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스멍도르멍 3기, 서른명이 함께 걷기 시작한 날

by 블리

첫 만남은 언제나 설렘을 데려온다.


제주도민 15명, 육지에서 온 청년 15명.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 서른 명이 3박 4일을 함께 걷기 위해 제주공항에 모였다. 이른 아침, 공항에서 집합해 버스를 탔다. 이동 시간은 짧았지만 공기 속 어색함은 길게 늘어졌다. 말은 적었고, 시선은 자꾸 엇갈렸고, 낯선 침묵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지금 떠올리면 괜히 웃음이 난다. 그 서먹함조차 여행의 시작이었다.


버스가 멈춘 곳은 헤이, 서귀포. 이곳에서 우리의 첫 공식적인 시간이 시작됐다.

사전에 신청한 모자, 정성스럽게 준비된 간식 꾸러미, 조끼와 배지, 올레길 수첩, 명찰까지. 어느 하나 대충 준비된 것이 없었다. 물건 하나하나에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프로그램’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시작부터 마음이 놓였다.


일정 안내 후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마니또를 뽑고, 특별 강연을 들었다.
자기소개는 늘 어렵다. 첫 문장 하나로 나를 각인시켜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오래 고민한 끝에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청소년활동가이자 환경지키미 블리로 활동하고 있는
부산에서 온 신은지입니다.


이날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강연에서 오래 남은 이야기가 있다. 부산 영도에 ‘영도할매’가 있다면, 제주에는 ‘설문대할망’이 있다는 것. 제주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여신. 그리고 ‘올레’는 집 앞 골목을 뜻하는 말이라는 설명. 골목을 나와야 세상으로 나온다는 의미에서 제주올레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길의 유래를 알고 걷는 것과 모르고 걷는 것은 분명 다르다.
제주 올레길의 세 가지 요소는 오름, 바다, 골목. 이 길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트레킹이 아니라 제주라는 공간을 몸으로 이해하는 일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번 여정만큼은 ‘보는 여행’이 아니라 ‘느끼는 걷기’로 채우고 싶었다.


강연이 끝난 뒤 6코스 시작점에서 첫 스탬프를 찍었다.
식당까지 약 1km. 첫날의 날씨는 완벽했다. 지난 10월 혼자 걸었던 길이었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길처럼 느껴졌다. 함께 걷는다는 것만으로 풍경의 온도가 달라졌다.


점심은 백반. 불고기보다 생선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식당에서 덤으로 건네준 귤 한 알. 그 한 입에 제주가 담겨 있었다.

밥을 먹고 남은 6코스를 힘차게 걸었다. 귤은 계속해서 주머니와 가방 속에서 나왔다. 손끝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먹었다. 하늘의 파랑, 숲의 초록, 귤의 노랑. 내가 좋아하는 색들이 자연과 옷과 사람들 사이에 가득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6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소천지와 소정방폭포.
특히 소정방폭포는 계단에 앉아 물이 떨어지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희열감이 든다. 물은 흐르고, 결국 바다로 떨어진다. 그 단순한 움직임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쉬고, 걷고, 다시 쉬다 보니 어느새 종점. 우리가 3일간 머물 제주올레스테이에 도착했다. 제주의 해는 빠르게 저물었고, 그렇게 첫날이 마무리됐다.


새로운 사람들과 길에서 만나 함께 걷는 하루.

그 하루만으로도 우리는 꽤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이 여행에서 제주를 마음껏 느끼고, 힘껏 사랑하고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서른 명 중 스물한 명이 여자였고, 나는 8인실에 배정됐다.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방에 놀러 온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앉혔다. 거의 스무 명이 한 방에 모여 자기소개를 하고, 휴대폰을 돌려 SNS를 팔로우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단체로 한 방에 모인 것도 신기한데, 휴대폰 돌려가며 SNS 팔로우 하는 건 신세계야.”


다들 웃으며 말했다.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친해지는 데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여행에서 관계는 속도로 만들어진다.


첫날은 가볍게 치킨과 함께 토크타임으로 마무리했다. 짧지만 굵을 3박 4일을 힘차게 걸어가자는 마음을 나누며, 우리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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