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0일, 2024년 2월, 그리고 2025년 1월.
나는 세 번의 겨울 동안 윗세오름에 올랐다.
어쩌다 보니 이 산은 늘 겨울에만 만났다.
첫 시작은 2023년, 오르머 투어 참여자로 선정되며 가능해진 눈꽃 산행이었다. 한라산 정상은 아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윗세오름을 향한 첫 걸음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동행이었다.
사람들이 왜 “한라산은 겨울”이라고 말하는지 그날 처음 몸으로 이해했다. 눈을 직접 밟아본 사람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감각. 세상이 온통 하얗게 덮인 산을 오르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갔다. 발을 구르며 웃고, 눈을 만지고, 뭉치고, 사진을 찍었다. 여유로운 겨울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시간이었다.
혼자가 아닌 동행이 있었기에 더 든든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순간을 담아주던 스냅작가의 시선까지 더해져 그날의 산행은 빠짐없이 선명하게 남았다. 정상에서 돗자리를 펴고 먹은 핫앤쿡 라면, 멀리 펼쳐진 백록담의 풍경은 아직도 말보다 감각으로 기억된다.
2024년 2월, 두 번째 윗세오름은 그해의 첫 설산이었다.
설 연휴의 산은 곰탕 같은 날씨였다. 사람도 적었고, 백록담은 보이지 않았고, 바람은 차가웠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맑은 날과는 전혀 다른 결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처음 걸어본 영실 코스는 시작부터 해발고도가 높아 체감 난이도가 컸다. 돌길과 데크,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쉽지 않았지만 눈을 보는 순간 힘든 감각은 뒤로 밀려났다. 한라산은 어디까지 다른 얼굴을 보여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고개를 들면 펼쳐지는 하늘과 설경이 다시 나를 끌어올렸다. 사진을 찍고 풍경을 담다 보니 어느새 정상. 너무 추워 휴게소 안에서 라면과 주먹밥으로 몸을 녹였다. 산에서 먹는 밥은 언제나 과장 없이 최고다.
하산길은 더 조심스러웠다. 올라올 때보다 훨씬 미끄러운 눈길 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집중하며 내려왔다. 그렇게 올해의 첫 산을, 감사한 설산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2025년 1월, 세 번째 윗세오름.
전날까지 한라산 정상과 윗세오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일주일을 일하고 맞은 하루의 휴식 앞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백록담까지는 무리라고 판단했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또 한 번 완벽했다.
평일이었지만 주차는 쉽지 않았다. 매표소 아래에 차를 세우고 영실 입구까지 45분을 걸어 올라갔다. 산행 전부터 이미 예열이 끝난 느낌이었다. 얼어붙은 길 위에서 아이젠과 스틱의 중요성을 다시 몸으로 배웠다. 겨울 산에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현재 빙판길로 인해 많이 미끄럽습니다. 아이젠 미착용자는 출입할 수 없습니다.”
국립공원 직원의 안내 방송이 계속 울려 퍼졌다.
눈 덮인 산은 황홀했지만 동시에 위험했다. 준비 없이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철렁했다. 아름다움 뒤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윗세오름 표식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많은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순간 실감했다. 오늘의 설산은 유난히 깊다는 것을. 눈밭에 앉아 먹은 라면밥, 새콤한 레몬 사탕 한 알. 산에서의 작은 음식은 언제나 과하게 맛있다.
하산길에서야 올라올 때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말하던 그 문장을 비로소 이해했다.
오를 때의 산과 내려올 때의 산은 다르다.
영실 입구에서 윗세오름까지 오르는 데 2시간, 내려오는 데 1시간. 주차부터 하산까지 약 5시간.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깊은 시간이었다.
산을 왜 오르는지 여전히 정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말만 앞서는 삶 대신, 몸으로 부딪히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는 것.
나태해졌다고 느낄 때, 환기가 필요할 때 나는 산을 찾는다.
제주에서 찐 겨울의 한라산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커다란 선물이다. 다음 달에도 다시 오를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같은 산이라도 같은 풍경은 없고, 같은 감정도 없다. 또 다른 나로, 또 다른 마음으로 다시 오를 것이다.
순간의 최선을 다하고, 그때의 감정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삶. 표현하는 삶을 살아가자고,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