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서 모차르트를 만난 순간들
-어디가 가장 좋았어?
여행을 다녀와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우리가 해외여행에 비싼 돈을 투자하는 것은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기 위한 것이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한 달 남짓의 유럽여행 비용을 벌기 위해 안 쓰고, 안 먹고, 마치 1년 중 한 달만 있는 것처럼 생활했었다. 그렇게 모은 돈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것과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많았던 곳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영국 런던이나 프랑스의 파리 같은.
그런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그 곳에 있을 아름다운 도시의 랜드마크가 기억나는 여행지가 있는가 하면, 내 마음속 깊숙한 곳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 있다. 여행 후 여행담을 묻거나 여행 팁을 얻으려는 지인들에게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 내게 그런 나라는 오스트리아였다.
나는 7대 불가사의를 다 보고 죽을 줄 알았어. 웃기지. 근데 생각을 해봤어. 그 꿈은 사라진 지 오래야. 내가 꿈이 사라졌던 거야.
- <꽃보다 청춘-페루 편> 中
<꽃보다 청춘>의 페루 편에서 유희열은 마추픽추를 보고 난 후,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어릴 적 7대 불가사의를 보고 싶었던 꿈이 이곳에서 문득 다시 떠올랐다고 말이다. 이제는 너무 커서 어디 가서 꿈이라고 말하기도 창피한 그런 꿈들을 꿨던 어린 시절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나 혼자만큼은 진지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 꿈에 대해서 떠올려 보려 한다.
어릴 때, 네모난 피아노 학원 가방을 들고 매일매일 동네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했다. 오스트리아에 유학을 온 음대생. 어른이 된 나는 그곳에서 똑같이 악보가 가득 담긴 피아노 가방을 들고, 곳곳을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솔직히 나는 그때, 오스트리아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파리의 에펠탑같이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음악의 도시'라는 말이 주는 느낌으로 비롯된 상상이었다.
실체 없었던 상상처럼, 잘츠부르크에서 보았던 음악의 흔적들은 실체없이 흩어져 있었다. 걷다 보니 지휘자 카라얀을 뜻하는 팻말도 보았고, 음악회관(?) 같은 곳도 들어갈 수 있었다. 음악을 가르쳐주는 학교 같기도 한 이곳에는 딱히 아무것도 없었고, 어떤 곳인지도 모르겠는데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피아노 가방을 흔들며 상상하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만난 모차르트, <모차르트 소나타>와 <모차르트 변주곡집>
모든 명곡들이 모여있다는 소곡집, 명곡집이 아닌 한 사람의 작곡가가 만들어 낸 작품집을 처음 손에 받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는 대부분의 학생이 그러하듯 첫 번째 작곡가는 MOZART. 고급스러운 표지와 영어로 표시된 곡목록, MOZART라고 박힌 로고까지. 이제야 진정 피아노를 치는 것 같았다. <반짝반짝 작은 별>로 알려진 변주곡은 변주곡집 2번으로, <터키행진곡>은 소나타 2권의 11번의 한 악장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제야 원곡을 만난 느낌.
나는 모차르트의 곡을 듣는 것보다 연주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손이 작은 대신 악보를 빨리 보는 편이었던 내게는 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오른손과 왼손의 리듬이 정박으로 딱딱 들어 맞아 들어갈 때의 그 만족감이란. 한 곡을 완성하는 데 힘들지도 않으면서도, 촘촘한 음표를 채우느라 다른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그렇게 비슷한 패턴으로 수다스럽게 조잘대는 모차르트가 내가 손가락으로 만난 모차르트였다.
눈으로 만난 모차르트, 영화 <아마데우스>
영화 <아마데우스>는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희열을 주는 영화다. 음악시간에 누구나 보았을 법한 이 영화. 초, 중, 고교, 심지어 대학 교양수업까지. 음악 시간마다 보았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처음 이 영화를 보았었다. 그때는 생각보다 야한 장면에 교실의 아이들이 민망해하고 쑥스러워했다. 아이들 대부분이 지루하고 어려워하였다. 나 역시 영화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 아주 재밌지는 못했지만, 피아노로 쳤던 장난스러운 음악 그대로 녹아져 있는 영화 <아마데우스> 속의 모차르트가 머릿속에 콕 박혔다.
