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여행, 사람과 사람을 잇는 징검다리
어쩌면 처음 밟았을 유럽 땅.
알고 보면 두 번이나 왔던 도시.
하지만 기억 저편에서 잊혀 간 그 곳.
35일간의 여행은 음악, 풍경, 미술, 책 등 예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여행지와 함께했지만, 프랑크푸르트는 함께 즐길 이야기가 없었다. 내게 그곳은 런던으로 가는 경유지였고,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를 당일치기로 가기 편한 또 한 번의 경유지였다.
본 지 오래된 영화는 조연부터 잊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이야기를 이어주는 데는 조연이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내게 그런 도시다. 비록 연재 콘셉트와는 맞지 않지만 지금이 아니면 점점 더 잊힐 것 같아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조연을 씬스틸러라고 하는데 프랑크푸르트는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제 할 몫은 다하는, 모나지 않게 있는 조연이었다.
2014. 9. 11
1.
열 시간이 넘는 비행. 소화되지 않은 기내식과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그 설렘은 덜 했을지 모르지만 처음 발을 내디딘 유럽 땅은 분명 우리를 설레게 했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첫 번째 인연은,
루프트한자의 이코노미석에 나란히 앉아있던 같은 런던으로 가는 유학생이었다. 우리가 그녀와 교류했던 때는, 창가 쪽에 앉아있던 그녀에게 기내식과 기내 서비스 전달받는 것을 도와주는 것뿐이었다. 서로 말을 걸기도 애매한 시간이 흘러서야, 그녀가 런던에 디자인을 공부하러 가는 유학생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작년에 동생과 함께 유럽여행에 왔었다고 했다. 그러나 경유시간이 끝나고, 바꿔 탄 비행기에서는 자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런던에 도착해서, 패션쇼가 열리는 듯한 곳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학교가 보이면 괜히 그 인연이 생각나곤 했다.
2014. 09. 22
2.
운 좋게도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기차에서 비어 있는 2등석을 발견해 우리는 전세 낸 듯 앉을 수 있었다. 음악도 이어폰을 뺀 채로 들으며 주전부리를 먹고, 때론 드러 누워서 기차여행의 여유를 만끽했다.
하이델베르크를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편한 교통과 숙박의 요지로만 생각했던 곳이라 막상 도착하니 뭘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저 공원도 그냥 헤매다 발견한 곳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찍은 사진도 돌아와서 보니 어디가 어디였는지 전혀 모르겠는 것이다. 다행히 다이어리에 뢰머광장과 차일거리를 갔다고 쓰여있어서 그 곳에 갔다 온 것을 다시 생각해낼 수 있었다.
오늘 뭐 먹지?
아는 게 없다보니 본의 아니게 여행의 루트와 목표가 '오늘 저녁 어디서 뭐 먹지?'가 되었다. 점심도 간단하게 기차에서 때운 터라 우리는 몹시 배가 고팠다. 그렇게 우리는 먹을 곳을 찾으며 모든 것을 구경했다. 독일 사람들 모두 노천 펍, 레스토랑에 나란히 앉아 축구를 보고 있었다. 역시 독일은 축구와 맥주구나. 그 날 밤 독일에서 손흥민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터넷에서 확인했었다. 이 날 사람들이 보던 축구 경기였으려나 생각했다. 아무튼 축구는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즐길 것은 맥주뿐이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할 저녁이 되기를.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간 버거집. 생각보다 굉장히 맛있었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간판까지 찍어왔다. 'MEAT US' . 안타깝게도 맥주와 투샷이 없지만, 맥주와도, 독일과도 굉장히 잘 어울리는 저녁식사였다.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해서,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하는 배낭여행객으로서 더할 나위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스트라스부르를 제외하고, 런던과 파리에서 한인민박에만 머물렀었다. 런던은 밤 도착이 이유였고, 파리는 소문만 무성한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과 매일 야경을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 스트라스부르는 비즈니스 호텔 같은 2인실이었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의 이 호스텔이 첫 외국 도미토리 호스텔인 셈이었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숙소 식당으로 갔는데 곳곳에 한국인들이 앉아있었다. 역시 한국인은 아침 밥심인지 조식을 먹는 대부분이 한국사람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여행담을 나누었다. 그중 우리처럼 하이델베르크에 가신다는 분이 계셔서 동행하려 했지만, 기차 시간이 안 맞아 동행에 함께할 수 없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경유지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경유지이기도 했는지, 함께 조식을 먹던 일행 중에 한 명을 오스트리아 빈의 마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너무 신기한 나머지 이 인연 역시 그냥 스쳐지나 가게 둔 게 참 아쉬웠다.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흐려진, 프랑크푸르트의 낮과 밤
새삼 이렇게 떠올려보니 많은 것을 잊었지만, 또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억해 낸 여행지였다. 이곳에서 비롯된 그냥 스쳐간 인연처럼, 스쳐간 도시. 알고 보니 묵묵하게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이어주고 있었던 곳이었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 Storytrave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