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쉼표, 스트라스부르
2014. 09. 22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하는 테제베에 몸을 실었다. 2주에 가까운 여행 일정으로 녹초가 된 우리는 깊은 잠에 빠졌다. 잠에서 깨보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동화마을, 스트라스부르였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을 담아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처럼 스트라스부르는 그렇게 다가왔다. 스트라스부르와 가까이 있는 콜마르라는 마을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의 모티브가 된 공간이다. 콜마르는 아쉽게도 가보지 못했지만, 스트라스부르에서도 충분히 그 느낌을 즐길 수 있었다.
아버지의 모자 상점의 일을 하고 있는 소녀 소피는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다. 우측에 있는 사진은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모자가게를 찍은 사진이다. 아마 이런 곳에서 소피가 일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평범한 한 소녀였던 소피는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하울을 만난다.
소녀를 마법세계로 안내할 꽃미남 하울은 소피를 데리고 공중산책을 한다. 이 때, 아름다운 마을 위를 걸으며 흐르는 음악이 한 곡 있다. 이제는 작품보다 더 유명해진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다.
사실 전체적인 만듦새로는 그의 대표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보다 아쉬운 점이 많지만 이 장면은 그 배경이 실제로 있다면 떠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 장면을 찾을 수 없어서, 최근 리마스터링 개봉 예고편으로 대신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여러모로 그의 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게 한다. 상상 속 마을로 들어간 여주인공과 미소년 남자 주인공. 재밌게도 그가 그리는 여주인공은 지극히 소녀적인 외양을 가졌지만, 항상 모험에 뛰어드는 주인공이자, 위기에 빠지는 장본인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그 당시의 소녀들이 유독 좋아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에서는 세심한 부분을 많이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이야기나 그림에서도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지브리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도쿄 편을 정리할 때, 다시 한 번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꽃보다 할배>의 영향으로 관광객이 많지만 북적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차가 없고 작은 골목길이 많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하고 화려한 런던과 파리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우리는 이 때, 잠시 여행자에서 벗어나 생활인으로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우리에게 지상 최대의 난제는 '수건 구입'이었다. 어디서부턴가 수건을 잃어버려, 겨우겨우 말려서 쓰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장기여행에 접어들면서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불편해지는 첫 순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파리에서부터 우리는 볼거리는 둘째 치고, 수건을 팔 것 같은 상점마다 들어가서 수건을 찾았었다. 하지만 수건을 파는 곳은 없었고, 있다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그런데, 스트라스부르의 마트에 수건이 있는 것이다. 그 때부터, 스트라스부르가 참 마음에 들었다.
위 사진은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낮과 밤의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파리에서 본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멋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유럽여행 내내 성당을 너무 많이 다녀서 기억에 남는 곳이 몇 곳 없는데, 훨씬 더 고풍스럽고 조용해서, 기억에 남는 성당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이곳의 가장 좋은 점은, 물가가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그간 묵었던 도미토리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2인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다음날 아침에는 여기저기 50% 할인행사를 하는 중인 매장이 많았다. 그 곳에서 50% 할인된 8유로 정도 되는 빨간 목도리를 살 수 있었다. 쌀쌀해진 날씨에 가격 대비 만족도가 가장 높은 기념품이었다. 동네 빵집도 저렴해서, 든든한 아침도 해결할 수 있었다.
무언가 보지도않고, 하지도 않았지만 머무는 것 자체가 여행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노을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영화의 ost '인생의 회전목마'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휴식의 증거들
우리가 만난 스트라스부르 속 동화같은 한 장면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 & Storytrave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