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에서 영화 고르는 팁
여행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픈 다리를 쉴 수 있고, 무엇보다 혼자 여행에서는 심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제에 빠진 것은 작년 <전주 국제 영화제>부터였다. 올해도 <전주 국제 영화제>를 비롯해, <유럽 단편 영화제>,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를 다녀왔다. 사실 영화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영화제에 빠지게 된 시기가 좀 늦은 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제 영화는 어렵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영화제 영화는 어렵다?
가끔 단편 영화나 독립 영화를 볼 때 그렇게 심오하고 졸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화제의 영화라고 다 그런 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 몇 작품 걸려 있지 않은 상업 영화 중에 고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영화를 개봉하는 영화제에서 오히려 당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영화를 고를 수 있다는 사실. 혹시 예전의 나처럼, '영화제 영화는 어렵다'는 편견을 가진 분들도 영화제의 매력을 느끼길 바라면서 개인적인 팁 몇 자를 적어보려 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실험적이고 철학적이고 심오한 영화를 즐기는 분들 보다는 대중적인 영화를 즐기는 분들께 더욱 적합할 것임을 밝혀둔다.
<왓차> 앱에서 나의 영화 이력을 바탕으로 분석해준 자료를 첨부한다. 영화 선정 팁은 물론 취향에 상관없이 쓰긴 할 테지만, 혹시 나와 비슷한 영화 취향을 가진 분들에게 더 도움이 될까 해서 첨부한다. '상위 5% 진입'하고 나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854시간이면 24시간 내내 영화만 본다고 했을 때 무려 35일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영화제 영화 고르는 팁
첫 번째, 각종 영화매체(영화제 페이스북 페이지 or 영화 잡지)에서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를 읽어본다.
너무나 많은 작품이 있고, 그 작품 속 배우, 감독, 우리는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다. 평소 영화 선정 기준이 배우, 감독이었던 우리에게 알 수 없는 선택지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티켓팅 시기쯤 각종 영화매체에서 영화제의 영화 가이드를 담곤 한다. 일단 첫 번째로 영화를 추릴 수 있는 방법! 주목할 만한 영화 중에서 자신의 취향의 영화를 발견했다면, 거의 100프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영화의 스틸컷
(사람이 등장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잘생겼는가 or 귀여운 아이가 등장하는가)
첫 번째 방법의 영화들은 티켓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한 편정도 건져도 성공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른 영화들을 직접 골라보자. 영화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스틸컷 하나와 간단한 줄거리가 있다. 줄거리가 스포일러 같다면 그 옆의 스틸컷을 주목한다. 영화제에는 정말 '다. 양. 한' 영화가 있다. 자욱한 안개와 수평선이 있다면, 티켓팅 전에 잠깐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상상보다 훨씬 더 지루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철학적 사유보다는 인물 간의 갈등과 서사가 있는 영화를 즐기는 편이라 나는 일단 스틸컷에 '사람'이 등장해야 한다. 그 사람은 웬만하면 잘생긴 배우거나, 귀여운 아이이면 더 좋다. 정작 영화 내용은 재미없더라도, 눈 정화는 가능하다.
세 번째, 자신이 좋아하는 나라에서 만든 영화
국제 영화제는 다양한 국가의 영화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좋아했던 나라의 영화를 선택해보자. 그 나라의 문화가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 영화다. 이미 자신이 그 나라의 문화를 좋아하고 있다면, 그 나라의 영화와도 분명 잘 맞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내가 갔던 곳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더 재밌고,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13TH 아시아나 국제 단편영화제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2015. 11. 07
위의 세 가지 팁을 종합해 내가 예매한 표는 '국제경쟁 6' 섹션이었다. 씨네큐브 광화문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비가 엄청 내리던 날이었다. 사실 이미 끝난 영화제이고, 뒤늦은 리뷰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도, 정작 읽으실 분들이 영화를 볼 수 없어서, 리뷰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아시아나 국제 영화제(ASIFF)> 출품작이 기내 상영을 위해 따로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대체된다고 하니, 아시아나 국제선을 이용한다면, 이 영화들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당장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시간과 돈이 없다면, 내년에도 열릴 이 영화제에 주목해도 좋을 것 같다. 또 하나, 이 영화제의 좋은 점은 아시아나가 주최해서 그런지 해외의 감독들의 GV(감독과의 대화)가 함께 열린다는 점이다.
ASIFF 국제경쟁 6
섹션 6에서는 7편의 단편영화가 있었는데, 영화 상영 시간 순서가 아닌, 임의로 나누고 묶어 리뷰해보려 한다.
다루기 힘든 그녀(WAYWARD)_덴마크, 2014
별점 : ★★
한줄평: "20여분의 시간만으로 소녀의 삶이 짐작된다."
