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겨울에 이어 두 번째로 우도를 찾았다.
‘섬 속의 섬’이라는 말은 여전히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침 일찍 성산으로 향하며 오늘 하루는 온전히 걷는 날이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정했다.
배를 타고 우도로 들어가는 시간은 늘 짧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 날고, 바다는 조금씩 다른 색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갈매기들에게 나눠주려고 새우깡을 챙겼지만, 이미 배가 불렀는지 가까이 오지 않았다. 괜히 서운한 마음을 안고, 그렇게 우도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람이 나를 맞았다. 생각보다 훨씬 세게, 그리고 멈출 생각 없이 불어왔다.
1-1코스 시작점에서 도장을 찍고 사진을 남기려 했지만, 바람은 머리카락도 표정도 가만두지 않았다. 예쁘게 입고 여행처럼 걷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씩 흐트러졌다. 그래도 걸으러 왔으니 걸어야 했다. 클린올레 봉투를 들고 그대로 길로 들어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있었고, 정방향과 역방향이 뒤섞여 스쳐 지나갔다. 우도의 상징처럼 땅콩 모양 올레 표식이 귀엽게 길을 안내했다.
우도봉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억새가 양옆에서 맞아주었다. 하늘은 맑았고, 잠깐 바람이 멈춘 순간에는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바람은 다시 시작됐고, 그날의 동행은 끝내 바람이 되었다. 머리카락은 계속 날렸고, 몸은 조금씩 지쳐갔다.
쉼터가 나오면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띄엄띄엄 서 있는 말들을 바라봤다. 우도등대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수월했고, 예상과 달리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등대에 도착해 도장을 찍고 주변을 둘러봤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올레띠가 맞닿은 풍경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잘 찍히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은 분명히 기억에 남았다.
내려오는 길의 가을 우도는 고요했다. 사람은 거의 없었고, 멀리 보이는 섬들이 시선에 오래 머물렀다. 우도봉을 내려오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바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길에서 만난 한 분이 우도 땅콩을 건네주셨다. 막 따서인지 떫었고, 결국 삼키지 못했지만 그 장면마저 우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 보라색 꽃과 애기 수박처럼 생긴 열매, 밭에 심긴 쪽파를 지나며 걷다 보니 가파도를 닮은 풍경들이 겹쳐 보였다. 그러다 바다가 보이는 구간에서 바당 쓰레기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사람이 버린 것도, 바다에서 밀려온 것도 섞여 있었다. 냄새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제주는 바다로 이루어진 섬이다. 바다가 아프면, 제주는 아플 수밖에 없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조금 더 깨끗해진 바다이길 바라며, 혹은 플로깅 봉사단체와 함께 올 수 있기를 바라며 길을 걸었다. 무심코 마주친 세월호 기억저장소 앞에서 발걸음이 잠시 느려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온 길도, 앞으로의 길도 잘 지나가길 바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얀모래해수욕장은 여름을 떠올리게 했다. 맑고 낮은 물, 에메랄드빛 바다. 지금은 들어갈 수 없었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우도에도 비양도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언젠가 이 섬에서 하루를 머물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랐다.
손에 들고 있던 쓰레기 봉투를 내려놓기 위해 찾은 클린하우스. 도움센터에 계신 분이 웃으며 분리배출을 도와주셨다. “좋은 여행 하세요.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가 바람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중간 스탬프를 찍고 다시 길로 나섰다. 바다 앞에는 카페와 가게들이 많았지만, 오늘은 걷는 날이니까 편의점 김밥으로 충분했다. 가끔 멈춰 사진을 찍었지만, 바람은 끝내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정자에서 잠시 쉬다 목적지를 바꿨다. 천진항이 아니라 하우목동항에서 마무리하기로. 2km 정도 더 걸어 도착한 하우목동항에서 종점 스탬프를 찍으며, 오늘의 여정은 여기까지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을 맞으며 3km를 더 걸을 자신은 없었다. 허벅지는 쓸렸고, 물집도 터졌다. 약간의 양심의 가책과 함께 도장을 찍고 배에 올랐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다시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나눴다. 예쁘게 꾸민 김에 셀카 한 장 남기고 웃어넘겼다. 왜 꾸미는 날만 바람이 이렇게 셀까. 비니를 챙기지 않은 내 선택을 탓하며, 그래도 ‘잘 걸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줬다.
우도는 늘 아쉬움을 남기고 가는 섬이다. 그래서 또 오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가을과 겨울의 우도는 이렇게 지나갔고, 다음엔 봄이나 여름을 약속해본다.
클린올레 완주까지 남은 코스는 이제 추자도뿐이다. 다음 길은 조금 더 단단히 준비해서, 계속 걸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