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속초를 사랑하는 친구와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길이 있다.
속초 여행의 마지막 날, 청초호길을 걷다 발견한 속초사잇길이었다. 버스를 타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고, 그 시간을 두 다리로 써보기로 했다.
아무 준비도 없는 여행객 모드였다.
운동화가 아닌 단화를 신고 약 8km를 걸었다. 발에 무리가 오지 않을 리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의욕이 넘쳤다. 관광지만 보고 돌아갔다면 분명 아쉬웠을 여행이, 길 하나 덕분에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기 시작했다.
한양도성길에 이어, 속초사잇길까지.
함께 걷고, 함께 완주를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유난히 고마웠다. 그날은 굵고 짧게 걸을 수 있는 구간만 걷고, 남은 길은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미뤄두었던 마음을 꺼내기엔 충분한 시간이 지나 있었고, 우리는 지난 6월에 마무리 짓지 못한 속초사잇길을 완주하기로 했다. 계절이 바뀐 10월 말의 어느 날, 퇴근하자마자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2박 3일 동안 걸을 길을 마음에 품고 속초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숙소 근처 길부터 걸었다.
속초사잇길은 길지 않은 듯하면서도 만만치 않았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기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강원도, 10월 말이라 추울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따뜻했다. 큰 호수를 낀 길이 있었지만, 인적이 드물어 보였다. 짧은 구간만 선택해 걷기로 했다.
스탬프를 찍고, 바닥에 표시된 속초사잇길 표식을 따라 걸었다.
지난번에는 낮에 걸었던 길을, 이번에는 저녁에 걷고 있었다. 계절도, 시간도 달라서 풍경의 결이 전혀 달랐다. 단풍이 익다 떨어진 나무들을 벗 삼아 사진을 남겼다. 잔잔한 호숫가에 우리 둘만 덩그러니 있는 풍경이 묘하게 고요했다. 괜히 목소리를 낮추게 되는 밤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밤이 시작됐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11시 무렵.
씻고 있던 중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계속 왔다. 부재중 알림을 보고 놀라 바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니 어딘데.”
“나 친구랑 속초인데? 왜, 무슨 일 있나?”
“뉴스 봐라. 지금 난리다. 이태원에 사고 났다. 아무 일 없으면 됐다. 막 여기저기 다니지 말고, 잘 들어가라.”
전화를 끊고 친구와 바로 TV를 켰다.
속보가 이어지고 있었고, SNS는 이미 혼란스러웠다. 대규모 사망 소식, 그리고 곧 ‘이태원 참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사건. 할로윈 시즌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상태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기에, 상황의 무게를 온전히 실감하지 못한 채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그 시각, 회사 단체 채팅방도 조용하지 않았다.
각자 담당하고 있는 자치조직 청소년들의 소재 파악 요청. 이태원에 청소년이 포함됐다는 속보가 이어졌고, 다음 날 아침부터 청소년 한 명 한 명에게 연락해 무사함을 확인했다. 그 밤은 청소년시설 종사자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길을 걷기 위해 온 여행에서, 가장 편안해야 할 밤을 그렇게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걷던 길의 풍경과 화면 속 뉴스가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그 밤은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길은 계속 이어지지만, 어떤 밤은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도 함께 남는다.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잊지 않기 위해, 이 기억을 길의 기록 속에 함께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