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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Sep 30. 2015

들으면 팁이 되는 팁투어

프라하의 보헤미안 이야기꾼을 따라서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스무 번째

_이야기의 가치


팁투어,
하느냐 vs 마느냐
2014. 09. 30
어쩌면 그 날의 어지러운 우리의 심정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자매는 참 죽이 잘 맞았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 하면 나도 하고, 내가 하면 동생이 따라 하는 생활을 20년이 넘도록 하다 보니 우리의 생활패턴과 취미 DNA는 참 많이 비슷해졌다. 평소에도 크게 싸우지 않고, 서로 짜증만 잠깐 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죽이 잘 맞아 수다를 떨던 우리. 나는 여행 전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동생은 길을 잘 잘 찾는다. 취향도 비슷하니, 여행 메이트로는 최적인 셈이다. 그래도 여행 가면 한 번은 싸운다던데...


지난 여행기를 읽었던 분이라면 우리의 체스키 여행은 아주 완벽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유럽 땅에서 처음 라면을 끓여 먹었고, 훈훈한 숙소 아주머니를 만났고, 운치 있던 에곤 실레 미술관까지. 너무 순조로웠기 때문인 걸까.


결국, 프라하를 가기 전 날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싸움의 복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체스키에서 동생은 '오늘은 길을 찾지 않겠어.'라고 선언 아닌 선언을 했었다. 길치인 언니에 비해 길을 잘 찾는 동생은 여행길에서 자연스럽게 선두에 섰다. 그러나 동생은 길어진 여행에 이제는 길을 찾는 것이 지겹고 힘들어진 것 같았다. 그런 중에 동생은 유럽여행 카페에서 '프라하 팁투어'라는 걸 찾았고, 이를 하고 싶어했다. 여기서 잠깐 팁투어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팁투어란?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공간에서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투어. 예약도 없으며 투어가 끝난 후, 투어를 통해 얻은 만큼 투어비를 내는 것. 

나는 굳이  왜?였다.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었고, 짧은 프라하의 3일 일정 중 하루를 가이드 투어로 날리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은 이제는 익숙해진 유럽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봐도 익숙하고 잘 몰라 감흥이 없어졌고, 일정을 짜고 길을 찾는 것도 힘이 드니 하자는 것이다. 


2인실의 숙소 공기가 싸해졌다. 좁혀지지 않는 의견. 점점 말이 없어졌다. 우리는 각자 일기를 썼다. 그 날 하루 완벽하게 좋았던 그날 하루의 일기를 이런 기분으로 쓰게 될 줄이야. 그렇게 그날은 말없이 각자 일기를 쓰고 잠들었다.


프라하의 보헤미안 이야기꾼을 만나다
2014. 10. 02

그러나 자매의 싸움은 언제나 그렇듯, 결말이 나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지나간다. 프라하의 첫째 날, 한 바퀴를 돌아보았는데, 구시가지는 생각보다 좁았다. 점점 동생의 의견에 설득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타협점으로 오전 투어만 참여해 보기로 했다.                                                                                       

출처: Ru Exp 팁투어 카페

집결장소 시민회관 정문 앞. 집결 시간 오전 9시 30분. 

양 손에는 아침 대용의 크로와상과 에스프레소 커피를 들고 있는 우리.


우리는 마치 영화 속 정보원 접선을 하듯, 시민회관을 배회했다. 이 곳이 팁투어의 모임 장소이자 시작점. 주위에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몇 무리들이 있다. 이렇게 또 한국인끼리 작정하고 마주치면, 괜히 서로 아는 척 하기 민망하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저 멀리 프라하보다 더 프라하 사람 같은 여자분이 한 분 걸어온다. 보헤미안 분위기가 물씬 나는 패션이 프라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프라하 투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오전 투어 일정 -
01. 시민회관 (Obecni Dům) 
02. 화약탑 (Prašna brana)
03. 체코 국립 은행 (Česka narodni banka, ČNB) 
04. 까를대학 (Univerzita Karlova v Praze)
05. 스타포브스케 극장 (Stavovske divadlo)
06. 바츨라프 광장 (Vaclavske naměsti)
07. 하벨 시장 (Havelske Tržiště)
08. 마리안 광장 (Marianske naměsti):시간에 따라 유동적                                                                09. 신 시청사 (Nova radnice): 시간에 따라 유동적 
10. 유대인 지구 (Josefov) : 시간에 따라 유동적       
11. 천문시계 (Pražsky orloj)  
12. 구시가 시청사 (Staroměstska Radnice)
13. 틴 성당 (Řimskokatolicka farnost Matky Boži před Tynem)
14. 얀 후스 군상 (Pomnik Jana Husa) 
15. 성 미쿨라쉬 성당 (Svaty Mikulaš)
16. 프란츠 카프카 광장 (Naměsti Franze Kafky) 

