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성들과 어른 아이 루드비히 2세, 퓌센
2014. 09. 27
동화같지만은 않았던 하루. 독일은 작은 마을 위주로 하루씩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니 유독 기차 이동 시간이 많았다. 뉘른베르크-퓌센-뮌헨-잘츠부르크로의 대이동의 하루였다. 우리의 마음은 퓌센까지 끌고 가야 할 캐리어의 짐만큼 무거웠다. 퓌센역에 도착했으나 짐 보관 락커를 차지하기 위한 엄청난 경쟁에서 패배한 뒤, 버스도 놓치고, 캐리어도 놓친 채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일행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콜택시를 불러 함께 차를 타고 있었다. 점점 없어지는 사람들. 초조해졌다.
결국 우리는 여행에서 처음으로 택시를 타기로 했다. 노이슈반스타인성 표까지 한국에서 끊어간 터라 이 일정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택시비가 얼마가 나올지 엄청 초조했었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라 요금 폭탄은 피했고, 캐리어 역시 인포메이션 센터에 맡길 수 있었다. 그러니까 혹시 이 곳을 갈 계획이 있다면, 퓌센역에서 짐 보관을 할 수 없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일단 셔틀버스를 타기를 추천한다.
어른 아이, 루드비히 2세를 만나다
호엔슈반가우성 안의 백조들
우리는 퓌센에서 이 글의 커버사진인 노이슈반스타인성과 호엔슈반가우성을 구경했다. 노이슈반스타인성의 내부를 사진으로 담아올 수는 없었지만 성 내부를 구경하면서 이 성을 지은 루드비히 2세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보라색과 백조를 좋아했던 루드비히는 숲 속에 있는 자신의 성을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의 방을 꾸민 것처럼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놓았다. 방을 들여다보면, 자라지 않은 어른 아이, 루드비히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18세에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왕이 되어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그 경계에서 어른의 면모를 보여야 했던 그. 자신의 성 안에서 만큼은 아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백조를 좋아한 흔적은 루드비히가 어린 시절 살았던 호엔슈반가우성에도 잘 드러난다. 호엔슈반가우성을 따라 올라가면, 노이슈반스타인의 성이 한 눈에 보인다.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성은 동화처럼 아름답지만 외로워 보인다.
노이슈반스타인의 성은 월트 디즈니 성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성을 가보기 전까지는 외관의 모양만 따온 줄 알았다. 그런데 성 내부를 들어선 순간, 어쩌면 디즈니는 노이슈반스타인의 성을 만든 루드비히 2세의 마음까지 모티브로 따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디즈니는 어른의 마음속 성에 갇혀 있는 아이의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을 많이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또, 재미있게도 많은 작품 속에 '성'이 중요한 의미로 그려지기도 했었다.
Disney's Castles
수많은 디즈니의 작품들이 있지만, 최근작부터 인상 깊었던 몇 작품 속 디즈니가 만들었던 성들을 떠올려보았다.
마음속의 성, 인사이드 아웃 (2015)
첫 번째는 가장 최근작인 <인사이드 아웃>이다. 비록 픽사가 제작을 맡고 디즈니가 배급을 맡았지만 이 둘이 합쳐진 만큼 디즈니의 특색도 잘 녹아져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눈에 보이는 성이 등장하지 않고, 11살의 소녀 라일리의 마음속 성이 등장한다. 이 성 안에는 캐릭터로 표현된 '감정의 성'과 섬으로 표현된 아이의 '사회의 성'이 있다. '감정의 성'에는 기쁨-슬픔-버럭-까칠-소심이 있고, '사회의 성'에는 가족-우정-하키-엉뚱 섬이 있다.
어린 라일리의 마음속의 리더는 기쁨(조이)이다. 다른 감정과 기억을 기쁨으로 조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일리가 사춘기를 겪어내는 과정에서 기쁨이와 슬픔이는 서로를 보듬게 된다. 어린 시절 기쁨이었던 '빙봉'이 사라지며 슬픔이 되고, 슬펐던 기억이 가족의 보듬음으로 기쁨이 되면서 라일리의 마음의 성은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성'들이 한꺼번에 무너지지만 그 곳은 또 다른 성으로 세워지고, 조금씩 변화한다.
얼음으로 만든 성, 겨울왕국(2013)
지금까지도 어린이와 어른의 마음까지 모두 훔친 최고의 히트작인 디즈니의 <겨울왕국>에도 성이 등장한다. <인사이드 아웃>이 보이지 않는 마음속 성이라면, <겨울왕국>의 성은 엘사의 마음속을 대변하는 실체로 표현되었다. 손이 닿는 것마다 얼어붙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엘사는 어려서부터 홀로 가둬져 키워지고, 자라서는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무엇이든 참고 인내하던 엘사는 결국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바로 이 얼음성을 만들게 된다. 'Let it go(날 내버려 둬)'라는 메인 OST는 그때의 엘사의 감정과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참아왔던 모든 감정을 한순간에 터뜨리게 만들었다. 엘사는 이 얼음성에서조차 혼자가 되려 하지만 끊임없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동생 안나로 인해, 차가운 마음과 세상을 녹이게 된다.
마법에 걸린 야수의 성, 미녀와 야수(1991)
<겨울왕국>의 엘사가 자신의 숨겨진 능력 때문에 성을 만들어 혼자가 되려고 했다면, <미녀와 야수>의 야수는 흉측한 외모 때문에 갇혀 살게 된다. 여주인공 벨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이 마법의 성에 들어온다.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대해주는 벨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야수. 벨 역시 무서운 외모에 가려진 야수의 어린아이 같은 여린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노이슈반스타인 성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미녀와 야수>가 떠올랐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스틸컷 속 야수의 성과 느낌과 모습이 비슷했다. 고풍스럽고, 톤 다운된 푸른빛이 도는 것. 성 자체는 크지만 자신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야만 살 수 있었던 심리적 배경도 닮았다.
그 외 다양한 상징을 담아 표현된 Disney's castles
디즈니는 자신들의 작품 공간 안에서 '성'의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시켰다. 그것은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성으로, 성 그 자체로, 새로운 환상 세계로 표현된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점점 커갈수록 그 의미는 더 크게 다가온다.
<신데렐라> 속 왕자님과의 동화 같은 로맨스를 꿈꾸던 디즈니 역시 최근작 <겨울왕국>과 <인사이드 아웃> 등을 통해 아이뿐 아니라 어른의 마음속에 있는 아이의 성문을 두드리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 본 <겨울왕국>과 <인사이드 아웃>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눈시울을 붉히게 될 때, 우리는 어른이 되었음과 동시에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마치 퓌센에서 본 어른 아이 루드비히 2세처럼 말이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