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슈타트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로의 이동,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
2014. 09. 29
이동의 날_잘츠부르크 → 할슈타트 → 체스키 크룸로프
잘츠부르크 숙소의 주인 할아버지의 픽업 덕택에 기차역에 일찍 도착했으나 결과는...
기차를 타고 창 밖을 구경하면서 그 날따라 유난히 수다가 봇물 터지듯 터졌었다.
풍경은 예뻤고, 몇주일째 먹지 못한 한국 음식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때, 우리한테 말을 걸어오던 한 할아버지.
"어디에서 왔니?"
"한국에서 왔어요."
"South Korea or North Korea?"
말을 거는 사람들마다 자주 묻는 패턴이라 익숙하게 남한에서 왔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어디 가니?"
"할슈타트요."
"할슈타트로 가는 역은 반대로 가는 기차를 타야되는데?"
뭐라고....? 여행 중 처음으로 기차를 잘못 탄 것이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황홀한 창 밖 풍경을 배경 삼아 한국 음식 이름 대기 배틀을 하며 하염없이 갔을 것이다. 일단 허겁지겁 내려서 당황한 표정으로 역무원에게 물었다. 다행히 표를 사지 않고, 반대편으로 가는 기차를 안내해 주었다. 족히 1시간은 간 것 같았다. 졸지에 창 밖의 풍경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의 플레이 리스트
The Origin of Love - 헤드윅 OST
랜덤 재생으로 우연히 들었던 음악. 기차 속도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템포. 소소한 풍경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 번갈아 지나가는 것처럼 벅차오름과 조심스러움의 강약이 있는 음악이었다.
이십 년이 지난 뒤 - 이적
가만히 창 밖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기 좋은 음악이다. 한 학기를 남기고 예정에 없던 휴학을 하고, 여행을 떠났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같은 예산으로 더 오래 여행하고 싶어서. 어느덧 여행의 절반이 지나가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 반,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 반. 이십 년을 넘게 함께한 동생과 이어폰을 나눠 꽂고 들었던 음악. 그때도, 지금도 이십 년이 지난 뒤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다만 그 때도 이렇게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만 들었다.
할슈타트
멋있고, 예쁘다 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당일치기로 구경하러 오기 보다는, 머무르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고 볼 것 없다고, 당일로 계획을 잡았던 것이 후회가 된다. 그냥 이 곳에서 머무르면서 일몰을 보고, 아침 공기를 마셨다면 훨씬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기차역을 놓쳤고, 이 곳에서 체스키로 가는 셔틀을 타야 했기 때문에, 더욱 시간이 촉박했다. 다시 올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 참 아쉬움이 많은 여행지이다.
길 위의 드라이브,
빈셔틀을 타고 체코의 국경을 넘다.
빈 셔틀이라고 해서, 정말 셔틀버스 일 줄 알았는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7명 정도 탈 수 있는 봉고차였다. 공교롭게도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각각 2명씩 일행과 함께 타게 되었다. 덩치가 작은 우리는 드라이버의 바로 옆에 끼여 앉아야 했다. 얼굴을 보고 뽑는지, 잘생긴 훈남드라이버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유난히 무뚝뚝했는데, 영어에 서투른 체코 사람인 것 같았다.
처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여행은 신선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탁 트인 시야. 선글라스도 뚫고 들어올 듯한 강렬한 햇빛.
라디오에서는 신나는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우리나라 라디오처럼 최신 음악을 반복해서 틀어주는지, 들었던 곡들이 다시 나올 때면 반가웠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로 차를 몰면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모습에 우리는 안전이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Nobody To Love - Sigma
빈 셔틀을 타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음악들 중 가장 귀에 꽂힌 음악. 한국과 달리 아무것도 없는 평야 위를 시원하게 달리면서 듣기에 매우 적절하다. 유독 체코 사람들이 좋아했던 음악인지, 프라하 길거리에서도 종종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집에 와서 유로팝 탑 100을 뒤져서 겨우 무슨 노래인지 찾아냈다. 요즘도 이 노래를 들으면 길 위를 쌩쌩 달리던 그 때가 생각난다.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뮤비를 봤는데 두 여자가 드라이브로 여행하는 장면이 많이 담겨있다. 드라이브와 잘 어울릴거라는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 여행 중에 발견한 가장 좋았던 음악 중에 하나. 이 노래만은 꼭 한 번쯤 들어보길 추천한다!
지직지직-
라디오 소리가 체코어로 바뀐다. 무뚝뚝하게 운전만 하던 드라이버가 여기부터는 체코라고 알려줬다. 말로만 듣던 국경을 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로 들어왔다. 그는 중국, 일본 일행을 구시가지에 있는 숙소까지 픽업해주었다. 덕분에 차를 타고 체스키의 저녁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는 차를 잠시 멈추더니 우리 숙소 주소를 다시 한 번 물어보고, 내비게이션을 이것저것 작동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어딘가 조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벌써 깜깜해진 밤,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숙소 예약을 잘못한 건가 걱정도 되었다. 다행히 그는 무사히 우리를 숙소 앞에 내려주고, 짐도 내려주었다. 그 역시 구시가지가 아닌 곳이라 꽤 헤맸나 보다.
이 날은 거의 하루 종일 창 밖의 풍경만 보았다. 기차의 속도와 자동차의 속도는 다르고, 속도에 따라 풍경도 달라진다. 귀에 이어폰만 꽂으면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여행이 시작 된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