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충분했던 서울 둘레길

by 블리

서울 방방곡곡을 두 다리로 여행하고 있다. 서울둘레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서울에 있는 산이란 산은 다 걸어보는 기분이다. 둘레길이 아니었다면 결코 가지 않았을 곳들을 하나하나 지나며 걷는 재미는, 아마 직접 걸어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 길이 사람을 데려가는 곳은 늘 예상 밖이었다.


서울에는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도 많다. 그중 아차산 코스가 있었다. 서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져 옷은 따뜻하게 입되, 더우면 벗고 추우면 다시 껴입을 수 있도록 여러 겹을 챙겼다. 그렇게 기차에 몸을 실었다.


2월 한 달 동안 주말 여덟 번, 매번 기차를 타고 하루에 한 코스, 많게는 두 코스는 꼭 걷겠다고 다짐했다. 주중에는 다음에 걸을 길을 살폈고, 네이버 길찾기로 출발지와 도착지를 미리 저장해 두었다. 스탬프 수첩과 지도를 다시 펼쳐보며 주말을 기다리는 시간이 반복됐다. 기다림마저 준비의 일부가 됐다.


앞선 이야기에서 계속 마음에 걸리던 건 ‘여자 혼자’라는 조건이었다. 운동을 해왔기에 스스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주변의 시선이 낯설었다. 내가 너무 태연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길을 걸으며 그 걱정의 실체를 조금씩 알게 됐다. 특히 산길이나 골목길, 날이 어둑해질 때면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낙엽 흩날리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면 괜히 “누구야!” 하고 외치며 빠르게 걸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소리를 내고, 속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미리 걱정하고 대비하는 건 분명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그 걱정이 또 다른 부담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남자분들이 스쳐 지나갈 때 괜히 속도를 늦추거나, 주변을 더 살피거나, 휴대폰에 112를 눌러둔 채 걷는 일들. 방어적으로 나를 지키려는 행동들이 쌓여 있었다. 그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 속에서 길을 걸었지만, 결국 중요한 사실은 하나였다. 길 위에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서울에 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와 자연, 그리고 유난히 부지런한 사람들이 길 위에 있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각자는 전혀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풍경 속에서 나 또한 2월 한 달을 온전히 떼어내어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혼자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 컸다.

낯선 땅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다시 걷는다면, 그렇게 다급하게 걷지 않을 것이다. 속도를 늦추고 내 호흡을 들여다보며, 쉬었다가 다시 걷는 길을 선택하고 싶다. 열심히 사는 나의 모습을 길 위에서 마주했고, 눈에 보이는 결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차산 코스는 생각보다 훨씬 쉬워 놀랐다. 가볍게 산책하기 좋았고, 사람들이 많이 오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삼각대를 세워두고 혼자 점프샷도 찍어봤다. 혼자 걷는 길의 아쉬움이라면, 예쁜 풍경을 온전히 담아줄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오르내리며 ‘서울에 이런 산이 있었나’, ‘이런 길이 있었나’ 계속해서 어리둥절했다.


매주 걷기 전, 기대하며 계획했던 한 주. 옷차림을 고민하고 준비물을 챙기며 주말을 기다렸다. 북한산은 특히 물음표가 많은 코스였다. 쉽게 보지 않았고, 실제로도 쉽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힘들었지만 결국 해냈다. 길을 함께한 내 신발은 어느새 밑창이 닳아 있었다.


서울이나 경기권에 살며 삶이 조금 무료하게 느껴진다면, 혹은 그냥 걷고 싶다면 서울둘레길을 권해보고 싶다. 분명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무언가가, 단 하나라도 생길 것이다. 내 두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낸 서울둘레길의 시간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기록이었고, 그래서 매 순간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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