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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Jul 18. 2015

낭만적인 과거로의 시간여행, 미드나잇 인 파리

나의 골든에이지(Golden age)를 여행하던 순간들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아홉 번째

_당신의 골든에이지(Golden age)는 언제인가.


글을 읽다 보면, 이야기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 작가의 모습이 상상 속에 그려진다. 읽고 보기만 했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 되면서, 그런 점이 참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 왔길래 이런 글을 쓰는 걸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에 대한 상상력에서 시작한다. 그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화가, 작가 등이다. 그 곳에서 피어난 동경과 사랑. 도시를 가장 매력적으로 담아내는 감독 우디 앨런은 <미드나잇 파리>에서 '파리'의 키워드를 바로 '동경'과 '사랑'으로 정한 듯 보인다.


자, 이제 당신이 사진 속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생각하는 당대 최고의 미남미녀와 함께 파리에서의 시간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해보자.


2014. 09. 18

유난히도 날씨가 좋았던 날, 루브르에 갇혀있기에는 밖의 풍경이 참 예쁜 날이었다. 잠깐의 소나기가 내리기 전이라 그런지 햇살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원을 거닐다가 따사로운 햇살을 피하, 뮤지엄 패스도 쓸 겸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루브르 박물관 만큼 북적이지도 않고, 그림도 몇 점 없는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잠시 가랑비가 오는지 건물 위로 톡톡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루브르 박물관이 사람 많은 백화점 같다면, 오랑주리 미술관의 느낌은 잘 정리된 보세점 같은 느낌이다. 루브르처럼 기라성 같은 작품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고, 네가 보고 싶은 만큼 보고 가라는 듯 작품이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는 것도 그랬다.


 

영화 속 그 장소,
오랑주리 미술관

소설가 길은 박물관, 미술관에서 온갖 지식으로 잘난 척을 하는 남자의 뒤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는 것이 따분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것은 미술관을 구경하는 큰 재미지만, 주인공에겐 그다지 큰 자극이 되지 않는다. 그는 파리의 밤, 자정, 미드나잇에 그 작가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짜릿한 경험을 이미 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있는 그 곳.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가 즐겨 찾았다던 그 곳. 비록 예전 그 곳 그대로 있는 서점은 아니지만, 작은 피아노 한 대와 아기자기 책을 쌓아 놓은 작은 책방이다. 이 서점의 창시자 휘트먼은 서점 한 편에 젊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일을 돕고 기록을 남기면 무료로 숙식을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흔적을 남길 수 있게 한 휘트먼의 서점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미드나잇 인 파리> 속 피카소

실제 그 공간에서 찍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그 시절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벌어졌을 것 같은 영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소설가 길은 당대 최고의 평론가에게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려고 찾아간다. 그 곳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괴팍한 화가 피카소와 그의 연인인 아름다운 (영화 속 가상의 인물) 아드리아나가 함께 있다. 자신이 피카소라는 남자. 주인공은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도 파리에서 자신을 피카소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를 만났었다.


Hello. I'm Picasso.
노트르담 성당
2014. 09. 19

영화 속 소설가 길처럼 이 날은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몽롱한 하루였다. 하필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따사로운 햇빛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볕 좋은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나무 그늘에는 엄청난 비둘기 떼들이 일치감치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덕분에 더위를 먹었다.


몽마르트르
몽마르트르로의 험난한 여정.

우리는 지도에 있는 몽마르트르 역 아닌 영 다른 몽마르트르 역으로 향했다. 설마 몽마르트르역에 몽마르트르가 없을지 몰랐다. 내린 곳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파리의 풍경과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외곽으로 빠져나온 것이 확실하다. 정말 쓸 수 없는 물건들만 파는 것 같은 작은 벼룩시장이었다.

길 잃고, 사람에 치이는 중에, 이곳에서 배낭 앞주머니에 있던 물티슈를 도둑 맞았다. 아마 그립감이 묵직한 것이 지갑 같았을 텐데. 아무래도 본의 아니게 소매치기를 속인 것 같다.

그 때 당시에는 소매치기 당한 지도 모르고, 우리는 어찌어찌 물어 결국은 지하철을 타고 몽마르트르가 있는 역에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미 난 몽마르트르고 뭐고, 너무 지쳤다. 일사병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결국 몽마르트르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카페에서 슈퍼에서도 살수 있는 아이스티를 거의 만원 가까이 주고 사먹어 버렸다. 다 마시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악. 내 피 같은 돈.

정말 마지못해 몽마르트에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닌데. 옆에서 동생은 나름대로 몽마르트르를 기대하고 왔는데 정신 못 차리는 언니 때문에 제대로 놀지 못했다. 동생은 몽마르트르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싶어 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라 비싸. 비싸. 라며 거부했다. 뭔가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 초상화 그려보지 않겠니?


도화지를 들고 스스로 영업하러 온 화가였다. 초상화 그리기는 포기하던 차라 무시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몽마르트의 피카소 아저씨

_나는 피카소야. 너의 눈은 모나리자를 닮았구나.


우리는 멈칫했다. 자기는 피카소고 너는 모나리자라는 둥 영업을 하는 통에 거절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아니, 마침 옆을 보니 동생은 정말 해 보고 싶은 눈치였다. 오늘 내내 신경질 부린 것도 미안하고, 나도 내심 초상화를 남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두 명에 30유로라는 저렴한 가격에우리는 콜을 외쳤다.





사진만 보아도 포스가 남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다른 화가와 다르게 다 닳은 짜리 몽땅 한 색 크레파스를 들고 있어 우리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결과물은...

예상보다 독특하고 처참했다. 그림 속 자매는 광대가 터질 듯이 튀어나와 있었다. 생각해보니 뭔가 피카소라는 데 납득이 가기도 했다. 모나리자는 피카소가 그린 것도 아니고, 피카소는 원래 형태를 파괴하는 그림을 그리는 그리는 작가였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영화 속 알렉산더 3세 다리

영화 속 주인공은 과거에서 만난 아드리아나와 시간여행을 한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의 Golden age는 언제냐고. 주인공 길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 1920년대를 살고 있는 아드리아나는 더 지금보다 과거가 더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났지만 주인공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곤 비 오는 밤 이 다리에서 두 남녀는 다시 마주친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답다며, 그렇게 이들은 새로운 현재를 시작한다.   

실제 알렉산더 다리 밑에는 선남선녀들이 모여 스탠딩 파티를 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자정이 되면 여행을 시작했지만, 우리는 여러 밤이 깊어갈수록 파리를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반년이 지난 뒤 지금 여행기를 쓰면서  지나간 기억은 생각보다 아름답게 남는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어떤 이야기를 쓰던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정답이 있으며, 무심히 지나친 지금이 당신의 골든에이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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