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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주스 Jan 27. 2023

작은 정원

사과 이야기

새벽의 끝자락에서 그녀는 늘 자신의 정원에 씨앗을 심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기록들은 안고 있지 않으면 사라지고 그렇다고 이고 지기엔 너무나 무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쓸쓸하고 애틋함을 담아 매일 저녁물에 하루를 심습니다.

기쁨과 슬픔 아픔과 환희 절정과 압박 외에도 다채로운 색들이 모인 정원은

감탄스럽게도 경이로웠던 반면 정작 그녀는 무감각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원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형태는 우울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밝아야 한다는 암묵적 약속에서 벗어난 본연의 색이 담긴 밝음일 뿐입니다.


해가 따스한 정원에서 그녀는 오래도록 만끽합니다.

나른함입니다.

그녀는 그 정원에서 자유를 느낍니다.

그것은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를 출처 없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남입니다.


긴 시간을 채운 꽃은 자신의 계절에 피어납니다.

과정은 길고 만개는 짧지만 모든 시간들이 모여 응축된 갈피입니다.


유영히 살랑이며 향기는 퍼집니다.

곳곳에 나지막이 퍼트린 신념과 의지와 바람입니다.

그곳을 지나는 행인들도 즐겁게 보내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들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보드라움입니다.


그녀는 무해하게도 은은히 퍼집니다.

자그마한 소리는 자연히 남겨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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