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
2014.09.28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는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투어'라는 말이 어딘가 패키지 여행의 느낌이 든 데다가 우리 둘 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끝까지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박으로 묵었던 숙소의 주인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이 투어를 권유했었다. 생각보다 잘츠부르크에서의 일정이 없었던 차였는데 마침 싸게 표를 구해주셔서 급작스럽게 일정이 결정되었다. 알아보니까 대중교통으로는 찾아가기 힘든 잘츠부르크의 숨겨진 명소들을 가볼 수 있는 투어였다. 투어라고 색안경 꼈던 것이 무색할만큼 알찼다.
자. 모두들 탑승하세요.
일정 중에 한번도 투어를 해본 적 없던 터라, 오랜만에 북적북적 놀러 가는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 버스를 함께 타는 연령대가 어르신분들이 많았다. 뭐지. 숙소 할머니께 낚인 건가 싶었지만 시원한 버스에 앉으니, 이렇게 앉아 쉬면서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The Original Sound of Music Tour
사운드 뮤직 투어라는 명명 아래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이 있는 듯했다. 실제 버스 탑승지 주위에는 어딘가 어설픈 모양새의 투어 버스들이 여럿 있었다. 다행히 오리지널 투어를 신청한 것 같았다. 설령 오리지널이 아니었더라도 내가 만족했으니까 됐다.
앞 뒤가 달랐던 캡틴의 집, Leopoldskron Palace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극 중 캡틴의 집의 전경으로 나온 곳이었다. 실제 극 속에서는 이 하나의 집을 다양한 공간에서 찍었다고 한다. 마리아가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빠졌던 장면과 젖은 채로 집에 들어가는 장면 모두다 다른 곳에서 찍었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수녀 생활, 논베르크 수도원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설명으로 밖에 들을 수 없었지만 마리아가 수녀 생활을 하던 수도원도 볼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정말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던 가이드 분. 비록 설명이 영어라 알아들을 수 없거나 잘못 이해한 부분이 많았지만 실제 극 중 마리아처럼 짧게 커트한 머리와 의상이 실제 영화 속 마리아를 만난 것 같았다. 정말 마리아처럼 천진난만하고 밝으신 모습에 보는 내가 더 기분이 좋아졌다.
Sixteen Going on Seventeen의 Helbrunn pavilion
<사운드 오브 뮤직>하면 가장 인상 깊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Helbrunn 공원 안에 있는 유리 정자 안에서 캡틴의 딸과 우체부의 사랑의 세레나데가 나온 장면이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둘은 저 정자 안에서 춤을 추며 사랑을 속삭인다.
이 정자는 영화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없애지 않고 이렇게 관광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정자 안에 들어가 구경할 수 있었는데,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영화 속 소녀처럼 의자를 건너 뛰어서 다치는 경우가 많아 외관만 구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관광객들의 필수 기념사진 코스. 대부분 어르신으로 구성된 투어에서 눈에 띄게 예뻤던 여행자 세 분이 마침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장트길겐의 아름다운 풍경
스위스를 가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스위스에 온 것 같은 풍경을 담고 있는 잘츠부르크. 그중 장트길겐으로 향하는 길의 풍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풍경을 배경 삼아 버스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OST가 흘러나온다. CD에 있는 모든 노래의 가사를 외워 따라 부르시는 어르신들. 콘서트장에서 떼창을 부르는 젊은 사람들 못지 않은 열정이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젊은 날의 추억을 여는 듯했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노래를 잠시 멈춘 가이드 분이 잠깐 눈을 감으라고 했다. 뭐가 있길래 하는 마음에 눈을 감았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눈을 뜬 순간 버스 밖으로 알프스 산의 풍경이 한 눈에 보였다. 눈으로밖에 담을 수 없었던 짧은 순간이었다. 그래도 투어인 만큼 우리는 가장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는 곳에 내려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마리아와 캡틴의 웨딩
어느덧 투어는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이곳은 영화 속에서 캡틴과 마리아의 결혼 장면을 찍었던 성당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다른 곳에 비해 꽤 긴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성당 주변을 산책했다.
노래를 부르는 마리아가 떠오르는 곳, Mirabel Gardens
미라벨 정원. 수도원에서 수녀 보다는 밖을 자유롭게 뛰어 다니며,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는 것이 어울리는 마리아의 성격을 잘 보여주었던 공간이었다. 나무 덩굴 속에서 뛰어오던 마리아가 떠오른다.
오래된 이야기는 아름답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 속 그 장면
내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그다지 큰 의미나 재미가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영화도 이 투어를 갔다 와서야 보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앞 부분 캡틴과 마리아의 사랑이야기까지만 봐서 뒷부분에 나치를 피해 망명하는 시대적이고 진중한 결말이 있는지도 몰랐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속에서 따뜻했던 마리아를 더 기억한다.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은 채 투어를 참여했기 때문에 영화 속 명소보다 다른 것이 더 기억에 남았다.
- 열정적이고, 재미있는 설명을 해 준 가이드 분과 서로 농담을 주고받던 기사 아저씨.
- 불편한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영화 속 나왔던 곳을 전부 걸어 다니셨던 할머니. 그분의 표정은 우리 중 가장 밝았다.
- 버스 안에서는 영화를 50번도 더 봤다는 분.
오래전 보았던 영화가 이렇게 오래도록 그분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에게 해리포터가 그랬듯 그분들에게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그랬던 것일까. 그렇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처음 온 이 곳이 얼마나 더 반가웠을 것 같다.
이야기는 같은 풍경, 같은 공간이지만 사람을 더욱 즐겁게 만든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 & Storytrave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