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유로로 빈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 보기
프랑스 루브르에서 본 강렬한 그림,
오스트리아 빈에서 그림 속 이야기를 찾다.
혹시 내 글을 꾸준히 읽어주셨던 분이 계시다면 '이야기 여행자의 안내서 유럽 편 일곱 번째, 루브르 박물관(https://brunch.co.kr/@dn5445/7/write)에서 보았던 이 그림을 기억하실지도 모른다.
그때 이 작품을 예고편 아닌 예고편으로 남기고, 이야기를 미뤘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본 것처럼 익숙하지만 잊지 못할 강렬한 그림. 저 곱게 생긴 여인은 왜 남자의 목을 쟁반에 받혀들고 있을까. 배경지식이 없던 내게 이 그림은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었다.
이 그림의 정체는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건네 받는 살로메>다.
프랑스를 넘어 독일, 체코를 지나 오스트리아 빈에 이르러서야 우연히 이 여인에 대한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런던에서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너무 좋았던 터라, 음악의 나라인 오스트리아에서도 한 편의 공연을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 공연이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만만한 가격인가. 그러나 유럽의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이곳 빈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을 입석으로 4유로에 볼 수 있다고 한다. 환율로 따지자면 5천 원으로 세계의 손꼽히는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빈을 구경하면서 들를 수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공연 일정표를 받았다. 오페라는 본 적도 없는 우리는 제발 그나마 아는 작품이나 작곡가가 있길 바라며 팸플릿을 펼쳤다. 그러나 우리가 머무는 동안의 공연은 하나도 모르겠는 것이다. 그나마 <살로메>라는 작품이 1시간 30분가량으로 평균 오페라 시간보다 짧은 것을 보고 이를 보리라 마음먹었다.
살로메,
그녀는 누구인가
프라하에서 <돈죠바니> 인형극을 보기 전, 이야기의 사전조사를 하지 않고 봐서 지루함을 겪었던 경험에 비추어 이번 작품은 그 내용을 낱낱이 알고 가기로 했다. <오페라의 유령>을 보기 전에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익히고 간 뒤에 작품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허카페에서 유명한 카푸치노와 초코케이크를 먹고, 와이파이까지 빌리며 살로메에 대해 알아보았다.
근친상간 + 스트립쇼 + 살인 + 청소년 관람불가 = 충격적 오페라(?)
이 오페라의 특징을 단어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상하고 내용도 모르는 오페라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우리의 예상을 단번에 깨부수는 단어들의 향연이다. 이 곳에 와서 19금의 오페라를 보게 될지 누가 상상을 했겠냐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을 기본으로 헤트비히 라흐만이 대본을 쓰고, 슈트라우스와 리하르트가 작곡했다. 검열이 심했던 영화 매체에 비해 무삭제 공연이 가능했던 오페라임에도 1905년 초연 때, 관객들을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무려 뉴욕에서 27년 동안 공연이 금지되었을 정도였다.
<살로메> 간략 줄거리
유대 왕국 궁전에서 성대한 연회가 열린다. 이 곳에는 아름다운 공주가 한 명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살로메다. 근위 대장의 끈질긴 구애를 거절하던 중 우물에서 "죄인은 회개하라"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왕이 헤로데스와 결혼하기 위해 남편을 살해한 것을 빗댄 말이다. 한편 헤로데스는 왕비의 딸인 살로메에게 욕정을 품고 있다. 그러던 차에 우물 속 목소리의 주인인 세례 요한에게 반해버린 살로메. 그를 작정하고 유혹하지만 요한은 쳐다 보지도 않는다.
한편 계부인 헤로데스도 살로메에 안달이 나 있는 상황. 그는 자신의 앞에서 춤을 춰 주며 살로메의 어떤 소원도 들어주겠다 한다. 반 나체로 왕 앞에서 춤을 추고 난 뒤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한다. 왕은 요한을 죽이라 명한다. 요한의 머리가 큰 은쟁반에 담겨 등장한다. 살로메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요한의 머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입술에 입을 맞춘다. 헤로데스는 살로메의 광기를 보고 그녀를 죽이라 명한다.