이 한줄평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20분 만에 소녀의 삶이 짐작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뻔하다는 것. 좋게 말하면 함축적으로 잘 담아냈다는 것이다. 내용은 특별할 것이 없다.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남자아이들에게 여자라고 무시받는다. 그들에게 특별한 저항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처음부터 주눅 들지 않는 눈빛과 마지막 장면의 한 방. 그녀를 유일하게 친구로 대해주던 소년과의 관계도 궁금했지만, 감독은 철저히 소녀의 성장에 집중하려 한 듯하다. 그러나 그 방식이 조금 뻔했다.
면적 제로 (ZERO M2)_프랑스, 2015
별점: ★★★★★
한줄평: "일상적인 공감대를 색다른 시각으로 표현. 의미도 강렬하고, 재미도 강렬하다."
이 한 편만으로 정말 만족한 영화였다. 스스로 별점에 꽤나 박하지만 별 다섯 개 이상을 더 주고 싶은 작품이었다.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프랑스 파리. 주인공 폴은 적당한 가격의 원룸을 발견하지만, 이웃들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고, 소음이 들려온다. 하루하루 집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줄어든 면적을 활용해 계속 세입자를 들이는 집주인. 폴은 세입자들과 연합해 공간을 지키려고 한다. 그 방법은 서로 간의 문을 터서 널찍한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다. 일상적이고 공감 가는 소재를 쉽지만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결말 또한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 특유의 재미있는 연출과 음악도 엿볼 수 있다. 역시나, 이번 영화제에서 아시프 락(樂)상을 수상했다.
GV에서 꼭 보고 싶었던 감독이었는데 마침 모든 영화 상영이 끝나고, GV에서 <면적 제로>의 감독을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죽은 비둘기'가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였냐는 물음에 파리의 시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물이고, '도시생활이 우울해서 치여 죽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생각했다고 한다. 결말 역시 '뭉치면 혼자서 찾기 힘든 해결책을 더 나을 것'이라며 영화처럼 위트 있고, 더 나은 삶에 대해 고민하는 듯 보였다.
빅터 XX (VICTOR XX)_스페인, 2015
별점: ★★★
한줄평: "영화가 끝나고 더 할 이야기가 많다."
안타깝게도 영화의 내용은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만으로는 개인적으로 별 두개 반 정도를 주려 했으나, 후에 GV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별 세 개. 감독은 GV에서 실제 성소수자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을 당연하고, 당당하게 밝히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GV에 임했다.
"인간은 두 가지 성으로 나눌 수 없다. 여자가 남성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남성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을 여자 혹은 남자로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정체성에 대한 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영화보다 GV에서 빛난던 작품이다.
저 길 아래 어딘가(SOMEWHERE DOWN THE LINE)_아일랜드, 2014
별점: ★★
한줄평: "주제를 풀어갈 소재는 독특하나, 정작 주제가 희미하다."
차 안에서 한 남자의 삶의 순서를 운전하는 차 안이라는 공간을 통해 함축적으로 보여 주려는 점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정작 함축적 장면에서 유추할만한 주인공의 삶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쉘터(THE SHELTER)_한국, 2015
별점: ★★★
한줄평: "쫀쫀한 긴장감, 그러나 결말에서 맥이 풀린다."
6 섹션 중 유일한 한국 영화다. 여배우가 낯선 남자가 운전하고 있는 차 안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공포를 그렸다. 개인적으로 7 작품 중 가장 아쉬운 작품이었다. 좁은 공간에서의 공포감을 감독, 배우들이 효과적으로 표현했으나, 결말이 정말 읭?!스러웠다. 주제도 모호해져 버리고, 긴장감도 풀려버리는 안타까움.
드라이빙 (DRIVING)_미국, 2014
별점: ★★★★
한줄평: "짧지만, 재밌다."
단편 영화 중에서도 가장 짧은 러닝타임이다. 차를 운전하면 인격이 변하는 것은 만국 공통의 공감대인가 보다. 극도로 포악해져 가는 드라이버들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풍자적으로 담아냈다.
카피캣(COPYCAT)_미국_2015
별점: ★★
한줄평: "잘.... 모르겠다."
예매 전 사진으로 본 감독의 앳된 외모가 궁금했었다. 영화는 솔직히 정말로 "잘 모르겠다." '10대 감독이 획기적인 공포 영화를 찍기 위해 1억 원을 모으는 데 성공하고, 25년이 지난 뒤 어떤 공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가 프로그램 북에 적혀있는 영화 설명이다. 내가 공포영화를 잘 안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왓챠를 살펴보니 평생 2편의 공포영화를 봤더라) 아마 공포영화의 역사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은 것 같았다. 편집도 빠르고 말도 빠르고 자막도 빨라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를 한 편 더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영화보기 딱 좋은 날씨였는데.. 아무튼 나만의 선정 기준으로 영화를 골랐는데, 이번에도 역시 성공!! 요즘은 영화제의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영화제 별 특색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영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다양한 영화제가 나오지 않을까.
특히 아시아나 영화제가 좋았던 점은 해외 감독들을 많이 초청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 앞에 서서 감독과 관계자들이 서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 마치 외국에 있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매진될 줄 알고 예매했는데, 정작 텅텅 빈 관객석도 아쉬웠다. 영화제도 좋은 여행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Storytrave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