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건 여행 팟캐스트에서 시작되었다.
이태원의 뒷골목, 녹사평 역과 가깝고, 용산구청을 뒤로 한 채 있는 한적한 카페가 하나 있다. 그 카페의 이름은 카페 'SSAC'.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카페가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 데다가 찾아가기 다소 힘든 곳에 위치해 있어서, 다른 손님들이 한 명도 없었었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바리스타 분이 팟캐스트 듣고 오셨냐며, 듣는 분들이 주로 찾아오신다고 했다. 그렇다. 바로 이곳은 <싹수다방>의 여행 팟캐스트의 녹음실이자 여행카페다. 같은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왠지 모를 묘한 느낌을 주었다.
마침 남미 여행에서 돌아온 손미나 작가는 카페의 위층 사무실에 계시다고 했다. 우리는 사인을 받고 싶었지만, 저자의 책도 없는데다가 종이 쪼가리를 내밀기 뭐해서 그만 두었다. 그래도, 혹시나 한 번쯤은 내려와서 우연히 마주치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도 팟캐스트의 배경(?)이 되는 이 곳에서 여행책을 뒤적이니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이 모든 건
여행 팟캐스트에서
시작되었다
어쩌면, 이 글은 여행 브런치를 시작하는 글에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태생적인 '집순이'이다. 아무리 집 안에 있어도 답답한 줄 모른다. 그런데 여행이 취미라니. 나는 역시 중간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 집순이인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큰 맘 먹고, 밖으로 내딛는 만큼 그 모든 순간이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유럽여행을 가기에는 집안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모아둔 돈도 없었다. 그래도 지난 대만이나 일본처럼 가깝게 4박 5일 정도의 여행을 계획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다.
컴퓨터로 편집을 반복하는 지루한 작업이지만, 여행 팟캐스트 <손미나의 여행 사전>과 <탁피디의 여행수다>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일을 했었었다. 언젠가 가야지라고 마음속으로만 꿈만 꾸던 순간, 마침 시급이 면접 때보다 500원 인상되었다는 통보를 들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얼추 한 달 100만 원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동생에게 문자를 날렸다.
- 나 시급 올랐어. 유럽여행 가는 거 어때?
뜬금없어했지만, 동생도 언젠가 여행 갈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터라 오케이 했다. 그 뒤로 틈틈이 돈 나올 구석이 있는 곳은 모조리 뒤졌다. 어떻게든 저렴하게 가기 위해 정보를 찾았고 긁어 모은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비로 휴학까지 감행하며 나는 떠났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여행은 떠날 수 있다.'
여행 팟캐스트의 속삭임 덕택에 나의 첫 유럽 배낭 여행이 시작되었었다.
손미나의 팟캐스트 시리즈 속
BEST 특집
손미나와 탁pd의 여행 팟캐스트는 각각 다른 매력이 있다. 탁pd의 팟캐스트는 다음번에 정리하기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손미나의 팟캐스트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 팟캐스트는 주로 거친 입담의 DJ들이 많은 팟캐스트들 가운데 정제된 언어와 차분한 공중파 라디오 방송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공중파처럼 중간 광고가 없어서, 깔끔하게 듣기 편하다. DJ의 어마어마한 인맥으로 다양한 분야의 셀럽들이 게스트로 나온다. 어떤 청취자는 보통 사람의 여행이 아닌 소위 말하는 '있는' 사람들의 여행 방식이라며 공감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오히려 자신만의 분야의 관점으로 여행하는 게스트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준비했다.<손미나의 여행 사전 1>- <손미나의 여행 사전 2>-<손미나의 언제 갈 거니?>-<싹수다방> 시리즈를 모조리 들었던 애청자로서 나만의 베스트 특집을 꼽아보려 한다. 듣다 보면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길.
<손미나의 여행 사전 1> 중 '극지&윤승철'편
손미나의 여행 사전 시즌 1은 지금과 다르게 어설픈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PDF 파일이나 관련 영상, 오글거렸던 콩트까지,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것임은 분명하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비슷한 또래의 학생이라는 점에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좀처럼 시도하기 힘든 사하라 사막, 아타카마 사막, 고비사막, 남극이라는 차원이 다른 여행지만큼 그의 에피소드는 차원이 달랐다. 철저한 준비와 여행지에서의 생고생. 그러나 그 이야기 안에서도 사막의 낭만이 느껴졌다.
<손미나의 언제 갈 거니?> 중 '히말라야 파이터 정유정 작가' 편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 정유정. 난생 처음 떠난 해외여행지로 네팔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특별하고 다른 느낌이다. 여행지인 히말라야만큼 오르기 힘들었던 소설가로서의 삶과 여행지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더 큰 의미를 느끼게 만들었던 편이었다. 첫 해외 여행의 설렘과 실수담은 나의 첫 여행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들은 것 같은 건 역시 작가님이기 때문인 걸까.
<손미나의 싹수다방> 중 '임형주의 뉴욕 맛& 음악여행과 피렌체 이야기' 편
<싹수다방>은 1회 이효리&이상순 커플을 시작으로 지난 시즌보다 더욱 쟁쟁한 게스트들이 출연했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분은 바로 팝페라 가수 임형주. 다른 게스트 분들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그래서 오히려 예상치 못한 반전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깨알 같은 뉴욕의 맛집과 공연을 다니면서 여행했던 에피소드, 피렌체 유학시절의 이야기까지. 함께 수다 떠는 느낌으로 들을 수 있었던 편.
마치 여행지에서 듣는 것처럼,
고정 게스트 뮤지션들
손미나 작가의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 가장 큰 이유는 고정 게스트의 '음악' 때문이다. 이 팟캐스트를 통해 몰랐던 좋은 뮤지션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여행지에 맞는 음악을 선곡해 와 직접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퀄리티가 꽤 좋다.
<손미나의 여행 사전 1>의 '바닐라맨'과 '바닐라시티'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도, 잘 다녀보지도 않았다는 게스트. 처음에는 여행 팟캐스트의 고정 게스트로 안 맞지 않나 했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재밌었다. 여행정보에 더 중점을 두었던 만큼 여행초보로서 함께 '배우는(?)' 포지션을 취했던 고정 게스트. 아쉽게도 목소리는 취향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 잠깐 나왔던 '바닐라시티'라는 뮤지션이 인상 깊어서 그들의 곡을 소개한다.
<손미나의 여행 사전 2>와 <손미나의 언제 갈 거니?>의 '시나'와 '스노우'
시나의 목소리와 스노우의 아코디언. 이들의 조합은 유럽, 그 중에도 특히 프랑스가 떠오르게 한다. 토크에서는 수줍게 게스트의 말을 듣고 있는 편이지만 음악을 할 때만은 정말로 그 여행지로 떠나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스노우님은 아코디언 연주를 취미로 하시는 것 같아서 유튜브 영상을 찾지 못했다. <싹수다방>에도 가끔 들을 수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팟캐스트를 들어보시기를.
<싹수다방>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
여태까지 고정 게스트 뮤지션 중 가장 고퀄의 음악을 들려주는 뮤지션이다. 언젠가 공개녹음이 있다면 직접 듣고 싶을 정도다. 팟캐스트에서 음악과 함께 능청스러움을 담당하시는 듯하다. 영상은 팟캐스트와는 별 상관없지만 도입부가 인상적이어서 골랐다.
글. Storytrave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