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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Oct 15. 2015

걷고 보고 만나는, 비포 선라이즈

걷고 보고 만나는 여행, 오스트리아 빈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스물두 번째

_우연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

다른 어떤 여행보다 어려운,
<비포 선라이즈> 여행

'여행'을 테마로 한 영화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영화가 있다. 바로 <비포 선라이즈>다. 그런데 다른 여행 영화와 다르게 <비포 선라이즈> 속 오스트리아 풍경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여행을 하고 싶게 만드는 대표인 감독인 우디 앨런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이 영화의 미묘하게 다른 특징을 잘 알 수 있다. 


우디 앨런은 도시를 아름답게 담아내는 데 탁월하다. 극도로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인간의 찌질함과 치정이 얽힌 상황과 대사를 버무려 풍자하는 식이다. 그다지 닮고 싶지 않은 인간사, 그러나 그 영화 속 배경만큼은 비행기표를 끊게 만들고, 영화 속 장소로 떠나고 싶게끔 만든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역시 각기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비포 선라이즈>-<비포선셋>-<비포 미드나잇>을 만들었다. 이 시리즈를 보고, 아름다운 영화 속 배경이 기억에 남는가. 그보다는 제시와 셀린의 우연한 만남, 대화, 발걸음이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포 선라이즈>식 여행은 아주 어렵다. 이 여행에서 중요한 건 장소(영화의 배경지)가 아닌 것이다. 제시와 셀린느도 각자의 목적지와 다르게 오스트리아 빈에서 내린 것은 도시의 아름다움이 아닌 여행의 다른 로망을 담아낼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오스트리아 빈(<비포 선라이즈>)이나 프랑스 파리(<비포선셋>), 그리스(<비포 미드나잇>)를 가는 게 아니라, 기차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밤새도록 대화가 잘 통하는 이성을 만나는 것(<비포 선라이즈>), 

시간이 지나 우연이 운명이 되어 다시 만나는 것(<비포선셋>).

그(혹은 그녀)가 일생을 함께할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되는 것(<비포 미드나잇>)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비포 선라이즈>의 촬영 명소를 엄청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신 로맨스는 빠지고 자매애로 똘똘 뭉친 우리가 이곳에서 걷고, 보았던 것들. 그리고 뜻밖의 만남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한다.

비엔나를 걷다 

비엔나의 시내는 넓은 듯 좁다. 트램을 탈까, 걸어갈까. 걸어가면 다리가 아프고, 트램을 타면 너무 금방 내린다. 대신 작지만 큰 도시인 이곳의 광경은 꽤 다채롭다. 이제는 유럽의 아름다운 건물이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터라, 지나가는 사람들에 오히려 시선이 갔다.


군악대의 행진, 자전거 동호회인지 자전거를 탄 무리들.

학교 숙제를 하는지 지나가는 관광객을 붙잡고 영어로 설문조사를 하는 학생들.

큰 학생들 무리에 낀  어린아이는 언니를 따라 나온  듯했다. 


비엔나를 보다
호프부르크 왕궁 속 시시 뮤지엄

빈의 시내는 별로 넓지 않은 것 같지만, 이상하게 실내로 들어오면, 그 넓이와 화려함에 놀라곤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호프부르크 왕궁'이다. 유럽의 여러 왕궁을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성당 다음으로 다 그곳이 그곳 같던 랜드마크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시 뮤지엄>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어릴 적 갖고 놀던 공주 인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뮤지엄 안에는 '예쁜 것'이 넘친다. 그녀의 드레스들부터 장신구들까지 전시되어 있는 뮤지엄이다.


벨베데레 궁전 속 클림트  

클림트의 작품을 보러 왔으나 뜻밖의 벨베데레 궁전의 탁 트인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관광객의 여파 때문인지, 아니면 오스트리아 내에서도 클림트의 영향력이 꽤 큰지 비엔나 곳곳에는 클림트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기념품 상점이 많았다. 모조품부터, 작품을 찍은 사진까지 이미 너무 많이 본 작품이었다. 


그런데 미술관을 들어선 순간 까만 벽과 대비를 이루면서 반짝거리는 그림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속 평면이 아닌 실제로 본 입체적인 모습은 그림을 볼 줄 모르는 까막눈임에도 마치 처음 본 그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쿤스트하우스 카페

건축물을 보고자 왔던 곳이라서 내부를 둘러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대신 기념품점과 들렀던 카페의 분위기를 보아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 약간 외곽에 있어서 그런지 이곳을 찾아가는 길에서는 시내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듯했다.

비엔나의 만남:
잘못 탄 트램에서의 우연한 만남
그 트램이 이 트램이 아니지만서도...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 코스로 넣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빈 소년 합창단'이었다. 일요일에 맞춰 넣은 것도 성당에서 관람할 수 있는 요일이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가 머무는 그 주만 공연이 취소된 것이다. 다른 해외 공연이 이유였다. 그동안 나름대로 운이 좋은 여행이었는데, 여기서 펑크가 난 것이다. 빈을 떠돌던 우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트램 안에서 익숙한 한국어가 들렸다. 


장발의 머리를 질끈 묶고, 금테의 안경을 낀 중년의 남자 분. 누가 봐도 예술가의 포스를 팍팍 풍기는 분이었다. 유학생이라고 묻는  그분에게 우리는 여행객이라고 말했다. 말을 트자마자  그분은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그 아들이 이번에 '빈 소년 합창단'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아니, 이런 우연이.....!!

우리는 빈에 와서 빈 소년 합창단을 못 보게 된 아쉬운 상황을 토로했다. 그분을 통해 공연을 안 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고, 가족 모두 예술 관련 종사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짧지만 우연한 만남에 우리는 얼떨떨했다. 

그런데 맙소사. 우리가 탄 트램이 잘못탄 트램이었던 것이다.

제대로 트램을 탔다면 없었을 우연이었다. 


돌아와 검색해 본 결과 진짜 이번에 들어간 한국 소년의 기사가 있었다. 

<비포 선라이즈>의 운명은 아니어도 신기한 기억으로 남을 만큼 우연한 만남이었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Storytrav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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