출처:  Ru Exp 팁투어 카페
이야기 지도를 따라 걷다

약 3시간 동안 이 모든 것을 다 둘러보며, 설명까지 듣는다니. 무리일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시가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어느새 우리의 목적지가 눈 앞에 있다. 지름길을 따라 걸으며 가이드 분의 설명을 들으니 마치 이야기의 길을 따라 걷는 것 같았다.  

까를 대학

처음에는 현대의 역사를 담은 구시가지 곳곳의 모습을 담아낸 곳들 위주였다. 의대가 유명하다던 까를 대학은 모르면 무심고 지나쳤을 정도로 작고 볼품없었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정도의 크기인데 그렇게 어마어마한 대학일 줄이야. 이 곳을 지나 프라하의 유명한 공연장의 외관을 보며, 프라하 사람들이 얼마나 모차르트를 사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바츨라프 광장

바츨라프 광장에 다다라서는 프라하의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지금은 잘 닦여진 길에 볕도 잘 드는 광장의 모습이지만, 이 곳은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이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 곳 현장에서 제법 자세히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팁투어를 하면서 드는 생각. 


난 세계사 시간에 아주 잘도 졸았었구나.


천문시계

시계탑에 있는 그 유명한 천문시계다. 가이드북에 정시가 되면 인형이 튀어나온다는 것만 읽고 프라하를 온 첫 날 이것을 보러 갔었다. 이 인형 쇼가 끝나면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데 다 '뭐야.' 하는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나도 마찬가지로 조금 실망했다. 그러나 팁투어를 통해 이 천문시계의 해석을 알게 된 뒤에는 다시 보였다. 시간과 절기부터 지금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천문시계. 이렇게 아름다운 시계를 만든 대가로 장인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인형 쇼만 보고 바로 뒤돌아가지 말고 꼭 천문시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길.


위와 같은 팁투어의 일정을 다 소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 중에 우리가 안 간 곳도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건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장료의 문제도 있고, 시간상의 문제도 있다. 말 그대로 구경보다는 건물 밖에서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다. 그러나 각각의 장소에서 후에 들어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주니 그 곳은 스스로 다시 찾아가면 된다. 


짧은 일정에 오전, 오후 투어를 다 도는 것보다는 하루에 한 투어씩 들은 뒤에 남은 시간에는 그 곳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길 권한다. 이렇게 스스로 여행할 여지를 남겨 주는 이 방법이 오히려 더 좋았다.

다시 찾아가 자세히 둘러본 그 곳들
하벨시장
바츨라프 광장
다르게 보였던


이야기의 가치


우리는 팁투어가 끝나고, 일정의 돈을 냈다. 생각보다 값진 투어였기 때문에 그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우리는 정해져 있는 요금에 익숙하다. 영화가 좋았던 나빴던 우리는 똑같이 9000원을 내고, 전시와 공연도 정해진 정가가 있다. 가격 이상의 값어치라면 뿌듯하지만, 그 이하의 값어치일 때 괜히 기분이 나빠진다.


프라하를 비롯해서, 유럽을 여행하면 뮤지션들의 앞에는 돈을 내는 통이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만족한 가치만큼 돈을 내는 것이다. 그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가지고 있더라도 있는 것의 절반을 떼어낸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 값진 가치로 기억될 것이다. 


자기가 느꼈던 이야기의 가치만큼 돈을 낸다는 것. 


물론 무형의 가치를 돈으로만 대입해서 환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해진 만족감을 수동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족감을 선택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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