피아노를 취미로 즐기기로 하고, 영화와 드라마 쪽으로 꿈이 옮겨진 무렵인 고등학교와 교양수업 때 다시 보았던 <아마데우스>는 조금 더 영화적으로 보였다. 살리에르의 시점을 활용해 더욱 선명한 캐릭터로 살아난 모차르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모차르트의 안타까운 삶이 화면 밖으로 느껴졌다. 방탕한 천재라고 생각했던 모차르트가 다르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영화 속 나오는 <밤의 여왕>이나 <진혼곡>이 나오게 되기까지의 과정 속에 음악과 상상력이 고스란히 녹여있었던 작품으로 다시 기억되었다.
2014. 10. 03
프라하에서 빈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아마데우스>를 다시 보았다. 몇 번을 다시 본 내용이라 자막이 없어도 볼 수 있었다. 알고 있는 내용을 기억하느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표정과 모차르트의 음악에 더욱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의 생가를 다녀온 터라 그의 삶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발길 닿는 곳에서 만난 모차르트 1
2014. 09. 28
그동안 눈으로, 손으로만 보았던 모차르트를 직접 맞닥뜨릴 생각을 하니 기분 좋은 긴장감이 생겼다. 1층의 기념품관을 비롯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바글바글한 관광객을 뚫고 들어가면, 생각보다 한산한 모차르트에 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된 전시관이 기다리고 있다. 짧은 영어로 떠듬떠듬 모차르트의 생애를 읽어내려 갔다. 천재의 모든 것을 기록해 놓으려는 듯 작은 소품들부터 그의 가족 가계도까지. 영화 속에서 찾아오는 사람 없이 쓸쓸히 죽어간 모차르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쪽에는 악보를 따라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이 있었다. 느긋하게 둘러본 후, 기념품 샵에서 저렴한 모차르트 CD를 샀다. 조그마한 아이가 전시관 내부에 울려 퍼지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흥얼거리는 소리도 듣기 좋았다.
발길 닿는 곳에서 만난 모차르트 2
2014. 10. 05
오스트리아 빈의 외곽 중앙묘지에는 '모차르트'의 기념비가 있고 양 옆으로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소가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이 세 음악가의 묘비가 함께 모여있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중앙묘지에 가기 위해 도착한 트램역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묘지에 들어서는 순간, 묘지라기에는 잘 가꿔진 정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의 특성을 살려 만들어진 유명인들의 묘비가 미로처럼 세워져 있는 곳. 관광객도 거의 없어서 조용히 산책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 두 대가 함께 놓여있는 연습실에서 이름 모를 사람과 등을 맞대고 피아노를 치던 순간이 기억난다. 다른 사람의 피아노 소리와 맞물려 가장 인기 없는 방이었는데, 가끔 난 일부로 그 방에서 연습을 했었다. 그 곳에서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하고 나면, 마른 땀이 흘렀다. 다른 사람의 소리는 뒤로 하고, 나의 피아노 소리만 들으면서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던 순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몸이 하염없이 축 쳐지거나, 머리가 복잡한 것 투성이 일 때, 피아노 뚜껑을 열곤 한다. 생각나면 두드리고, 실컷 두드리면 답이 한결 간결해진다.
피아노를 배우면 배울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모든지 좋아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 시절에는 피아니스트가 정말 되고 싶었다. 학교에서 꿈을 적어내라고 하면 피아니스트라고 적어 냈었다. 그런데 조금씩 현실을 아는 순간 맥이 탁 풀렸고, 되지 못할 바에는 학원을 그만 두자 해서 중학생이 되면서 남들처럼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밑도 끝도 없이 진지하고 오글거렸던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취미로 남게 된 피아노는, 그래서 더 내게 순수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 곳에서 어린날에 사라졌던 꿈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른 꿈을 꾸지만 이것 역시 녹록지 않은 꿈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만 많아진다. 이렇게 해야 꿈에 가까워질 수 있겠지라며 잔머리만 굴리게 되거나 이제 그만할까 지레 포기를 고민한다.
그런 면에서 '브런치'의 연재는 조건 없이 재밌게 연주했던 피아노처럼 조건 없이 시작한 또 하나의 무언가가 되었다. 금방 포기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벌써 여행의 중반을 넘어서는 순간까지 왔다. 나만 쓰고 보았던 글을 나누는 기쁨도 알게 해 주었다. 어쩌면 이런 테마로 연재하게 된 것도, 오스트리아에서 힌트를 얻은 덕분이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담아 보려고 한다.
어딘지도 모르는 오스트리아를 거니는 꿈을 꾸었던 그때처럼 가끔 오글거리고, 세상 진지해도 앞으로도 그런 꿈이 생긴다면 계속 꾸고 싶은 욕심이 든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 & Storytrave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