줄거리만 보면 정말 희대의 막장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막장의 기원은 고전이다. 여태까지 성당에서 지루하게 읽었던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을 줄이야. 이런 막장 줄거리를 읽고 나니, 이 작품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공연 시작 3시간 전쯤. 우리는 국립 오페라 하우스 근처를 배회하며, 입석표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우리는 거리에서 음악가 코스프레를 하고 표를 파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그 표를 안 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들고 있는 프로그램 북을 보여주면서 홍보를 하는 것이다. 도저히 우리가 낼 수 없는 고가의 가격들.
호갱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시 그 근처를 배회했다. 입석표를 파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처음엔 호객 행위를 하는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에게 거짓말을 친 그 아저씨가 괘씸했다. 메인 거리에서 그 아저씨들에게 붙잡힌 다른 관광객들이 아른거렸다. 입석표, 언제든지 구할 수 있으니 속지 말자.
표를 사려고 줄을 서 있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다. 생각보다 기다리기 편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담당 관리인도 있어서 질서 정연하게 기다릴 수 있다. 티켓박스에 붙어있는 4유로를 보니 뿌듯했다. 약 1시간 전 쯤부터 티켓팅이 시작되고, 안내자를 따라 공연장에 안내를 받았다. 눈치껏 종종걸음으로 잘 따라다녀야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절대 카메라 줌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잘 보이는 곳이라니. 가격에 이어 또 한 번 감격했다. 서 있다는 것뿐이지 앞자리 VIP 석 부럽지 않은 시야였다. 입석 자리에는 기댈 수 있는 팔걸이가 있는데, 여기에 기대기만 해도 편하다. 이 곳에 자신의 소지품 중 묶을 수 있는 것들을 묶어 놓으면 자기 자리가 되는 것이다. 독일어 공연이라 자리별로 영어 자막이 나오는 것도 붙여져 있어서 공연을 보는데 어려움도 없다. 공연장 아래에는 오케스트라가 조율을 하고 있다. 드디어!! 막이 오른다.
일곱 베일의 춤
<살로메>의 유명한 부분으로 계부인 헤로도스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다. 한 겹씩 입고 있던 베일을 던지며 춤을 춘다. 그리고는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소원을 말하는 장면.
살로메는 다른 오페라에 비해 여배우의 엄청난 역량을 필요로 한다. 오페라 시간이 1시간 30분인 것도 여배우의 엄청난 체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원래 보통의 오페라는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지만, <살로메>는 춤을 추면서 노래해야 한다. 마이크 없이 커다란 극장에 울려 퍼지게 노래를 해야 하는 데다 등장인물도 적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없다. 또한 꽤 수위가 높은 노출신까지 있으니. 보통 역량 있는 배우가 아닌 이상 소화하기 힘든 역할인 것이다. 가녀린 체구에서 폭발력 있는 성량이 나오다니 놀라웠다.
요한의 머리에 키스하는 살로메
아무리 오페라가 졸리다고 하지만 <살로메>를 보면 절대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뮤지컬처럼 역동적이고, 플롯 또한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공연의 막바지로 다다를수록 저 미친 여자가 어떤 일까지 하게 될지 궁금한, 마치 뒤를 알면서도 막장드라마를 보는 심정이랄까.
커튼콜
짧고 강렬한 공연이 끝났다. 정말 만족스러웠던 공연. 사실 이전까지 빈을 여행하며, 조금 심심했었다. 할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석 줄도 괜히 3시간이나 일찍 섰던 것이다. 짧은 3일간의 일정에서 오후 3시간을 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오페라 한 편으로 빈에서의 기억은 좋게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빈에서 오래 머물면서 입석으로 많은 공연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예술가가 그려낸 그녀, <살로메>
+ 영상 및 사진 자료는 실제 보았던 공연 실황이 아님을 밝힙니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Storytrave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