증사진을 남겼다. 꽉 찬 종량제봉투를 들고 집에 와 분리배출까지 마쳤다.
영도 구간, 무사 완료.
늦은 오후보다는 이른 시간에 걷는 게 좋겠다는 작은 교훈도 얻었다.
익숙한 동네길이라 속도도 빨랐다. 원래 2시간 정도 걸리는 구간을 1시간 반 만에 마쳤다. 익숙함은 이렇게나 큰 힘이 된다. 이제 부산 한 바퀴를 도는 긴 여정이 시작된다. 스탬프북 하나를 꼭 채워보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새겼다.
7월에 한 코스를 걷고, 9월 어느 날 부산에 내려온 김에 다시 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때라 빠른 완주는 어려웠지만, 틈이 날 때마다 걷기로 했다.
오륙도에서 청사포까지
이날은 아침 일찍 영도에서 버스를 타고 오륙도로 향했다. 환승 한 번, 종점까지 약 1시간 20분. 오륙도에 도착해 스탬프를 찍고 역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씨가 유난히 좋았다.
‘내가 오륙도를 걸을 줄이야.’
오륙도에서 광안리 방향으로 거꾸로 걷다 보니 이기대를 지나게 됐다. 고등학교 때 소풍으로 왔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지만, 풍경은 새로웠다. 중간 스탬프가 있는 곳에는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멀리 광안대교가 보이고, 하늘은 가을답게 높고 푸르렀다. 걷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날이었다.
이기대에서 수영교차로로 향하는 길에서도 플로깅을 이어갔다. 마침 분리배출이 가능한 곳이 보여 쓰레기를 버렸다.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버릴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쓰레기가 모여 있는 곳에 아무 데나 두는 건 또 다른 무단투기라는 걸 알기에, 일반쓰레기 배출 장소를 발견하면 바로 버렸다. 그제야 두 손이 가벼워졌다. 수영교차로를 지나 민락수변공원에 도착했다. 낮에 와보는 건 처음이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밤이면 젊음과 불빛으로 가득하던 곳. 민락회센터에서 회를 포장해 돗자리를 펴고 먹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시절의 풍경이 사라진 건 조금 아쉬웠다.
민락수변공원을 지나 종점 스탬프를 찍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 더 걷기로 했다.
2-2구간 클리어. 민락교에서 동백섬까지 이어서 걸었다. 바다를 보며 이야기 나누다 보니 누리마루는 금세였다.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증사진을 남기는 건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기록은 중요했다. 동백섬을 지나 해운대해수욕장을 거쳐 청사포까지. 마침 해운대블루라인파크가 만들어지던 시기라 나무데크가 새로 놓여 있었고, 길은 한결 편안했다. 청사포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영도에서 해운대까지 다시 한 번 걸어온 기분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 공존했다.
결국 오륙도에서 청사포까지, 6~7시간. 2-1구간까지 모두 마쳤다.
길을 완주하겠다는 첫 도전을 시작했다.
이제는 끝도 보고 싶어졌다.
다음 길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