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2세>, <키드> in 무주 산골영화제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 같았던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는 주인공 알프레도가 관객들을 위해 야외상영을 해주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국적인 밤 풍경을 배경으로 삼삼오오 모여 영화를 보는 야외 상영의 로망은 다 이 영화가 심어주었었다. 무주 산골 영화제가 기대되었던 것도, 바로 이 야외상영 콘셉트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가 아닌 '영화를 보는 행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다른 유명 영화제들이 세계의 신인 감독들이 각자의 작품을 소개하고, 경쟁하는 자리라면, 무주 산골영화제는 누가 봐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기획한 영화제라는 느낌이 든다.
대형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벗어나 무주 시민들의 공간인 예체문화관의 영화관, 등나무 운동장, 덕유산 중턱에서 상영되는 무주 영화제는 스크린 속 이야기가 아닌 스크린 밖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화보기' 경험에 더 중요한 의미를 둔 영화제였다.
3박 4일 간 누렸던 영화제 일정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성영화에 덧입힌 뮤지션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여태까지 무성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운 좋게도 <셜록 2세>와 <키드> 두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셜록 2세(1924)>
with 어쿠스틱 밴드 신나는 섬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셜록 2세>와 <키드>를 통해 1920년대 영화의 골든 에이지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걸어 다닐 필요도 없다. 따뜻한 옷과 시원한 맥주 한 캔만 준비되어 있다면 말이다. 깜깜한 밤, 풀 냄새나는 바람을 느끼니 이곳이 무주인지 지구 반대편의 다른 나라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첫 번째 작품은 <셜록 2세>. 이 작품은 찰리 채플린과 함께 무성영화의 슬랩스틱을 잘 표현하는 배우이자 감독으로 평가받는 버스터 키튼의 영화다. <시네마 천국>에서 어린 시절 영화를 너무 사랑했던 토토가 알프레도와 친구가 되고, 영사기술을 배운 것처럼 <셜록 2세>도 영화를 너무 사랑한 영사기사가 나온다.
영화의 스틸컷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셜록 홈즈를 동경하는 한 남자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의 시계를 훔친 범인을 찾겠다고 나서지만, 졸지에 범인으로 몰리고 만다. 영화 속처럼 멋진 셜록 홈즈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의 '셜록 2세'는 영화 같은 삶을 꿈꾸는 것이 전부다. 영사실에서 잠이 든 그의 꿈에는 사랑하는 여자와 영화 속 장면을 보며 그대로 재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음악_ 별빛 행진곡 - 신나는 섬
영사실에서 영화의 장면을 재현하는 카메라가 줌 아웃되면서 무성 영화를 보는 사람들, 그 아래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이 보인다.
영화 밖에도 <셜록 2세>가 상영되는 동안 소리 없는 빈 공간을 꽉 채워준 밴드 '신나는 섬'이 있었고, 등나무 운동장에서 함께 본 관객들이 있었다. 이 밴드의 노래를 몰라서 그런지 원래부터 영화의 OST처럼 느껴졌다. 특히 슬랩스틱 장면에서 여러 악기가 내는 효과음은 신기할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노래가 너무 좋아서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실제로 듣기 어려운 아코디언 소리는 무주의 밤과 무척 잘 어울렸다.
키드(1921)
with 리아노품(선우정아 X 재즈 피아니스트 염신혜)
이번 영화제에서 단연 가장 좋았던 영화를 꼽자면 바로 <키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 별 다섯 개 영화를 찾게 될 줄이야! 이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데뷔작이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알려져 있다. 어릴 적 <모던 타임즈>를 보았지만 말로만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었던 찰리 채플린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어떤 점이 대단한 건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찰리채플린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번 영화와 함께 한 뮤지션은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와 재즈 피아니스트 염신혜였다. 지난밤 보았던 <키드>에 비해 훨씬 단출한 구성이었다. 신나는 섬이 영화 내내 소리를 꽉 채웠다면, 이번 공연은 영화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공백이 있는 부분이 많았다.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지만 100년이 지나도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한 여자가 홀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부잣집 고급차 앞에 버린다. 그러나 도둑이 그 차를 훔치면서 아이를 쓰레기 통에 버린다. 버려진 아이를 보게 된 찰리는 무시하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경찰 때문에 부득이하게 아이를 키우게 된다.
장난꾸러기로 자란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찰리. 그들은 다른 어떤 부자보다 소소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성공한 여배우가 되어 돌아온 아이의 진짜 엄마의 요청으로 강제로 서로 떨어져야 할 상황에 놓인다. 영화는 내내 울컥하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영화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은 무성영화였음에도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말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어린아이와 그를 키운 아버지 찰리의 표정과 몸짓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소년 같은 목소리가 담겼던, Celia - 선우정아 X 염신혜
대신 소리를 채운 것은 얼마 전 재즈 듀오 프로젝트 앨범을 낸 선우정아와 염신혜의 리아노 품 앨범이었다. 특히 아이가 동네 친구와 싸우던 장면에서 찰리가 아이를 응원하는 장면에서 불렀던 장난스러운 곡 Celia에서는 소년 같은 선우정아의 목소리가 무척 잘 어울렸다.
영화 속 음악_ Blossom - 선우정아 X 염신혜
이 앨범은 피아노 방에서 연습하며 놀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속 두 사람의 소소한 일상 모습과 무척 잘 어울리는 앨범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내 앞에 앉아 이 영화를 재밌게 보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대사 없는 흑백 영화가 갑갑할 법 도한데 아이는 깔깔대며 영화를 보았다. 어른들은 가슴 찡하게 느낄법한 슬랩스틱 장면에서 그 아이들은 오히려 해맑게 깔깔댔다. 마치 영화 속 해맑은 아이처럼 말이다.
난생처음 제대로 무성 영화를 이 곳에서 보았다. 영화의 음악과 대사, 색감을 좋아하는 터라 흑백의 무성 영화는 왠지 어렵고 재미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치 원래 영화의 OST였던 것 마냥 영화와 잘 어울렸던 이번 공연을 통해 그야말로 꽉 찬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마치 무성 영화를 보던 1920년대로의 시간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의 내용 못지않게 영화를 보는 시간과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그 곳.
무주 영화제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