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에서 해운대까지 걸어볼까?

by 블리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2021년 6월의 어느 날.

동네 친구와 둘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저 여느 날처럼 흘러가던 밤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영도에서 해운대까지 걸어볼래? 해볼 만하지 않겠나?”

잠깐의 정적 후,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 해보자.”


그 한마디로 끝이었다. 사실 그 말은 내가 먼저 꺼내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혼자서는 망설였을지도 모를 도전이었지만, 친구가 함께하겠다고 하니 이유가 더 필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날을 약속했다.

다음 날 아침, 간단한 짐을 챙겨 영도에서 출발했다. 출발 전에는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6월의 부산은 꽤 더웠고, 길이 얼마나 고를지도 알 수 없었다. 괜히 시작했나 싶은 마음도 잠깐 스쳤다. 그런데 막상 걷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몸이 적응을 했는지, 마음이 먼저 나아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부산대교에서 출발해 101번 버스 노선을 따라 걷고, 다시 41번 버스 노선을 따라 걸었다. 이미 있는 길 위에서 우리만의 동선을 만들며, 최대한 안전하게 걸었다. 체력 때문이었는지, 정신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걷는 내내 묘한 희열감이 있었다. 중간중간 쉬어 가고, 물을 마시며 무리하지 않게 속도를 조절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우리가 졸업한 고등학교 근처에 다다랐다. 괜히 반가워 골목골목을 돌아 학교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예전에 자주 가던 냉면집에서 배를 채웠다. 배가 부르니 다시 힘이 났고, 남은 길을 향해 또다시 걸음을 옮겼다.


학교에서 광안리로 가는 지름길이 있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이었지만, 위험하다는 생각보다 추억 이야기에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광안대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우리는 동시에 감탄했다.

“와… 우리 진짜 했다.”
“와, 이걸 하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민락을 지나 광안리해수욕장에 도착해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다시 출발했다. 그때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광안리에서 해운대까지가 생각보다 멀다는 걸 몸으로 실감했다. 잠시 고민 끝에 내가 말했다.

“광안리까지만 할까?”

그러자 친구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순간 당황했지만, 곧 따라 말했다.

“그… 그래. 화이팅, 화이팅.”

주변 풍경을 보며 걷다 보니 익숙한 길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늘 버스나 택시, 차를 타고 스쳐 지나던 길을 두 발로 천천히 걸으니 모든 게 새로웠다. ‘내가 걸어서 광안리를 지나 해운대로 간다고?’라는 생각에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걷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해운대해수욕장에 도착하고 싶다는 마음, 그것뿐이었다.

마침내 해운대해수욕장이 보이자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래사장에 발을 딛는 순간,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우와아아아, 해냈다!”

모래사장에 철푸덕 앉아 잠시 바다를 바라보다가, 다시 영도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마침 도착한 직행 버스를 타자마자 우리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무모하다면 무모했던, 철저한 계획 하나 없이 시작한 친구와의 도전. 아침 일찍 출발해 무려 6시간 30분 동안 걸은, 내 인생 첫 장거리 트레킹이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뿌듯함과 해방감, 그리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미묘한 벅참이 함께 밀려왔다.


대단한 성취를 이룬 느낌은 아니었고, 걷는 내내 감탄이 터져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길 위를 걷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풀렸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과 머리가 쉬어갔다. 몸은 힘들었지만 속은 시원했다.

그래서였을까. 무작정 걸었던 이 길을, 다음에는 조금 더 제대로 걸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부산 갈맷길’을 정복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모든 건, 영도에서 해운대까지 걸어보자는 그날 밤의 가벼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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