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언가를 못하면,
그냥 도태되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남들이 다 하는 걸 나만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재테크든, 영어 공부든, 자기계발이든.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하기도 한다.
안 하는 건 무책임한 것처럼 보이고,
무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해야 할 것 같아서’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제대로 못할 것 같아서’ 안 한다.
가정을 꾸린다는 게, 이제는 삶의 기본값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의 함수 같은 것이 되었다.
아이를 낳는 일은 더 그렇다.
예전에는 다들 그랬다.
가진 게 없어도,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어도,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를 위해 일을 하고, 참고, 견디고, 버텼다.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다르다. 다 계산해본다.
내 수입, 내 시간, 내 감정, 내 여유, 내 한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못할 것 같다.
그럼 안 한다.
그 판단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부담이다.
모든 것이 비교되고, 기록되고, 표준이 된다.
우리는 실패를 견디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고,
불완전한 채로 살아갈 수 있는 틈이 없는 사회 속에 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만 한다’, 아니면 ‘애초에 안 한다’는 방식이
점점 더 현명한 태도로 여겨진다.
부모의 능력은 점수처럼 매겨지고,
아이의 삶은 부모의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책임이 무겁게 따라온다.
어설프게 할 바엔, 애초에 시작하지 않겠다는 마음.
잘할 수 없다면, 아예 시도하지 않겠다는 결심.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보다 ‘못해도 한다’는 선택은 줄어든 것 같다.
그게 무모했던 시절이고, 지금이 현명한 시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걸 두려워하게 된 게 아닐까.
부족한 채로 살아가는 걸,
실패한 채로 버티는 걸,
서툴게라도 해보는 걸,
너무 겁내게 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